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산업 '無에서 有' 일군 숭상받을 덕목"섬유는 사양산업이 아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섬유산업은 영원하다" 신념을 바탕으로 한 뚝심으로 평생 섬유만 고집해 온 고인의 지론이다.때문에 고인이 일생을 바쳐 일구어 온 동국무역은 한때 30대 그룹이면서도 국내 대다수 재벌들이 하고 있는 것처럼 첨단산업 진출이나 부동산 투자 등 재테크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오직 섬유에만 고집스럽게 집착해 온 진정한 섬유인이다.경북 달성 출신으로 한학을 한 白南道씨의 4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서당을 다니면서 소학 통감을 읽었고, 5년제 노동학원을 졸업했으며, 16세 때 결혼 곧바로 大邱로 와서 장삿길로 접어 들었다.처음 시작한 것은 시골장을 돌며 손쉽게 할 수 있었던 염료 행상. 어느 정도 돈이 모이면 西門시장에서 포목상으로 진출할 꿈을 가지고 있던 白潤基씨(고인의 어릴 때 이름)는 착실히 돈을 모아 갔다.돈이 조금 모이자 현 시민극장 맞은 편에 비단을 취급하는 白潤基상회를 조촐하게 마련 西門시장 진출에 한발짝 다가갔다. 신용과 의리를 생명처럼 여기며 백윤기 상회는 문을 열자마자 서문시장을 드나드는 전국의 도매상들의 주목을 끌면서 급속도록 성장해 갔다.그러나 42년 일제말기 강제 기업정리에 휘말려 점포를 정리해야만 했다. 짧은 장사 기간이었지만 제법 많은 재산을 모았던 백윤기씨는 45년 해방되기 전까지 2~3년간 반야월로 나가 과수원을 시작. 본의 아니게 자신의 섬유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외도(?)를 잠시 했다. 그러나 인플레가 워낙 심해 벌어놓은 재산을 삽시간에 모두 까먹을 것을 우려한 윤기씨는 48년 내당동에 목제직기 20대로 평화직물공장을 설립했다가 6·25로 섬유가 잘 팔리지 않아 시련을 맞았다.53년 벌어 논 재산중 상당부분을 날려 버리고 평화상회란 간판으로 이조 말엽부터 엄청난 거부들을 배출해 온 西門 시장으로 진출했다. 당시 전국적인 상권을 거머쥐고 있던 서문시장은 경향각지에서 몰려드는 상인들로 번창일로에 있었다. 백윤기씨가 서문시장에 진출했을 때는 朴在甲(甲乙그룹 창업자. 작고) 등은 이미 자리를 잡아 원대한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백윤기씨는 장사 배짱이 남보다 컸습니다. 거래를 한 번 트면 남을 좀처럼 의심하는 바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고객을 늘리는 비법이었지요. 당시 거래고객은 1백50명정도로 추산됐는데, 모두 윤기씨의 이런 심성에 끌렸는가 봐요" 함께 장사를 하기도 했다는 어느 인사는 이렇게 회상했다.결국 고인의 남다른 배짱이 최고의 장사 수단이 되었다는 것이다. 서문시장에서 어느 정도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고인은 53년 대구 노원동 1가에 직기 40대로 아주(亞洲)섬유공장을 설립, 한번 실패했던 직물제조업에 다시 뛰어 들었다.이것이 지금의 동국무역 전신이며 나중에 동쪽나라에서 제일가는 기업으로 만들고 싶다는 뜻으로 동국직물로 이름을 바꿨다.고인은 아주직물 이후 6.25 섬유 특수, 60년대 이후 정부차원에서 추진된 수출 드라이브 정책에 힘입어 사세를 급속히 확장하게 된다..맨손으로 직물 제직을 시작한지 17년 만인 1965년 서울에 동국무역 섬유 전문 수출창구를 개설, 섬유 대기업으로 서서히 부상하기 시작했다.5년 후인 70년에는 염색 가공업에도 진출 비산염색공단에 동국화섬을 세웠고, 72년에는 동국직물 반야월공장, 자수 전문인 우일산업(73년), 성서 협업단지도 조성(74년)했다.76년에는 동국방직을 설립하여 면방에도 진출하였으며, 폴리에스터 원사 사업을 위해 합섬공장 설립을 추진했으나, 정부 당국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좌절을 당하기도 하나, 고인의 합섬부문 진출에 대한 집념은 집요 해 82년에 결국 일산 30톤의 합섬공장 건설에 착공하게 되어 오늘과 같은 대규모 공장을 가동하는 등 명실공히 원사에서부터 제직, 임가공까지 일괄공정 체제를 갖춘 세계 굴지의 종합 섬유회사의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고인의 별명은 등소평이다.외모가 닮은데다 결정만 내려지면 불도저처럼 고집과 뚝심으로 밀어 붙이고, 지역 경제에 문제가 생기면 전면에 나서지 않고 배후에서 해결을 해 주는 막후 실력자라 하여 붙여진 별칭이다.83년과 84년 계속되는 불황으로 직물업체마다 자금난으로 허덕일 때 금융기관들이 지원을 외면하자 고인은 참다못해 대구은행 권태학(權泰學) 행장을 설득하여 200억원의 자금을 받아냈다. 이 일을 계기로 지역 섬유업계는 막혔던 돈 줄이 풀리고 곧 바로 터진 3저 호황에 힘입어 급성장 할 수 있게 됐다.고인은 평소 국가이익이 기업이익보다 앞서야 한다는 소명의식으로 섬유산업 발전을 위해 헌신해 왔다.