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패션경영인의 간판스타인 제일모직 패션부문 원대연 대표이사(54)는 본디 신문기자 출신이다. 고려대를 졸업하고 곧바로 중앙일보에 입사해 사회부기자로 3년간 활약하다 삼성물산으로 자리를 옮겨 27년째 섬유패션인의 길을 걷고 있는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이 분야의 1인자. 신문기자시절 몸에 밴 예리한 통찰력과 미래를 조망하는 탁월한 경영능력은 국내는 물론 패션의 본고장 유럽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 섬유·패션영업의 전문가로서 2차에 걸친 프랑크프르트 지사장 시절 유럽패션의 감성과 특성을 두루 섭렵해 이론과 실무 전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가(大家)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벨트선 밑에 주름을 잡은 주름바지에서부터 뒤를 트지 않는 노벤트 양복저고리, 그리고 신사복을 CAD화한 가벼운 언컨 수트를 국내에 처음 보급해 보수적인 신사복 패션에 혁명을 일으킨 주역이다. 여기에 빈폴 신화를 통해 난공불락으로 여겼던 '폴로'의 아성을 물리친 주역이자 박세리를 세계적 스타로 키우면서 '아스트라' 신화를 추가시킨 패션경영의 귀재로 통한다. 이같은 그의 발군의 능력은 누적적자에 시달린 삼성 에스에스 패션을 흑자기조로 전환시켰고, 통합된 제일모직 패션부문에 상상을 초월한 흑자기조를 정착시켰다. 그가 이끄는 제일모직 패션부문은 99년에 17개 유력지, 작년에 19개 유력지의 히트상품을 휩쓸었고, 권위있는 상은 거의 대부분 독차지했다. 그의 탁월한 경영능력과 정련된 강의는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AMP) 최고경영자 과정에서도 수강자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때마침 경기불황으로 내수패션업계에 고난과 시련이 예고된 신사년 새해를 맞아 그의 경영철학과 대응책, 향후 전략을 들어보는 특별대담을 가졌다. ―새해 좋은 꿈 많이 꾸신 것 같습니다. 한 살 더 늘으셨는데도 활기가 넘쳐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조사장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국제 섬유신문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십시오. 저희는 원래 신정을 세고 있습니다. 좀 쉬었더니 피로가 풀리더군요. 올해도 전력 투구해봐야죠. ―원대표의 욕심이야 자타가 공인하고 있습니다만 지난해 제일모직 패션 부문은 경기 불황에도 최대의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압니다. 삼성 그룹 경영평가에서도 처음으로 A그룹으로 분류됐다면서요. ▲별걸 다 아시네요. 솔직히 그동안 패션 부문이 그룹평가에서 하위그룹에 맴돈 것은 부인 못할 사실이에요. 아시다시피 99년 7월 1일 SS패션과 제일모직 하티스트가 통합된 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했지요. 다행히 경영성과가 우등생으로 나와 좋은 평점을 받았습니다. 달리는 말에 채찍을 더한다고 불만도 있었겠지만 저희 직원들이 참으로 고생 많았습니다. 모든 공을 제일모직 패션부문 전 가족에게 돌립니다. ―구체적으로 작년 매출과 이익 규모는 어느정도 입니까. ▲정확한 수치를 밝히는 것은 무리입니다만, 공급가 기준으로 대략 7,100억원 정도 될 겁니다. 판매가로는 9,000억원이 넘겠지요. 이익 규모는 약 400억 남짓 됩니다. ―경기가 비교적 좋았던 99년보다 내용이 훨씬 좋군요. ▲매출규모는 99년(6,900억)보다 약 5% 늘었을 거예요. 그러나 이익규모로는 전년대비 200%이상 늘어난 것이죠. 