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모피는 섬유산업 성장동력이죠”
·10일 창업 20주년 세계 최대 인조모피 메이커 우뚝
·국내2·中청도·상하이공장서 월 400만 야드 생산
·연간 수출 2억불 안팍 자산규모 3000억 무차입 건실기업
·전세계 인조모피 시장 쉐어 40% 점유 난공불락 초일류기업 정착
·첨단설비·기술우위공략·기라성같은 중국기업들 거의 무릎꿇려
·창업 20주년기념 광장동 본사 쇼룸에서 2개월간 대규모 전시회
·성실납세 초우량기업·김회장 납세실적 매년 고액납세자 100인 이내
·기업에서 번 돈 사회환원 학교법인 대주 인수 재단 이사장취임

인조모피분야의 명실상부한 세계 초일류기업인 (주)인성하이텍이 오는 10일로 창립20주년을 맞는다. 지난 86년 12월 10일 의류용 하이파일 전문메이커로 출범한 이 회사는 올해로 성년을 맞아 자체브랜드‘친칠라’의 명성 그대로 난공불락의 세계 최대 인조모피 전문메이커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경기도 양주와 동두천의 국내 2개 공장과 중국 청도와 상하이에 세계최대 규모 인조모피 공장을 가동하고 있는 이 회사는 월 400만야드 규모의 다양한 고급 인조모피를 생산, 전세계 시장 쉐어의 40%를 장악하고 있는 간판기업. 기라성같은 중국 업체들까지 무릎을 끓게 한 완벽한 차별화 전략으로 연간 수출규모가 2억달러 내외에 달하며 자산규모 3000억원을 훨씬 넘는 인성의 고도성장은 급격히 축소지향으로 가는 우리 섬유산업이 어디로 가야한다는 대전제를 제시해주고 있다.
소규모 의류용 모피공장으로 시작해 창업 10여년부터 세계적인 기업으로 우뚝선 인성은 이제 섬유소재 메이커에서 고급의류와 홈퍼니처의 산업용 완제품분야에까지 진출해 일취월장하고 있다. 또 무차입경영의 건실기업의 상징인 이 회사는 기업에서 번돈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교육사업에 진출, 서울 송파에 있는 보인중고등학교의 학교법인 보인학원을 인수해 인재양성에도 전력투구하고 있는 숭상받는 기업인상을 확립하고 있다.
법인 인성하이텍이 대표적인 성실납세자로서 대통령표창과 산업포장을 수상함은 물론 창업주이자 오너인 김석한회장 개인 역시 매년 우리나라 납세순위 100위 이내의 고액납세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재계의 숨은 중진. 그는 교육사업에 공헌한 공로로 국립공주대학에서 명예교육학박사학위를 받을 정도로 부의 사회환원을 솔선수범한 모범기업인이다.
샐러리맨으로 출발해 30대에 인성을 창업해 단기간에 세계 정상의 인조모피 메이커로 우뚝 선 탁월한 기업인이자 교육사업가인 입지전적 인물의 김석한 회장(53)을 본지 조영일 발행인이 지난 28일 오후 워커힐 앞 광나루 인근의 본사 사옥 집무실에서 만났다.

-오랜만입니다. 매머드 인텔리젠트 빌딩의 본사사옥이 규모뿐 아니라 외양도 웅장하군요.
“이 사옥을 장만한지가 벌써 4년이 지났는데 처음 오셨군요. 당초 한국타이어 본사 사옥으로 쓰던곳인데 당시 테헤란로를 비롯해 여러 건물을 보았지만 이곳만큼 맘에드는 건물이 없드라고요. 건물위치도 좋지만 구조가 아주 잘 돼 있지요”

