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5년 창업한 우편물 急送서비스 회사 아멕스(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이 회사는 정부의 우편요금이 비싸기 때문에 이에 대항하기 위해 설립되었고 서비스 대상품목도 일반우편물에서 귀중품, 현금, 수표 등으로 확대.1891년엔 여행자용수표(트라벨러즈ㆍ체크) 분야에 진출,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여행서비스업무에까지 뛰어들어 1차세계대전후의 유럽여행 붐으로 급성장했다. 아멕스의 성장은 2차대전 후에도 이어졌고 58년에는 「아멕스」라는 크레디트ㆍ카드를 발행, 크게 인기를 얻으므로써 국제은행사업 확장에 대성공을 거두었다. 전세계 약 4백개소에 달하는 영업소의 기구개편, 컴퓨터와 통신 시스템도입 등이 일단락된 60년대 중반부터는 기업매수에 의한 복합기업(콘그로머리트)을 목표로 기업매수작전에 들어간다. 68년 보험회사와 투자신탁회사, 컴퓨터의 리스회사를 시작으로 증권회사까지 매수, 76년엔 금융자산 40억달러, 크레디트ㆍ카드회원수 8백만명, 취급액 1백억달러를 기록했다. 이에 힘입어 아멕스는 기업매수작전을 더욱 활발히 전개, 87년엔 크레디트ㆍ카드 2천 8백만매 발행. 운용자산 3천억달러, 연간 이익 1백20억달러라는 종합금융서비스 분야의 거대기업으로 변모했다. 그러나 83년들어 아멕스에도 위기가 찾아온다. 보험회사가 7억달러의 적자를 기록, 아멕스株가 하루에 10%씩 폭락했으며 86년엔 멕시코, 브라질 등 중남미제국의 누적채권 23억달러가 변제불능 상태에 빠진다. 따라서 아멕스 은행이 87년 6억3천만달러의 적자를 계상한데 이어 87년 주가대폭락(블랙ㆍ먼레이)으로 증권회사도 큰손실을 입어 자금난을 타개하기 위해 산하기업과 보유주식매각에 나선다.아멕스는 이같은 난국의 타개를 위해 전통적사업인 신용카드와 여행업무에 주력했으나 높은 수수료로 인한 고객불만으로 실적은 계속 악화. 자금난이 계속되면서 증권, 투신사매각, 은행부문 산하기업의 매각 등으로 종합금융서비스망은 완전해체 되었다. 아멕스는 전통적인 여행서비스와 신용카드를 중심으로 하는 회사로 되돌아왔으나 여행ㆍ카드업계의 극심한 경쟁 때문에 전도가 그리 밝지만은 않다.- 인도네시아의 華商 아스트라 - 1957년 中國系 인도네시아인 윌리엄ㆍ스루자야가 친척ㆍ친지들의 출자로 설립한 무역회사. 농산물수출, 기계류수입에서 트럭수입, 자동차조립업에도 진출, 성공을 거둔 華商 아스트라. 이어 農場, 林業, 水産業, 木材ㆍ식품가공 등으로 다각화하면서 약진을 거듭했다. 그러나 74년엔 인도네시아의 反日暴動으로 日本 도요타 自動車와 제휴 설립한 조립ㆍ판매회사가 불타버렸고 75년엔 부동산개발사업의 실패로 도산위기에 직면한 일도 있었다. 이같은 충격을 이겨내기 위해 아스트라는 기업체질을 인도네시아의 國策에 맞추는데 노력한다. 자동차부품이나 기계류의 국산화를 추진하고 국민의 대다수인 말레이시아系 주민들의 채용을 늘려나갔다. 80년대로 접어들면서 정부가 輸入代替型에서 輸出志向型으로 공업화 정책을 바꾼데 발맞추는 한편 회사주식공개, 사채발행 등으로 자금조달 면에서 근대화해 나갔다. 80년대 후반의 아스트라는 자동차, 기계, 농ㆍ수산, 식품, 건설, 부동산, 금융, 리스분야까지 다각화, 산하기업이 2백여개에 달하는 인도네시아 선두 그룹으로 성장했다.90년대들어 아스트라는 창업주의 장남이 이끄는 또 다른 그룹 「순마」에 문제가 생긴다. 순마그룹은 금융, 부동산사업을 주축으로 은행매수 도시개발공사 등을 태국, 필리핀, 베트남, 홍콩, 독일 등에서 전개하고 있었는데 地價하락, 자금난으로 이어진 경영악화로 누적채무가 3억달러 이상이나 되었다. 91년 후반, 주식의 대량매각으로 위기를 탈피하려 했으나 결국 부도사태로 순마은행이 영업정지처분을 받는다. 92년 12월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 은행의 면허를 취소, 청산명령을 내렸는데 이 시점에서 채무가 7억 5천만달러에 달해 순마그룹은 물론 母企業인 아스트라그룹의 주식을 모두 팔아도 절반밖에 변재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인도네시아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 때문에 政財界가 공동으로 내놓은 대책은 중점기업의 매각. 財閥華商들이 중심이 된 컨소시엄에 아스트라 주식의 45%가 매각되었고 도요타 자동차도 8.3%를 취득, 아스트라그룹은 해체 상태가 되었다. 창업자 일족은 회사명칭을 「스루야ㆍ라야」로 개칭. 부동산, 농장, 상업 등을 중심사업으로 재기를 도모하고 있으나 이미 지난 날의 영광은 사라지고 인도네시아 기업그룹의 랭킹 10위 이하로 전략하고 말았다. <본지 최인봉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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