이것은 당초 경영계획보다 내부적으로 이익집중전략을 강화해 실행계획에서 이익목표를 초과 달성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공급규모는 적게 신장하면서 판매감가율을 높이자는 전략이 적중한 것 같습니다. 2000년 매출을 월별로 분석해 보니까 10월 한달만 목표에 미달했을 뿐 11개월은 모두 목표를 초과 달성했더군요. 시장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고 기민하게 대응한 결과라고 봅니다. ―올해 경기를 대부분 비관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부는 하반기부터 회복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만.....▲솔직히 출발부터 어렵지 않습니까. 작년보다 훨씬 나빠지리라고 봅니다. 물론 정부가 정치논리나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단행하면 하반기부터 나아질 가능성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국민들이 이같은 정부의 논리를 믿으려 하지 않고 있어 더욱 심각한 문제입니다. 건전한 소비는 권장해야 하는데도 사회분위기가 그렇지 못하고요 일단 금년경기가 작년보다 어렵다고 보고 대응할 수밖에 없지요. 다만 IMF때도 견뎌낸 저력을 살린다면 비관하게나 체념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결코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제일모직 패션부문도 올해 매출과 이익 목표를 축소할 생각이십니까. ▲그건 아니예요. 저희는 지난해 그랫듯이 올해도 매출은 소폭 증가하지만 이익목표는 훨씬 많이 잡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공개하기는 어렵지만 매출 7,500억원(공급가)규모에 이익은 600억원으로 상향조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수출부문에서 700∼800억원 규모가 포함될 겁니다만 이를 달성하기 위해 총력전을 전개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매출목표는 달성하지 않아도 되지만 이익목표만은 어떠한 경우라도 미달 되서는 안된다는 것이 확고부동한 저희 기본 방침이자 전략입니다. ―그같은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온 겁니까. ▲잘 모르시겠지만 저희는 IMF때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소리소문 없이 단행했습니다. 4,000명의 직원을 700명으로 줄이고 40개에 달하던 브랜드를 16개로 줄였지요. 공장을 비롯해 알토랑 같은 자산도 과감하게 매각해 조직의 슬림화를 통한 재도약 기반을 완벽하게 구축했지요. 그 과정에서 마취주사를 맞지 않고 맹장 수술을 하는 아픔을 감내 해야했습니다. 좀 외람된 얘기이지만 이제 질 경영의 노우하가 본격 만개되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어떤 불황이 와도 적자내지 않을 나름대로의 비책을 갖고 있지요. ―구조조정 얘기가 나와서 말씀입니다만 제일모직 패션부문은 추가 구조조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기본적으로 현재의 인력 구조를 그대로 유지할 겁니다. 더 이상 직원들에게 불안이나 고통을 안겨줘서는 안된다는 것이 거의 기본 생각입니다. 그래야 직원들도 안심하고 맡은바 임무에 충실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적자를 내는 부서를 계속 끌고 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거기에 걸맞게 모두가 열심히 해야겠지요. ―성공한 질 경영의 기본 방향은 무엇이었습니까. ▲가장 우선점을 둔 것은 개별 브랜드 가치향상입니다. 개방화 이전에는 브랜드수가 많고 가격이 다르면 고객이 사주었지만 외국브랜드가 물밑 듯이 들어온 국제화 시대에는 양상이 달라졌어요. 국산브랜드를 이용해 달라는 애국심 호소도 조소거리가 된지 오래입니다. 