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는 박수 칠때 떠나야 한다.’지난해 4월 대구 섬유업계 首長자리를 훌훌 털고 떠난 민병오 회장(74)은 요즘 말년을 베푸는 삶으로 보람있게 보내고 있다. 6년 동안 대구경북섬유산업협회회장으로 열정을 바쳐온 그는 자신이 창업해 축성한 10개 가까운 회사경영을 2세에게 맡기고 그늘진 곳을 향해 봉사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경남 밀양 출신으로 부산대 법대를 나와 대구에서 섬유사업을 시작해 남양상사를 비롯한 유통 3사와 제직과 가연의 삼원산업, 모직물전문업체 조양모방, 염색가공의 스카이다이텍, 부동산전문회사 씨앤씨 등 작은 그룹을 형성할 정도로 부를 축성한 재력가다.
그가 섬유산업협회장직에 쏟아 붓던 열정을 10년째 맡아온 봉사단체 법무부 범죄예방 대구경북 지역협의회장직과 자신이 설립해 이사장으로 있는 대경 청소년 선도 장학재단일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또 대구경제원로 모임인 금오회회장으로서 지역사회 봉사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등 요즘도 매일 작게는 2∼3건, 많을때는 5∼6건의 스캐줄을 소화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덕을 배풀수록 경사스러운 일이 많다는 적덕여경(績德余慶)을 좌우명으로 삼고있는 민 회장의 근황이 궁금해 본지 조영일 발행인이 대구 검단동 신사옥 집무실에서 직접만나 신년 정담을 나눴다.
-오랜만입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습니다. 섬유업계 공로자인 민 회장님이 잊혀진 인물이 될까 걱정입니다…(웃음)
“무소식이 희소식 아닙니까. 사람은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그런데 잊혀진 인물이 됐으면 좋겠는데 이곳저곳에서 자주 불러대니 걱정입니다…(웃음)”
-건강이 여전히 좋아 보이십니다. 특별히 건강관리를 하십니까.
“마음을 비우면 건강해집니다…(웃음) 욕심을 부리니까 탈이 나는 거죠. 특별한 비결은 없고 시간이 나는대로 많이 걷습니다. 가급적 유산소운동을 하는 편이지요. 또 소식하는 편이구요.”
-젊어서는 술·담배를 많이 하셨다죠.
“한마디로 두주불사(斗酒不辭)이었지요. 시작했다면 밤새껏 마셨습니다. 또 담배도 하루에 5갑을 피었으니까요.”
-술 담배를 끊은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무슨 계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나이 50이 되니까 건강을 걱정하게 되더둔요. 또 담배를 워낙 많이 피우다 보니 얼굴색이 누렇게 변한거예요. 독한마음 먹고 끊었지요. 제 신장이 원래 167센티정도 되는데 늙으니까 줄어들어 지금은 163센티밖에 안되요. 체중은 그때부터 56∼60Kg사이를 유지하고 있어 아직 건강한 편입니다.”
-화제를 바꿔 작년 4월 11일 이었지요. 주변의 유임권유를 뿌리치고 떠나실 때 솔직히 시원 섭섭하셨지요.
“시원했을 뿐 섭섭한 생각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다만 섬유업계에 도움을 못주고 어려운 시기에 물러난데 따른 죄책감이 컸지요. 사람은 머물때와 떠날때를 분명히 구분할 줄 알아야합니다. 70대 중반에 단체장을 맡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과욕이지요. 제가 원로가수 박재홍씨의‘물레방아 도는 내력을 좋아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웃음)”(민회장은 이대목에서 실제 벼술도 싫다만 명예도 싫어…라며 집무실에서 한가닥을 구성지게 읊었다).
-당시 섬산협회장 연임을 포기한 이유중에는 재임중 가슴에 맺힌 섭섭한 같은 것도 작용했다는 후문이던데요.
“솔직히 사람의 진실성을 몰라주고 폄하하고 왜곡한 사람들에 대해 섭섭한 감정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요. 그러나 일을 하다보면 성원하는 사람도, 반대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 아닙니까. 지금은 모든 것 다 잊고 오직 남은 여생 가급적 어두운곳을 향해 베풀고 사는 것을 보람으로 삼고 있습니다.”
-요즘의 일상은 어떻게 보내십니까.
“아시다 시피 아직도 이것저것 맡고 있는 것이 많아요. 섬유산업협회장 그만두면 내시간이 많아 좋을 줄 알았는데 이곳저곳 챙겨야되고 부르는 곳도 많아서 바빠요. (직원이 짜준 스캐줄표를 직접보여주며 오늘도 5건이라고 확인시켜준다.)
-법무부 범죄예방협의회 대구경북지역협의회장을 10년동안 맡아 오셨는데 그 자리에 특별히 애착을 갖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수석부회장 4년, 회장 6년을 합쳐 10년동안 맡고 있습니다만 명예나, 감투가 아니라 순수한 봉사단체입니다. 소명의식이 없으면 하기 어려운 자리지요. 사실은 작년초에 임기가 만료돼 고사했습니다만 유임권유가 워낙 강해 하는 수 없이 수락했어요.”
