“머물지 않는 천년의 청년정신으로 불가능한 가능을 만들어 갑니다”

섬유는 패션과는 다르다. 섬유는 창작의 영역인 패션에 차용된 소재라는 의미가 우선되며,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여기, 섬유에 꿈틀대는 생명력을 불어넣은 이가 있다. 스스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고 모양을 회복하는 섬유를 세상에 내놓은 이. 바로 사업가이자 개발자인 벤텍스 고경찬(52) 대표이다. 그의 손을 거쳐 탄생한 섬유는 디자인보다 인상적이며 브랜드보다 강하다. 그리고 그 자체로 굳건히 버티고 선 하나의 집합체다. ‘만든다’가 아닌 ‘짓다’는 동사가 그에게 더 어울리는 이유다.

글·사진=원유진 기자 ssakssaky@itnk.co.kr

- 이번 개강한 학기부터 중앙대 대학원에 다닌다고 들었다. 이미 모교인 성균관대학교에서 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걸로 아는데 다시 사업과 공부를 병행하게 됐다. 힘들지 않은가.
(웃음) 이번 학기부터 중앙대학교 전문의학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의대를 나오지 않아도 입학이 가능하다. 하지만 비전공자이고 문외한이기 때문에 사실 수업을 따라가는 게 쉽지는 않다. 교수님까지 서너 사람이 프리토킹을 하며 자유롭게 수업을 진행하지만 양해를 구해 수업내용을 녹음을 하고 모르는 건 바로바로 질문을 한다. 완전히 다른 분야다보니 의학의 시각에서 섬유를 바라볼 수 있고, 반대로 섬유의 시각으로 의학을 바라볼 수 있는 게 재미있다. 그런 방식의 융복합이 우리가 연구하는 분야와 딱 맞아 떨어져서 즐겁게 하고 있다.

- 최근 의료용 섬유 쪽에 집중하고 있는 걸로 안다. 의학공부에 매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진행상황은 어떤가?
드러그 딜리버리 시스템(Drug Delivery System)의 약자인 DDS섬유는 피부병 환자가 약을 바른 후 착용하면 약물 흡수를 매우 빠르게 증가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기존의 약이 표피에 머물렀다면 DDS는 진피까지 흡수되도록 돕는다. 그밖에 아토피, 통증완화, 체중감량까지 다양한 기능성 섬유를 준비 중이고 유용한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 오픈할 단계는 아니다. 올해 말 임상실험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결과발표를 할 예정이다.

- 벤텍스하면 일단 떠오르는 건 1초 만에 마르는 ‘드라이존’이다.
벤텍스의 대표 제품은 누가 뭐래도 초고속 건조섬유 드라이존이다. 드라이존으로 제작된 옷은 땀을 흘리더라도 곧바로 외피로 배출돼 피부와 접촉되는 부분은 항상 건조한 상태를 유지한다. 미국의 노스페이스, 뉴발란스, 일본의 블랙앤 화이트, 와코루 등 세계 유명 브랜드에 들어간다. 보통 노스페이스는 헹택을 달지 않지만 드라이존은 벤텍스가 선명히 보이는 헹텍을 그대로 쓴다. 드라이존덕분에 회사 규모도 매년 30% 가량 급속도로 성장했다.

- 드라이존 외에 여러 가지 히트상품들이 많다. 벤텍스의 간판제품들을 소개해 달라.
드라이존을 기반으로 해서 땀을 흡수해 냉매로 전환해주는 냉감섬유인 ‘아이스필(Ice-Fil)’과 적외선을 증폭시키고 체열을 반사하는 국한 보온성 섬유 ‘메가히트(Mega Heat)’, 아토피 완화섬유 ‘스킨닥터’ 등 다양한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다.
작년 6월에는 땀이 나면 섬유 스스로 피부에서 떨어졌다가 운동이 끝나면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는 섬유로 'IR52장영실상'을 수상했다. 2004년 드라이존으로 다산기술상을 받은 이후 두 번째였다. 그 밖에 63개 특허를 보유하고 있고(출원중 포함 81개) 145개 등록상표를 보유하고 있다. 기능성 섬유의 특성상 노스페이스, 데상트, 컬럼비아, 뉴발란스, 아디다스, 아식스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포츠·아웃도어 업체에서 우리 소재를 주로 사용하고 있고 최근에는 갭과 같은 일반 의류들도 기능성 소재를 자주 찾는다.