-1층엔 하나은행이 있던데 전체 규모는 어느 정도입니까.
“바닥면적 624평에 지하 4층, 지상 7층, 연건평 4300평 규모입니다. 6,7층은 저희가 본사사물실 및 쇼룸으로 사용하고 있지요. 저희 쇼룸은 인조모피분야에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화려하고 품격높은 레이아웃과 디스플레이가 장점이지요. 때마침 창립 20주년을 맞아 저희회사에서 개발된 다양한 ‘친칠라’브랜드 제품전시회를 12월 1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2개월간 이 쇼룸에서 개최합니다. 국내패션업계와 섬유업계·디자인 관계자나 자재담당자들이 보면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인성하이텍이 세계 초일류 인조모피 전문메이커라는 것은 공인된 사실입니다만 실제 생산규모는 어느 정도입니까.
“국내에는 양주와 동두천에 2개 공장을 갖고 월 50만야드 규모를 생산하고 있어요. 여기에 반해 중국 청도에 대지 3만 5000평 건평 2만평 규모의 매머드 첨단 공장을 가동하고 있는데 월 150만 야드 정도 생산하고 있습니다. 또 상하이 인근 공산에 대지 5만평 건평 3만평 규모공장에 월 200만 야드 캐퍼를 포함해 월 400만야드 규모를 생산 공급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인조모피설비는 장치산업이기 때문에 생산량에 비해 종업원수는 1000여명 정도로 작은 편이지요.”

-수출외형은 어느 정도입니까.
“국내공장과 중국공장을 합쳐 많을때는 2억달러에 달했는데 올해는 1억5000만달러 규모에 머물것 같아요. 문제는 외형보다 내용이지요. 자랑은 아니지만 저희는 덤핑이란걸 모릅니다. 최고의 물건을 만들어 제값받자는 것이 저희 경영철학입니다. 이런 원칙 때문에 2000년대 들어 한해 순익규모가 250억원을 상회했어요. 그래서 저희는 1억달러가 투입된 중국 2개 공장 건설에도 단 한푼의 은행돈 빌리지 않고 전부 자체 자금으로 충당한 겁니다. 제 천성이 남의 빚 쓰는 것을 싫어해서 무차입경영을 고집한 것이죠. 이 사옥 살때도 은행돈 한푼 빌리지 않고 자체자금으로 샀으니까요.”

-몸체 큰 대형회사인 인성의 경쟁력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글로벌전략과 차별화 전략입니다. 한국에서 봉제완구와 의류가 한창 잘나갈 때 인조모피업계 최초로 지난 93년 중국 청도에 대규모 투자를 해 그 지역에 붐을 이룬 완구공장과 의류공장의 독과점 모피의류업체가 된겁니다. 만들면 팔리던 시절이었으니까 줄서서 기다리는 붕제완구 및 의류업자들에게 배급주는 장사를 했으니까요. 또 기존 중국의 메이저급 회사들이 군웅할거하고 있는 상해에도 99년 과감히 진출했지요. 첨단 장치 산업을 통해 차별화·특화 전략으로 시장을 석권할수 있었던겁니다. 처음엔 저보고 무모한 투자라고 했지만 결과를 보고 국내외 관련업계에서 탁월한 혜안과 추진력이 있다고 갈채를 보내더군요”

-한가지 의아한 것은 중국 상하이에는 하이신 그룹과 대순, 순천을 비롯한 기라성같은 인조모피회사들이 건재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전부 인성 진출후 백기를 들었지 않습니까.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진출했어요. 방금 말씀하신 하이신이나 대순같은 기라성같은 회사들과 정면 승부를 한겁니다. 문제는 저희공장은 첨단설비인데다 기술력에서 중국과는 게임이 안됩니다. 가격 경쟁으로는 결과가 뻔하기 때문에 차별화 특화 전략으로 완벽한 비교우위를 확보했어요. 당시 미국의 대형 바잉오피스가 상하이에 대거 진출했었는데 완구용뿐 아니라 의류용 인조모피 품질이 나빠 이만저만 고생하지 않았어요. 그때 품질에서 확실한 비교우위를 확인한 미국 바이어들이 오더를 인성에 전부 노미네이션한 겁니다. 대박을 터뜨린거죠” (웃음) 이런 경험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동구권이나 터키 그리고 인도쪽 진출을 적극 검토하고 있습니다.



