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충무로 2가 뉴서울빌딩 11층에 위치한 (주)해동 본사.150평에 이르는 사무실의 절반을 영업부 4개 본부 직원이 비좁게 사용하고 있는데 반해 절반은 잘 정리된 채 텅비어 있어 방문객들이 의아함을 떨칠 수 없다.그러나 텅비어 있는 공간 70여평은 한국제일의 합섬직물 상품력을 인정받고 있는 이 회사의 상담실과 회의실. 상담실은 독자 개발한 각종 최고급 합섬 및 교직물 샘플이 걸려있고 벽에는 피카소와 함께 세계 3대 거장인 '미로'와 '마티스'의 그림이 눈길을 끈다.또 하나 분위기를 사로잡는 것은 지난 70년 제작된 독일 지멘스사 제품의 고풍스런 대형 라디오에서 은은한 클래식 선율이 흘러나오고 있어 바이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그리고 전체 사무실 구도 중 지나치게 크다고 보여진 회의실 역시 고가 그림과 함께 깨끗하게 정리돼있어 대기업 회의실을 연상케 한다.바로 탁월한 경영능력과 함께 그림과 음악에 남다른 조예를 갖고 있는 유성렬사장(51)의 감성이 독특한 차세대 합섬직물 신소재개발의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할 수 있다.고집스럽게 차별화 신소재로 승부를 걸어 성공한 비결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실감케 한다.'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제품'을 슬로건으로 총 매출의 3%이상을 R&D비용으로 투입해 연간 수십억원을 쏟아 붓고있는 이 회사는 독보적인 상품력으로 패션선진국 유럽에서 더욱 유명하다.최고급 합섬직물과 신합섬교직물을 세계적인 유명브랜드 조르지오 아르마니에 야드당 5달러 이상 짜리 원단을 공급하고 있다.20세기 패션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디자이너인 조르지오 아르마니 브랜드는 세계 33개국 250개 매장에 판매망을 보유하며 연간매출 58억 프랑에 달하고 있다.바로 세계명성의 조르지오 아르마니 브랜드에 해동의 최고급원단이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 회사의 상품력을 공인받고있다.영국의 막스앤스팬서에도 해동의 고급원단이 대량 공급되고 있다.최고급 브랜드뿐 아니라 중가 브랜드인 '자라'와 '망고'에도 해동의 원단이 어김없이 공급되고 있다.이같은 독보적인 상품력을 바탕으로 해동은 혹심한 경기불황에도 아랑곳없이 연간 400억규모의 매출을 거뜬히 유지하고 있다.지난해 회사로서는 가장 큰 시련기였던 대 터키 엔티덤핑충격에 끄떡없이 안전성상을 유지하고 있는 저력이 여기에 있다.해동은 지난 82년 9월 유성렬사장이 8년간의 월급쟁이 생활을 청산하고 출범시켰다.경기고와 서울공대 섬유과를 졸업, 선경그룹에 입사해 생산현장과 영업, 경영 기획실을 두루 거처 폴리에스테르직물 수출회사로 태동한 것이다.海東이란 상호는 국문학자인 부친의 조언을 받아 작명했다.정인지, 권제등 이 지은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에 나온 海東의 여섯용이 날아오르는 대목을 인용해 바로 우리나라를 일컫는 海東을 채택한 것이다.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움직이지 않고, 꽃이 좋고 열매 많으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그치지 아니하므로 내가 이루어져 바다에 가느니-의 큰 뜻을 담은 것이다.그래서 브랜드 이름도 씨텍스(SEATEX)로 지었고 한국대표기업을 표방하며 출범한 것이다.이 회사의 경영전략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원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그래서 남들이 만드는 제품은 절대 따라가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원칙이다.아예 원사자체도 동종업체가 사용하는 것은 철저히 피하고 있다.실제 원사를 차별화시켜 독자제품을 만든다. 우선 유사장 자신이 원사개발의 전문가임을 활용해 친정인 휴비스 기술연구소 관계자들과 한달에 한번씩 정례적으로 미팅을 한다.본사에 있는 널따란 회의실이 왜 필요한지 비로소 알 수 있다. 세계 각국에서 발행되는 패션잡지를 구독하면서 패션트랜드를 먼저 파악한다. 그리고 자신의 안목을 접목시켜 차세대 패션트랜드를 설정하고 여기에 맞는 원단개발에 착수한다.바로 원사자체의 차별화와 개발된 원사의 독점사용이다. 때론 원사메이커 기술연구소 관계자들과 마찰을 빚을 경우도 있지만 그때마다 중합에서 어떤방식으로 몇 번을 뽑아달라고 제안하고 그 원사를 책임지고 독점 사용하는 것이 다. 바로 이같은 독점전략이 시장에서 적중해 고수익을 올리고 있다.물론 여기에는 원사메이커와의 남달리 끈끈한 신뢰감이 바탕이 된다.해동의 수출평균단가는 상상을 초월한 수준이다. 야드당 2달러에서 5달러 이상까지 다양하지만 평균단가가 야드당 2.50달러로 국내 동종업체중 가장 높다.