이런 개별브랜드 가치향상 추세를 모르고 국내 패션메이커들이 '무슨 패션' '무슨 모드'란 이름으로 산하에 수십개 브랜드를 운영했던 것이죠. '조오지 아르마니' 나 '크리스찬디올' '프라다' '폴로'등 세계적인 유명브랜드가 100억불, 200억불 가치를 갖고 있지만 그것은 개별 브랜드 가치이지 SS패션이나 하티스트 같은 식의 브랜드 가치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대전제에서 S/S와 하티스트란 이름을 과감히 없앤 겁니다. 내부반발도 컸고 장애도 많았지만 개혁 차원에서 정리했지요. 그 바탕에서 '갤럭시' '빈폴' '로가디스' '아스트라'를 포함한 개별 브랜드 가치를 향상시키는데 주안점을 둔 겁니다. 폴로가 그렇듯이 빈폴은 남녀 캐주얼 뿐 아니라 스포츠, 아동복, 신사복, 향수, 지갑·벨트 등 토탈 브랜드가 돼야합니다. 갤럭시, 로가디스도 신사복 단품 이미지를 벗고 남·여 토탈 브랜드로 탈바꿈하자는 겁니다. 아스트라도 이미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지요. ―노세일 전략도 여기서 비롯된 것입니까. ▲그렇지요. 지난 95년부터 빈폴을 노세일 브랜드로 결정하고 지금까지 밀고 왔어요. 내부적으로 "시기상조" 니 "경쟁은 어떻게 하고 있다드니" 말들이 많았어도 품질을 바탕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여놓고 노세일 전략을 펴니까 바로 적중한 것이죠. '엠비오'브랜드도 멋을 아는 20대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요. 이 역시 브랜드 가치를 올려놓고 노세일 전략을 편 것입니다. 저희는 기본적으로 노세일 전략으로 갑니다. 16개 브랜드 중 로가디스, 갤럭시, 빨질레리, 라피도 정도만 세일을 하고 있지만, 올해부터 빨질레리, 라피도 2개 브랜드도 노세일로 전환합니다. 품질도 올리고 유통도 대거 정리합니다. 라피도가 현재 230개 유통을 갖고 있지만 70∼80개로 줄일 겁니다. 품질성가를 높이고 전 브랜드 가치를 올려 노세일 전략으로 선회하는 것이 기본 경영전략입니다. ―제일모직이 신사복 비중을 점차 줄여가고 있는 것 아닙니까, ▲제가 93년에 제일모직 본부장으로 취임할 때 취임일성이 3가지 캐치프레이즈였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착장 문화가 바뀐다는 전제로 방향을 설정했지요. 그중 하나가 앞으로 패션트랜드는 갈수록 캐주얼화 되고 둘째 코디화 되고 셋째 토탈화 된다는 점을 강조했지요. 그당시 SS패션이나 제일모직 하티스트 모두 신사복이 주력 업종일 때입니다. 신사복 수요는 갈수록 감소될 수밖에 없지요. 넥타이 매는 공간과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지 않습니까. 도 정장은 경기를 심하게 타지만 젊은이들은 개성을 중시해 입고 싶으면 사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가급적 젊은 이를 상대한 캐주얼 의류 쪽에 비중을 많이 둬 왔지요. 그것이 적중해 오는 날 신사복 퇴조를 캐주얼, 스포츠 쪽에서 받쳐주고 있고 내용도 훨씬 우등생이 된 것이죠. ―원대표의 역작중의 하나인 빈폴이 난공불락으로 알았던 폴로보다 매출이 훨씬 많아졌습니다. 빈폴 신화를 좀 소개해주시죠. ▲93년 제일모직 의류사업 본부장으로 부임한 후 빈폴의 이미지와 상품성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어요. 그래서 동급 브랜드인 폴로제품을 사서 일일이 품질을 분석했지요. 그래서 빈폴이 좋은 점을 더욱 강화하고 폴로보다 부족한 점을 끊임없이 보강해 품질에 비교우위를 구축했습니다. 그런데 서울시내 도심백화점에 가보니 폴로는 가장 좋은 금싸라기 위치에 대형매장을 화려하게 꾸며놓고 저희 빈폴은 후미진 구석지에 그것도 조그만 매장을 주고 있었어요. 한마디로 고대광실 기와집과 오막살이의 비교였어요. 그래서 지방 백화점부터 공략을 시도했지요. 폴로와 똑같은 위치에 그보다 더 큰 매장을 달라고 해 바람을 일으킨거죠. 서울 도심백화점에도 품질비교와 평당 판매량을 기준으로 접근했어요. 