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면도기 업계 군림했던 질레트<질레트>라고하면 안전면도가 연상될 정도지만 이회사의 취급상품은 매우 다양하다. 보스턴에 본부를 둔 질레트는 '브라운, 전기면도기, '듀폰' 라이터, '워터맨' '파카' 만년필, 화장품, 두발용품, 믹서기, 커피메이커 등 이름있는 상품들을 많이 생산하고 있다. 종합상사도 아닌 일개메이커가 자기회사의 판매·물류루트에 따라 세계각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판매하는 경영방식은 흔치 않으며 미국에서는 이런종류의 사업을 「아이디어의 국제무역」이라 부르고 있다.1895년 킹·질레트가 일회용 면도날을 사용하는 안전면도를 발명, 고심 끝에 1903년 사업화에 성공한 회사 <질레트>.그후 반세기동안 세계의 면도날시장에 군림해 왔으며 미국시장의 70~90%, 기타 외국서도 50%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자랑해왔다.그런 질레트가 왜 아이디어의 국제무역을 전개하게 되었을까.질레트의 태평성세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영국의 <윌킨슨>사가 일회용 면도날을 스테인리스로 제조판매한 1961년부터였다.50년대 후반 미국시장에서 점유율이 50%로 떨어지면서 쇼크를 받은 질레트가 면도칼전문 경영이 위험하다고 판단, 내놓은 대책이 사업의 다각화였다.60년대로 접어들면서 면도칼시장에서의 왕좌가 흔들리자 우선 화장품분야를 확대했고 67년엔 5천만달러를 투입, 독일의 가전메이커 <브라운>을 매수한다. 그후로도 70년에 볼펜의 <오토포인트>, 71년엔 프랑스의 라이터회사 <듀폰>, 72년 스위스의 피혁메이커 <벡스톤> 등 기존기업을 매수하는 방식의 사업다각화를 활발히 전개한다. 10여년간 추진한 사업다각화 노력으로 73년 질레트의 총판매 실적중 면도칼 매상은 30%밖에 안되고 화장품이 30%, 가전제품 20%, 기타 20%로 변모했다. 그러나 73년을 피크로 또다시 질레트의 실적이 악화하기 시작한다.다각화에 따른 새사업들이 판매실적은 좋았으나 수익으로는 연결되지 않은 것이다. 그무렵 회장품과 필기구부문에 세계적인 가격인하경쟁이 벌어져 적자사업이 늘어난 것.그런데도 질레트는 생화용품보다 내구 소비재와 사무기기, 플라스틱, 과자류 등 경험도 없는 분야로의 사업다각화 노선을 고집했다.특히 74년 전자계산기, 76년 디지털시계로의 진출은 큰 기대를 모았었으나 이역시 저가투매회오리에 밀려 일찌감치 철수했고 가전부문도 6백여종의 상품분야중 3분의 2를 포기하는 감량작전에 몰린다.그후로도 질레트는 계속 사업축소, 사내기구개혁 등을 추진했으나 기나긴 시련의 터널을 벗어날 날은 요원한 것 같다. 치약과 비누의 代父 콜게이트·팔모리브콜게이트는 치약으로 성공, 1928년 팔모리브와의 합병으로 비누분야에도 진출한 미국의 세계적기업이다. 해방후 특히 6.25후 우리나라서도 고급치약, 고급세수비누로 알려진 콜게이트·팔모리브는 50년대에 있던 미국의 洗劑전쟁에서 P&G사에 압도적으로 패배하므로써 힘겨운 역정의 길로 들어선다.당시 콜게이트·팔모리브는 연간매상 38억달러, 종업원 약 4만명규모로 해외사업부문을 빼고는 경쟁사인 P&G(프록터&갬블)에 크게 미치지 못했으며 계속 추격·잠식 당하는 상태였다.71년 새회장이된 데이비드·포스터는 전략전환에 착수한다.콜게이트·팔모리브가 P&G를 이기지 못하는 이유는 상대회사가 마케팅지향형인대 반해 좋은 제품만 만들면 잘팔린다는 기술지향형이었기 때문으로 판단되고 있었다. 따라서 승산없는 주력사업 치약, 비누, 세제 등에서의 수위경쟁을 포기하고 다른분야에 힘을 쏟되 P&G와의 대결을 피하는 선에서의 다각화전략으 추진한다. 그래서 찾아낸 분야가 섬유제품. 72년 가정용을 비롯 산업용 섬유제품을 생산하는 켄들社를 3억4천만달러에 매수했고 73년에는 향수, 화장품의 명문 헬레나 루빈스타인을 1억4천만달러에 사들였으며 골프용품, 테니스, 스포츠신발분야에도 차례로 진출했다.76년엔 소시지, 애완동물용 식품, 과자 등을 생산하는 식품회사 리비아나를 1억8천만달러에 매수한다. 이와함께 타사제품을 콜게이트 판매루트를 통해 판매한다는 또다른 다각화작전으로 상사활동을 전개한다.영국의 면도칼, 독일의 접착제 미국의 플라스틱용기, 조리용기기에 과자류까지 취급했다. 이같은 노력으로 콜게이트의 판매실적은 5년만에 2배로 신장했으나 78년부터 다시 경영난에 부딪친다. 화장품의 헤레나 루빈스타인 등 매수했던 기업의 대다수가 계속 적자상태였으며 본업인 치약과 비누류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79년 포스터 회장이 밀려나고 새회장이 된 58세의 케이스·크렌은 다각화작전을 전면포기한다. 전래의 본업인 치약, 세제류에 연구·시설개선자금을 집중투입하면서 문제의 화장품 회사를 매각하는 등 불량자산정리에 나선다. 콜게이트·팔모리브의 이같은 재건작업은 순조롭게 진행, 87년엔 치약, 세제류의 시장점유율이 50%대로 회복한다. 그러나 라이벌인 P&G는 콜게이트가 허덕이는 동안 판매량이 4배로 늘어나 한때 업계를 리드했던 해외분야까지 완전히 제압, 야망의 다각화전략은 좌절로 끝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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