- 벤텍스는 아주 작은 회사다. 분명 초기 비즈니스 과정에서 진입장벽이 꽤 높았을 것이다.
중소기업에서 기능성소재를 개발해도 리딩 브랜드가 사용할 때까지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린다. 국내 업계는 굉장히 보수적이다. 중소기업으로서 브랜드를 달고 나가는 일 자체가 엄청난 일이었다. 지금 다시 처음부터 하라면 못할 것 같다. (웃음) MD들도 우리 소재를 덜컷 썼다가 문제가 생길 수 있어 국내에서는 쉽게 반응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일본시장을 노크했다. 오사카에 위치한 미쓰비시 상사의 스포츠사업부를 찾아갔다. 1분도 아니고 1초면 된다고 설득해 어렵게 담당자를 만났고 그 앞에서 1초만에 마르는 섬유를 눈앞에서 보여줬다. 그 뒤로 한국 본사를 몇 번 방문해 거듭 확인했고 투자를 결정했다. 섬유부문 외부투자는 미쓰비시 창사 이래 최초였다고 들었다. 자국도 아닌 외국투자였으니 큰 사건이었다. 와코루에서 선보인 CWX는 거의 90%정도를 우리 제품을 사용했다. 일본 남극탐험대와 메이저리그 이치로 선수가 착용하면서 인지도가 상승했다. 아다바트, 아식스 등 일본 대표 브랜드들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본으로 시장조사를 나온 한국 MD들을 통해 역으로 국내 시장 문이 열렸다. 일본시장에서 인정받으니 미국 등 글로벌 진출이 훨씬 수월하게 진행됐다.

- 투자를 유치하고 주문을 이끌어 내는 벤텍스의 노하우는 무엇인가.
말 그대로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기술을 개발하면 그 기술을 가장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소재 개발에 그치지 않고 최종적으로 상품화 단계까지 필요한 실험기기도 개발한다. 기기개발 이후엔 실험값 신뢰 수준과 데이터 해석 방법에 대해 철저히 준비한다. 실험평가 방법까지 끝났을 때에 비로소 개발완료라고 말한다. 그러고 나서 세미나 마케팅을 진행한다. 바이어들이 참석한 가운데 전반적인 기술개요를 발표한다. 원단 스와치(샘플)도 준비하지 않는다. 대신 실험장비는 모두 동원해 현장에서 기능을 입증을 한다. 이를테면 섬유의 통증완화 효과를 그 자리에서 혈액을 채취해서 변화를 보여줘 의학적인 메커니즘대로 풀어주는 방식이다. 일본과 미국서도 중언부언하지 않고 핵심을 눈앞에서 보여줬다. 현장에서 바로 반응이 온다.

- 섬유산업의 미래… 어떻게 생각하나. 그리고 벤텍스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독창적인 기술이 중요하다. 사람이 옷을 입지 않고 살아갈 수 없듯이 섬유산업은 대체불가의 독특한 영역이다. 중국, 대만 등 경쟁국과 차별화 할 수 있는 기술개발만이 우리 섬유산업의 미래라고 생각한다. 벤텍스는 중장기적으로 소재와 IT기술을 융합한 스마트섬유 분야에 도전할 계획이다. 온도, 자외선, 방사는 농도 등을 파악해주는 외부환경 인지섬유, 충격방호섬유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메디컬, 헬스케어, 힐링 부문도 꾸준히 전개해 갈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을 염두에 두고 공부도 생각했다.