그것이 계기가 돼 백화점에서 폴로와 자웅을 겨뤄 승리한것입니다. 더구나 폴로는 백화점 영업에만 치중할 뿐 가두매장을 외면했어요. 재빨리 가두매장의 틈새 시장을 공략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빈폴은 이제 공급가 기준으로 연간 850억원을 돌파했습니다. ―패션사업을 대기업이 운영하기에는 무리가 많을 텐데요. ▲그래서 제가 주장하는 것이 이른바 '스몰 앤 굳 컴퍼니'입니다. 꼭 기업규모가 작다기 보다 소프트하고 품질로 승부하는 경영을 추구하고 있는 겁니다. 제일모직도 말이 대기업이지 운영은 중소기업형으로 하고 있습니다. 대기업답게 물량으로 승부하고 안되면 산더미 같이 재고를 안은 그런 식의 장사는 안합니다. 폴로나 조오지 아르마니, 프라다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들도 중소기업스타일로 경영하고 있습니다. 퍼주는 식의 경영은 안합니다. ―제일모직 브랜드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우기 위한 전략이 무엇입니까. ▲물론이죠.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아스트라는 99년부터 미국에 진출해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T셔츠 한 장에 120달러 수준에 거래되고 있어 최상급인 이태리 브랜드와 동렬에 서 있습니다. 이같은 고급 이미지를 바탕으로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울 겁니다. 또 중국 상해에도 금년에 대규모 멀티샆??만들어 진출할 겁니다. 또 캘럭시는 북경에 진출해 최고가 브랜드로 명성을 날리고 있습니다. 신사복을 CAD화 시켜 가벼운 언컨 로가디스 신사복 역시 대만에 수출해 고급 신사복으로 각광을 받고 있지요. 아스트라, 빈폴, 갤럭시, 로가디스, 라피도를 향후 5년내 세계적인 초일류 브랜드로 키우기 위한 전략을 다각적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신규 사업 진출 계획은 없습니까. ▲몇 가지 준비하고 있지만 공개할 단계는 아닙니다. 다만 저희가 여성복 쪽이 약합니다. 패션 대기업 체질로는 어렵다고 하지만 저는 그 가능성을 보고 있습니다. 여성복쪽은 더 강화할 계획입니다. 다른 신규사업도 점차 가시화 될 거구요. ―내수 패션업계에 경영전략을 충고하신다면.....▲외람 되게 충고가 되겠습니까. 저보다 기라성 같은 분들이 많은데요.... 다만 모두가 재고를 무서워해야 합니다. 과거에 보면 65%만 팔면 성공적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위험 천만한 발상입니다. 3년간 그대로 재고를 가지면 그 회사 망합니다. 제일모직은 작년에 판매율 85%를 목표로 했다가 83%를 달성했어요. 곧 판매율 90%를 향해 정진하고 있습니다. 저희 내용이 좋아진 것도 바로 이런 것 때문입니다. 그리고 소싱을 다변화 해야 합니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가장 싸면서 품질이 좋은 것을 찾아야지, 고정거래선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저희 회사 임직원들에게 제가 자주 쓰는 말 중 하나는 '생각을 바꾸고 일하는 방법을 바꾸면 비젼이 보인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음미할수록 깊은 맛을 담고 있지요. ―패션경영의 대가로서 패션산업전망을 어떻게 보십니까. ▲패션산업은 지식정보화 사업입니다. 아프리카, 동남아에 세계적인 브랜드가 단 하나라도 있습니까.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성장잠재력이 무한 분야입니다. 패션산업은 또 유통과 물류를 통한 시스템 산업입니다. 정부나 업계가 이점에 강한 신념과 원칙을 갖고 임해야 한다고 봅니다. ―오랜시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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