연간 4000만달러 가까운 중견수출업체 치고는 그것도 프린팅이 아닌 PD원단으로 이 수준을 유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상품력을 바탕으로 어떤 경우라도 가격을 깎아주지 않는 고집스런 전략이다.시장구조는 최고가 원단에서 저가원단까지 소화되는 우등생시장 터키가 20%, 영국10%, 미국, 이태리, 스페인 등 매우 다변화돼있다.독보적인 상품력을 바탕으로 절대 밑지고 팔지 않고 있어 시장에서 신뢰도가 높아 작년에 터키가 가혹하게 앤티덤핑관세를 국내 14개 업체보다 훨씬 높은 38%를 해동에 부과했을 때 업계에서 해동의 위기설이 파다했으나 이같은 뛰어난 상품력을 바탕으로 유럽시장의 다변화도 무난히 타개했다. 가설이지만 해동이 터키수출에서 14개 업체와 비슷한 수준의 덤핑관세를 부과 받았다면 엄청난 판도변화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돈을 주체못할 정도로 벌었을 것이라는 것이 업계의 한결같은 진단이다. 가장 큰 주시장인 터키에서 38%의 고율관세를 부과 받고도 끄떡없이 안정성장을 유지하는 해동의 저력에 갈채가 쏟아지는 이유도 독보적인 상품력을 인정하기 때문이다.그러나 해동이라고 해서 차세대 차별화 신소재 개발이 처음부터 순풍에 돛단 듯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다. 지난 94년에 개발한 고급 린넨라이크 원단도 수없는 비용과 시간을 허비하며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성공을 이뤄냈다. 원래 선경에서 만든 리노세오원사는 원단으로 개발하는데 많은 불량요인이 있었다.해동은 이 원사를 이용해 완벽하게 개발하는데 6개월 동안 감당하기 힘든 개발비를 투입하여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결국 일궈냈다. 처음에는 불량률이 자그마치 50%이상이었고 매회 개선하고 개선해서 최고급원단을 탄생시켰다. 이때 다른 동종업계에도 리노세오원단이 여러곳 공급돼 시작을 했지만 이같은 불량률에 지쳐 모두가 포기했던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린넨라이크 뿐 아니라 또 다른 간판브랜드인 클라인아이템 아세테이트 라이크원단도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그렇게 해서 오늘의 명성을 얻은 것이다.경사는 폴리에스테르사를 위사는 각종 내추럴타입 원사를 믹스해 기능과 터치, 컬러에서 독보적인 여성복원단을 수없이 개발해내고 있는 것이다.연간 600여종, 자그마치 20여억원의 개발비를 투입하고도 20%내외의 성공률에 그치고 있지만 그 20%가 히트상품이기 때문에 해동의 성공이 뒷받침된 것이다.이번 9월 텍스월드에 출품한 500여점의 신제품을 개발하는데만 10억원 이상이 소요됐다는 것이 유사장의 설명이다. 봄·가을 두차례 출품에 20억원의 개발비가 소요된다는 얘기가 허구가 아님을 실감케 한다.해동은 다시 차세대 고급감성소재로 새로운 차원의 울라이크원단 개발을 거의 완료해놓고 있다. 기능성까지 뛰어나 또 한 번의 돌풍을 기약해놓고 있다.그런 해동도 고민이 많다. 돈과 인력, 시간 등 그야말로 신산고초를 겪으며 개발한 원단을 동종업계가 무작정 카피한다는 것이다.카피를 하면 가격이라도 지켜줘야할텐데 형편없는 가격으로 시장을 교란해 동반몰락을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어찌됐건 독보적인 차별화 전략으로 성공한 해동은 모두가 자포자기하는 업계풍토에서 과감한 공격경영을 단행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해 대구 성서공단에 40억원을 들여 2800평의 부지를 산후 다시 40억원을 투자해 이태리 바마텍스 최신형 레피어직기 52대를 도입 설치했다. 너도나도 떡쌀 담그고 도망가는 풍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설비투자, 기술투자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기존 영천공장의 노후직기를 매각시키고 물류센터로 활용하면서 아울러 구조조정을 단행해 20억원 규모의 추가 자금을 쏟아 부었다. 작년하반기와 금년상반기 기계도입설치까지 100억 가까운 돈을 투자한 것이다. 설비투자의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또 다시 600평 규모를 추가 매입해 준비시설투자를 서두르고 있다. 여성용 정장원단에서 캐주얼 기능성원단까지 영역을 확대하기 위한 포석이다."우리업계 모두 상식은 있는데 인식이 부족한 것 같아요. 중국을 무서워하지 말고 따라올 수 없는 독자영역을 구축하면 얼마든지 길은 있습니다" 유사장은 업계에 만연돼있는 자포자기 세태를 경계하면서 확고한 신념을 갖고 매진하면 꼭 중국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의미있게 강조한다. 서울본사와 대구공장직원 105명. 그리고 자체직기외에 하청임직레피어직기 200대를 가동하고있는 해동은 위기에 몰린 국내 합섬직물업계가 어디로 가야한다는 대전제를 분명히 제시해주고 있다.<曺>
저작권자 © 국제섬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