-중국 경쟁사들을 경영부실로 무릎꿇게 한 특단의 비결이 있을텐데요.
“비결이 아니라 자연발생적인 현상이지요. 그들은 당시 엄청난 설비자금을 금융기관에서 조달한 겁니다. 차입경영에 따른 이자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물건은 안팔리고 재고는 늘어나고 클레임이 빈번하다보니 인성의 무차입경영에 첨단 성력화 시스템을 따라올수 없고 기술 노하우를 가진 저희와는 경쟁할수 없던것이죠”

-순서가 바뀐 우문입니다만 인조모피분야에 진출한 동기가 무엇입니까.
“조사장님과 제가 안지가 벌써 4반세기 25년 아닙니까. 저는 대학졸업하고 군대제대 한 후 첫 직장이 당시 의류봉제수출업체 (주)기림입니다. 그때 부장으로 퇴임하기까지 7년간 재임한 후 독자경영을 시도할 때인데 봉제는 저를 아껴주셨던 당시 이원빈 사장님과 경쟁할 수 없어 나름대로 유망산업으로 판단한 인조모피를 선택한 것이죠”

-처음엔 소규모로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창업초기 애로도 많았을텐데요.
“말씀마십시오. 공장을 양주에 만들어 놓고 숨어서 생산을 했어요. 당시 하이파일업계는 성화·대우파일·영일무역 등이 시장을 평정할때인데 어디서 생면부지 사람이 공장을 만들었다고 하니 싹부터 자르겠다며 원료공급을 차단시키드라고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일본 가네가론에서 생산되는 원자재 모다크릴을 공급하지 못하도록 그들이 장난을 친겁니다. 결국 신산고초를 다 겪으면서 회사를 키우다 92년에 당시 대표적인 기업인 부천의 영일무역공장을 인수한겁니다. 그때부터 성력화 설비투자와 기술개발을 바탕으로 글로벌경영을 강화한 것이 적중한 것 같습니다.”

-인조모피의 성장 잠재력을 어떻게 보십니까.
“늘 지적하신대로 섬유사양론 때문에 섬유인들이 상실감을 갖고 있지만 저는 전망을 매우 밝게 보고 있습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의류용이건 산업용이건 섬유는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섬유중에서도 가장 유망업종의 하나가 인조모피라고 봅니다. 실제 저희회사 기술개발의 성가는 천연 모피와 인조모피를 육안으로 쉽게 구분할 수 없도록 정교하고 고급화시켰고, 그 용도도 의류용·완구용뿐 아니라 침장·가구·신발·가방에 이르기까지 갈수록 다양화되고 있어요. 이번 저희 전시회에 와보신 분들은 품질의 우수성과 기술력, 다양한 용도를 직접 보시면 놀랄겁니다. 더구나 자연보호니 동물보호니 하는 세계적 추세를 감안할 때 인조모피의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봅니다. 저는 인조모피야말로 섬유산업의 성장동력이라고 확신합니다.”

-다각경영의 일환으로 완제품 분야까지 영역을 확대하셨다면서요.
“아직 공개해서는 안되는 얘기입니다만 말이 나온김에 오픈하죠. 첨단 IT분야를 포함해서 신규사업을 여러 가지 검토해보다 결국 내가 가장 잘 아는 분야로 결정했어요. 바로 지금까지 인조모피란 소재산업에 올인했으니까 이를 소재로 한 고급완제품까지 영역을 확대한것이죠. 그래서 고급 인조모피를 소재로 한 특화된 의류와 완구·가방·신발은 물론 침장·소파를 비롯한 홈퍼니처 분야로 확대했습니다. 꼭 한달전에 중국 상하이 공장 인근에 대지 1만평 규모의 완제품 공장을 만들어 제품선적에 들어갔습니다. 미국의 ‘포트리반’을 비롯 갭 등 빅 바이어들이게 성공적으로 본격 공급 하고 있지요”