이러한 생각은 세계적인 경기 불황으로 수출길이 막혀 재고부담이 엄청나게 늘어나는데도 결코 덤핑을 않은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막강한 생산능력을 갖춘 동국무역이 덤핑을 하기 시작하면 시장이 교란되고 다른 중소기업들이 살아 남기 힘들어 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동국의 직기는 세워놓고 하청업체들의 직기는 돌리도록 했던 것이다.제조업과 수출에 대한 집착도 남달랐다.고인은 돈이 모이면 모이는 대로 공장을 세웠고, 이로인해 상시 종업원은 1만명이 넘었고, 협력업체를 포함하면 10만명 이상의 고용을 창출하여 지역경제에 이바지 하였다. 이는 기업인으로서 번 돈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일생을 섬유 제조업 발전을 통한 고용 창출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평소 고인은 외화 가득율이 높은 섬유수출을 유난히 강조해 왔다.이에 따라 창업이래 내수 보다는 수출에 전념해 온 까닭에 국내 보다는 해외에 더욱 알려진 동국무역은 92년 5억1천만불을 수출하여 섬유직물 단일업체로는 최초로 5억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그 해 수출한 원단 3억2천만 야드는 남산만한 크기의 엄청난 물량으로 지구를 7바퀴 반을 돌 수 있고, 1인당 4야드를 기준으로 할 때 8천만명이 옷을 해 입을 수 있는 물량으로 당시 업계에서는 한동안 화제가 되기도 했다.고인은 생전에 대구 경제계의 대부(代父)라 불렸다.그러나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조언하고 조정하는 배후 실력자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지역경제의 영향력에 비해 공식적인 감투는 적은 편이다. 79년 대구상공회의소 부회장, 84년에 섬유기술진흥원 이사장을 역임했고, 대구경북 연사직물 생산협력협회(85년)와 대구경북 섬유산업협회(93년)를 창설해 초대회장에 추대된 정도이다.반면에 사회활동은 대체로 활발한 편이었다.지난 79년 장학재단을 설립하여 매년 소년소녀 가장 60여명과 대학생 80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왔으며, 동국실업고등학교를 설립하여 불우 학생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 주었으며, 90년에는 헌암 의료재단을 설립해 구미 중앙병원을 통해 공단 근로자와 가족을 위한 의료지원 사업활동을 펴는 등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 해 왔다.또한 고인은 독실한 불교신자로서 지난 81년 대한불교 조계종 대구 신도회장에 취임하여 종파간 갈등해소에 주력했으며, 신도회관 건립에도 앞장서 왔다.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석류장(84년), 금탑산업훈장(95년)을 수상했으며, 96년에는 계명대학교로부터 명예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헌암(憲岩) 백욱기(白煜基)회장 약력■인적사항성 명 : 헌암 백 욱 기 (憲岩 白 煜 基, PAIK, WOOK-KI)생년월일 : 1919년 11월 29일생 출생지 : 경북 달성현주소 : 대구광역시 북구 노원동 1가 232번지■학 력1940년 9월 대구고등학원 수료1996년 2월 계명대학교 명예 박사학위 취득■경 력1950년 7월 동국직물 설립1965년 12월 동국무역㈜ 설립(회장)1970년 5월 동국화섬공업㈜ 설립1971년 4월 한국직물 시험 검사소 감사1972년 1월 한국직물 연합회 이사1973년 5월 한국레스㈜ 설립1976년 2월 대구·경북 견직물 공업 협동조합 이사1976년 3월 동국방직㈜ 설립1977년 5월 동국종합전자㈜ 설립1978년 12월 풍원산업㈜ 설립1979년 3월 동국장학재단 이사장1979년 5월 대구 상공회의소 부회장1979년 11월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 상임위원1981년 12월 대한불교 조계종 대구직할시 신도회장1982년 3월 동국합섬㈜ 설립1984년 1월 대구 섬유기술 진흥원 이사장1985년 10월 사단법인 대구·경북 연사직물 생산협력협회 대표이사1990년 10월 의료법인 헌암 의료재단 구미 중앙병원 이사장1993년 5월 대구·경북 섬유산업협회 회장1995년 5월 대구·경북 섬유산업협회 명예회장1996년 7월 동국무역 그룹 명예회장■상 훈1969년 12월 상공부 장관 표창 수출유공1978년 3월 재무부 장관 표창 성실납세1978년 12월 노동청장 표창 우수사업체1984년 2월 국민훈장 석류장 수상1989년 12월 국무총리 표창1992년 11월 섬유 5억불 수출의 탑 수상1992년 12월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1995년 4월 금탑산업훈장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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