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만에 막내린 걸프石油1901년 석유광산업자 제임스 게퍼가 텍사스주 스핀들탑의 유전을 발견하면서 창업한 <걸프石油>.벤처투자자 멜론형제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걸프석유는 창업후 몇 년간 몇차례의 위기에 몰린다. 유전이 고갈되어 판매할 석유가 없었던 일이 있었는가하면 그무렵 석유업계를 독주하고 있던 록펠러의 스탠더드석유에 회사를 매각하려 했으나 거절당하기도 했다.1906년이후 몇 개의 새 유전을 발견, 괘도에 오른 걸프는 1910년대에 록펠러계 각사의 유력한 라이벌로 발전했다.1920~1930년대 걸프석유는 창업지인 걸프(멕시코灣)에서 새 걸프(중동 페르시아灣)로 진출, 쿠웨이트에서 세계적인 대 유전을 발굴하는데 성공한다.석유 메이저의 중요멤버로 부상한 걸프가 뜻밖에 타격을 받은 것은 73년 여름. 워터게이트 사건을 조사하던중 '닉슨 재선위원회'에의 비밀헌금 10만달러가 보고되면서 부터였다. 이를 계기로 일련의 불법헌금이 폭로되는데 英領바하마군도에 터널회사를 설립, 비밀구좌를 개설한후 국내외 정치인들에게 돈을 건낸 것이다.74년 10월에는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조사를 개시, 한국 정계에 400만달러를 헌금한 것 등 새사실이 불거졌고 이어 특별조사위원회가 과거 10여년간 총액 1200만달러의 정치헌금을 상세히 조사한 보고서를 제출한다.이 보고서는 법적으로 위법은 아니더라도 주주들에게 보고하지 않은 뒷거래로 도의적인 책임은 면할 수 없다고 지적했고 주주들의 손해배상청구소송, 세무당국의 탈세조사, 땅에 떨어진 회사의 신용문제 등으로 걸프는 만신창이가 된다. 76년 바브·도시회장이 물러나고 제리·맥카피가 후임으로 앉으면서 불법헌금사건과 땅에 떨어진 회사의 신뢰회복에 주력했으나 5개월후 또다른 사건이 터진다. 오래전부터 우라늄생산국과 개발기업간의 비밀협약 '국제 우라늄 카르텔'을 추적해 온 미국의회가 그 주역으로 걸프를 지목, 독금법위반혐의로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한 것.이무렵 걸프는 불법헌금, 우라늄 카르텔사건뿐만 아니라 몇가지 어려운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대부분의 유전이 외국에 있었고 이들이 차례로 국유화되면서 원유공급이 불안해졌고 석유 이외의 에너지源개발사업도 별 무성과였으며 석유화학, 운수, 연구개발, 부동산 등의 사업다각화 부문도 다른 메이저보다 뒤처지는 상황이었다.83년부터는 경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유럽의 정유·판매사업에서 전면철수하고 자산을 쿠웨이트에 매각한다.그런데도 경영상태는 계속 악화되고 주가도 밑바닥을 헤메자 기다렸다는 듯 등장한 것이 M&A 선풍.84년 4월 드디어 걸프는 <소칼>(캘리포니아 스탠더드 석유-훗날 쉐브론으로 개명)에 132억달러로 매수당한다.걸프는 창설 80년만에 그 역사를 마감했고 세계석유업계에서 걸프석유란 명칭이 사라지고 말았다.악덕 스캔들로 파산한 BCCL영국 중앙은행 <잉글랜드銀行>이 (뱅크 오브 크레디트 엔드 커머스 인터내셔날)의 지점들에게 영업정지 및 자산동결명령을 내린 것은 1991년 7월이었다. 이유는 이 회사가 장기간에 걸쳐 자행해온 불법행위 때문이었다.미국, 프랑스, 스위스 등 BCCI의 중요 활동무대였던 국가의 금융당국도 즉각 같은 명령을 내리므로써 룩셈브르크에 본사를 둔 다국적은행 BCCI는 사실상 도산상태에 빠진다.그후 세계 각국에서 그동안의 BCCI 활동상이 조사, 폭로 되었는데 그 내용은 뇌물, 매수, 탈세, 밀수, 사기, 협박 그리고 암살까지 모든 종류의 범죄행위가 포함돼 있었다.불법 내지 범죄행위로 비롯된 자금을 머니 론더링(불법자금 세탁)하는 기능과 각국 첩보기관이나 게릴라조직의 비자금을 취급하는 기능도 발휘한 사실이 밝혀졌다.BCCI는 파키스탄 사업가 아가 핫산 아베디가 1972년 런던에서 창업했다.주요 출자자는 페르시아만 산유국 아랍에미리트의 아브다비首長일족 그리고 정부기관 등이었다.아랍산유국과 파키스탄인 경영자가 손을 잡은 것은 이 은행이 '이슬람 세계의 발전에 공헌한다'는 목표때문이 었으며 사우디, 두바이에서도 출자자가 참여했고 인도태생 무역·해운업자 고카르형제도 협력자가 되었다.73년 제1차 석유위기로 원유가격이 급등하면서 BCCI에는 거액의 오일·머니가 흘러들어와 예금이 급증했고 이를 계기로 세계각국에 자회사와 지점을 개설, 단기간에 다국적 은행으로 변모한다.룩셈브르크의 지주회사, 텍스·헤이븐(세금도피처)으로 알려진 英領 케이먼諸島의 子會社 등이 세무당국이나 금융당국의 감시망을 피하는 조직으로 활약했다. BCCI가 파국을 맞은 것은 고카르형제에게 융자한 거액의 자금에 문제가 생기면서 비롯된다. 세계적인 해운불황으로 위기에 빠진 이 회사에 불법조작으로 염출한 자금을 쏟아 붓고 중동산유국과 이슬람 각국 정부요인들의 부정축재를 돕기위해 비밀구좌를 제공했는가 하면 마약이나 무기거래 같은 불법거래에 융자하고 결제하면서 뇌물을 주고 받는 사례도 늘어났다.부정행위를 의심하기 시작한 각국의 수사당국에 처음에는 뇌물로 이를 무마했으나 결국 FRB가 조사에 나섰고 마약자금세탁혐의로 미국 플로리다주로부터 기소를 당하게 된다.BCCI의 경영상태는 급격히 악화, 88년 5천만달러, 89년에는 5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으며 잉글랜드은행도 조사를 진행, 91년 7월 드디어 영업정지 명령을 내리게 된다.그후도 BCCI는 부정과 범죄행위에 대한 조사와 재판이 세계각지에서 진행되면서 수많은 자회사가 해산 또는 청산당하는 비운을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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