-대경청소년장학재단이사장을 맡고 계신데 재단 기금은 어느정도 됩니까.
“재작년에 제가 3억을 내고 가까운 분들이 이사로 참여해주셔서 4억5000만원으로 시작해 장학사업을 하고 있지요. 지역에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 20명을 선발해 연간2회에 걸쳐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어요. 재단기금을 10억원으로 늘리기위해 저와 이사진들이 좀더 쾌척할 생각입니다.”
-금오회장을 맡고 계신데 어떤 모임입니까.
“이것도 순수 지역원로경제인들의 봉사모임입니다. 군과 공무원·소방·경찰공무원은 물론 효자·효부를 선발해 매년 금오대상을 시상하는 보람있는 일을 하고 있어요.
-본질문제로 들어가 민 회장께서 물러나신 이후 대구섬유산업이 더욱 가파르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대안을 찾아야 할까요.
“업계가 많이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업계가 거의 자포자기 상태로 체념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이래서는 안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강한 신념을 갖고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전력투구하면 길은 있다고 봅니다.”
-미래가 보여야 신념도 갖고 투자를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추상적인 얘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아이템을 차별화하고 시장을 다변화하는 것만이 살길입니다. 삽질하지 않고 물이 고일 수 있습니까? 지난 10년간 대구 섬유업계가 투자하지 않아 오늘의 공황을 자초한 것입니다. 제자랑 같지만 저는 3년전 남들이 모두투자하지 말라고 할 때 100억원들여 염색공장을 만들었고 자동화 설비를 갖추었습니다. 그런 투자가 있었기에 오늘날 끄떡없이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야한다는 말씀입니까.
“쉽고도 어렵고 어렵고도 쉬운 얘기입니다. 대구의 주력품목인 합섬직물을 보면 중국과 똑같은 제품을 만들어 바로 중국시장에 파는 누를 범하고 있습니다. 될 법이나 하는 얘기입니까. 한마디로 일본처럼 중국이 만들지 못하는 제품을 만들어 넓은 중국시장에 파는 지혜와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공식은 뻔하지만 이미 탈진상태인 대구업계의 능력으로는 일본을 벤치마킹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고 봅니다.
“섬유도 중요한 국가 기간산업입니다. 산업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지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일본은 중앙정부가 지원했고 이태리도 지방정부가 그렇게 했습니다. 대구시는 뒤주가 비어서 재원조달이 불가능합니다. 중앙정부가 요즘 얘기되고 있는 클러스터 구축에서부터 기술개발과 설비투자에 과감한 지원이 절대 필요하다고 봅니다.”
-얘기는 다릅니다만 섬유산업협회장 재임기간에 이루워진 밀라노프로젝트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민간주도의 밀라노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이루워지지 않았습니까. 염색기술연구소도 세계적인 수준이고 개발연구원도 정보센터같은 것은 문제가 있지만 대체로 잘했다고 봅니다. 패션센터는 아직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으나 앞으로 잘할 것으로 봅니다. 또 PID도 제가 맡고 나서부터 성공적으로 치뤘고요. 저는 누가 뭐래도 민간주도의 밀라노프로젝트는 매우 성공적이라고 자부합니다.”
-어패럴밸리 조성을 둘러싸고 아직도 서울에서부터 회의적인 시각이 큽니다. 타당하다고 보십니까.
“어패럴밸리 조성은 합섬직물위주의 대구섬유산업을 위해 필연적인 논리이자 현실적인 대안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꼭 실현해야됩니다. 다만 추진과정에서 미스테이크가 많았던 것은 부인못할 사실입니다. 중앙정부에서 처음 700억원의 재원이 조달됐을 때 무조건 35만평의 부지부터 샀어야 했어요.
중앙정부자금을 땅 사는데 쓰면 문제가 있는 경우 그것을 예금하고 대신 대구은행에서 기채를 해서라도 땅부터 샀으면 일이 수월하게 진행됐을 겁니다. 당시 평당 20만원하던 땅값이 지금은 100만원으로 오르지 않았습니까?”
-다소 다른 얘기지만 비산염색공단 이전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이전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공단조성당시와 지금의 상황이 많아 바뀌었고 입주염색업체들이 과잉설비와 일감부족으로 도산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적극 검토돼야된다고 봅니다. 굴뚝산업을 대구시 중심지가 된 비산공단에 두고 세원문제에 집착해 이전을 반대한다는 것은 대구시가 단견이라고 보는 것이죠. 그러나 한편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인프라를 갖춘 비산염색공단을을 옮긴다는 것도 국가적인 손실이라는 생각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어찌됐건 이전이 확정된다해도 10년을 걸리지 않겠습니까.”
-끝으로 섬유산업협회회장 재임시절 못다한 아쉬움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사실 제 욕심으로는 선산협회장 재임기간에 섬유박물관을 만들거나 준비는 갖춰져야한다고 생각했었죠. 지난 역사나 후세들에 대한 교육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인데 그것을 이루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남을 위해 베풀고 사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 없습니다. 제가 필요한 곳은 어디든지 갈겁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국내는 물론 외국여행을 더 자주할 생각입니다”
-오랜시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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