-화제를 바꿔 보인중고등학교의 학교법인을 인수해 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하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돈 들어가는 교육사업에 투자한 동기가 있습니까.
“자원빈국인 우리나라가 세계 11위 경제대국이 된 원동력은 높은 교육수준 아닙니까. 기업에서 번 돈을 교육사업에 투자한 것은 사회환원이란 차원에서 기업인들이 관심을 가져야 된다고 봅니다. 그런 소명의식에서 대학을 물색하다 평소 축구관계로 인연이 있는 보인학원을 인수한겁니다. 지금은 저희 아호를 딴 대주학원으로 개명했습니다만…. 또 기업을 2세에게 물려주는 것 보다 기업의 여력을 후진 양성에 투자하는 것이 더욱 보람있는 일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평소 대한축구협회 중학교축구연맹회장으로 스포츠발전에도 많은 기여를 하신걸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만 그런 인연으로 축구명문인 보인중고교를 선택하신 것 아닙니까.
“소문 빠르네요. 제가 대한축구협회 중학교연맹회장을 다년간 맡아오면서 이 학교 관계자들과 친숙히 지냈죠. 사실 보인학원은 일제치하에서부터 올해로 98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민족장교들의 혼이 서린 학교입니다. 이런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학교를 재정이 어렵다고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 1차 제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 60억원 규모를 출연해 2004년 7월 이사장으로 취임한 것입니다. 과거 보인 상고에서 인문계로 바뀐 이 학교를 앞으로 3년후엔 송파에서 가장 앞선 명문고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교실증축 등 과감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고 TF팀을 구성해 명문고로 변신하기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만드는 등 본격작업에 들어갔지요. 지켜보시면 곧 명문고로 탈바꿈한 보인고의 변화에 깜짝 놀라실 겁니다”

-국립 공주대학에서 명예 교육학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공주대와 무슨 인연이 있습니까.
“제 고향이 충남 공주라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평소 사재를 털어 대한축구협회 중학교연맹회장으로 헌신하면서 교육사업에 열정을 바친 공로를 인정한 것 같아요. 저에게는 과분한 상이지요. 그런데 이 대학 1호 명예 교육학박사가 김종필씨이고 두 번째가 이언택 전 장관이며, 제가 세 번째라고 들었어요. 또 며칠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네 번째로 이 대학에서 명예 교육학 박사를 받는다고 들었습니다…(웃음)

-끝으로 이 만큼 부와 명예를 축적한 자수성가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저의 좌우명이자 社訓은 又新(우신)입니다. 항상 새롭게 변하자는 겁니다. 그 바탕위에서 가족 경영을 중시해요. 직원을 가족처럼 끔찍이 생각하고 그들 역시 저를 그렇게 믿고 따르게 합니다. 하나의 예증으로 우리회사는 누구든 입사 3년이 되면 자녀 2명의 대학까지 학비를 지원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능동적으로 글로벌경영을 위해 25시를 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항상 제 자신의 가슴속에는 예리한 칼날을 간직하며 냉철한 결심과 판단력을 채근한 대신 직원들에게는 내색하지 않고 훈풍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요.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천성적으로 건강은 타고나 특별한 건강관리 비결은 없습니다만 열심히 일하는 것이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나면 골프하는 것이 취미죠”
(※핸디를 묻자 가장 잘 맞을때는 이븐파까지 했으며 2003년 8월26일 마이다스 밸리에서 홀인원을 기념패를 보여준다. 독실한 불교신자, 부인 강명 여사와의 사이에 대학 4학년인 아들과 중학생 딸 등 남매를 두고 있다.)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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