- 원래 대기업인 코오롱에서 근무했다. 순탄하고 안전한 삶에서 울타리를 박차고 나왔다. 계기가 궁금하다.
86년 입사해서 정전기 아이템을 맡아 유공, 한국화약, LG, 삼성전자 등 전국을 다니면서 정전기 방지대책과 화재폭발방지 주제로 강의를 하고 주문을 받았다. 처음 시장 점유율 제로에서 95%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던 중 꾸준히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그래서 나오게 됐다. 그분과 함께 일하며 성과도 이루고 성취감도 맛보았지만 3년차에 부도를 맞고 말았다. 당시 외상으로 받은 게 3억8천만원 정도 물대가 있었다. 그 채무를 내가 승계를 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주위에서 미쳤다고들 했다. 하지만 나를 믿고 스카우트 한 분께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고 나를 보고 물건을 공급했던 사람들을 책임져야 했다. 후회는 없었다.

- 당신은 사업가이면서 동시에 뛰어난 개발자이기도 하다. 어느 영역에 더 애착이 가는가.
개인적인 성향으론 개발이 더 재미있다. 나는 매일 이른 아침 산에 갔다가 출근한다. 아직 어둠이 거치지 않은 산은 고요하고 적막하다. 거기서 생각들을 정리하고 아이디어를 얻는다.

- 잠자리에도 메모지를 머리맡에 둔다고 들었다.
거의 꿈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편이다.(웃음) 하루에 여덟 개 특허를 쓸 때도 있었다. 그땐 손이 마음대로 움직이는 걸 느꼈다. 누가 와서 잡아도 움직일 것만 같았다. 그날은 화장실도 안가고 밥도 안 먹고 빈 사무실에서 밤 12시까지 한 적도 있다. 무당이 작두타는 것과 비슷하다.(웃음)

- 아이디어를 얻는 당신만의 방법이 있나.
개발을 할 때 연구원들한테 “우리 모든 걸 내려놓자”라고 말한다. 기존에 있던 것들이 방해가 될 때가 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제로베이스에 섰을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겨나다. 역발상이다. 당연히 사고가 막힐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유에프오에 납치돼서 뇌수술을 받고 깨끗이 리셋하고 싶다.(웃음) 하지만 차분히 기다리면 어느 순간 새로운 길이 딱 열린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집중력있게 진행한다.

- 올해 초 장학재단에 매년 3000만원씩 10년간 3억원을 출연했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우리를 통해서 나갔을 뿐이다. 우리가 감히 어떻게 기부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아직 걸음마 수준의 작은 회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국가 연구프로젝트였다. 단순히 우리가 진 빚을 갚는다는 생각이었다. 이 얘기는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웃음)

- 대학생 시절에는 부산에서 행상을 했다고 들었다.
대학생시절 여러 가지 상품으로 행상을 했다. 당시에도 기다리는 마케팅은 하지 않았다. 한번은 도매상에서 간이샤워호스를 떼다 팔았다.
수도꼭지에 간단히 끼워서 사용할 수 있어 땀범벅이 된 시장상인들에게 인기였다. 개당 500원 마진이었으니 꽤 매력적이었다. 어깨에 짊어지고 시장을 다니며 “시원한 샤워기 왔어요”를 외치고 다녔다. 그때 등록금이 40만원이었는데 하루 10만원을 벌기도 했다. 한번은 울산 석유단지에서 판매를 했다. 옛날에는 유공이었다. 퇴근 시간인 오후 다섯 시에 정문입구에서 팔면 대박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수위아저씨와 실랑이가 붙었다. 순간 얼굴이 번쩍했다. 뺨을 한 대 얻어맞은 거다. 속으로 잘못한 게 없는 것아 야속한 마음에 그 분 얼굴이 잊혀지지 않았다. 그 후 코오롱에 입사해 유공에서 강의를 맡았었는데 울산공항에 나를 픽업 나와 거수경례한 사람이 바로 그 수위 아저씨였다. 물론 그 분은 날 몰랐지만 참 기분이 묘했다. 인생의 음과 양을 배웠다.

- 사업의 특성상 개발비 비중이 클 것 같다.
개발비… 많이 든다.(웃음) 임상실험 한번에 1억 정도가 든다. 연구 기기들 구입비용도 만만치 않다. R&D비용은 5~8%정도 투자하고 있다. 연구인원은 현재 나를 포함해 9명이지만 의학, 생화학, 전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계속 충원할 예정이다. 이익률의 경우 개발비 재투자 비율이 높아 낮은 편이었지만 올해부터 높아질 것이다.

- 매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벤텍스의 올해 매출과 향후 계획을 알려달라.
작년 280억 매출을 올렸다. 금년은 400억 이상을 예상하고 있다. 내년에는 현재 진행 중인 중국쪽 사업이 본격화 되면 700억 까지 가능할 것으로 본다.

- 회사에 일체 친인척의 참여는 물론이고 방문도 불허하고 있다고 들었다. 독특하다.
그 원칙은 처음 회사를 열고부터 100% 지키고 있는 철칙이다. 이 회사는 내 개인의 것이 아니라 벤텍스 직원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상속이나 세습은 추호도 생각이 없다. 나보다 더 능력있는 사람에게 승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회사에게도 이익이다.

- 직원들에게 무상으로 주식을 나눠줬다고 들었다.
우리 직원은 42명이다. 그들 모두에게 회사를 일터가 아니라 꿈과 이상을 실현하는 삶터로 만들자고 말한다. 기업인은 개인이 비전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저 공평한 분배자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기업은 댐(Damn) 통로의 역할인 셈이다. 단지 수문을 열고 물이 나오도록 연결을 해주는 일종의 관일 뿐 이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은 기술일 지라도 그것은 기업과 기업가의 것이 아니다. 회사 입구에 있는 문구처럼 머물지 않는 청년 정신으로 불가능한 가능을 들어가는 우리 직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뽑은글
- 대학시절 시장서 행상 경험… 찾아가는 마케팅, 보여주는 세미나 방식의 시작
- 드라이존?아이스필?메가히트 등 성공에 자만 않고 스마트?메디컬 섬유 도전
- 회사는 개인 것 아닌 직원 모두의 것, 기업은 단지 댐의 수로처럼 분배자일 뿐





벤텍스는 어떤 길을 걸어왔나
1999 벤텍스 주식회사 설립
2000 1초만에 건조되는 섬유 DRY-ZONE 개발
2003 성장촉진섬유 GROW-MON 개발
2004~5 벤텍스 섬유과학연구소 설립
미쓰비시상사 일본독점 계약(지분참여)
DRY-ZONE 다산기술상 수상
2006~7 땀을 냉매로 전환하는 -3도 섬유 ICE-FIL 개발
아토피 완화 피부재생 섬유 SKIN DOCTOR 개발
2008 땀을 열매로 전환하는 +4도 섬유 MEGA-HEAT 개발
2009 니트 데님 DRI-JEAN 개발
2010 스스로 생각하고 변신하는 오토센서 개발
2011 오토센서 'IR52장영실상' 수상

The book of my life
람타 (스티븐 리 웨인버그 저/ 여울목)
책을 보면서 웅장하다는 느낌을 갖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람타’를 처음 접했을 때 우주에서 풍덩 빠졌다가 나온 듯한 느낌의 웅장함을 느꼈었다.

지구의 시뮬레이션 시간으로 따져서 3만 5천년 전 완전히 깨달은 존재 람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좁은 울타리에 갇힌 우리들의 사고의 폭을 무한대의 영역으로 확장시켜주는 영적 비아그라와 같은 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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