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화섬(대표 이상익)이 보름간에 걸친 구조조정을 마무리짓고 정상가동 체제로 전환됐다. 대한화섬 울산공장은 18일, 지난 2일부터 보름 이상 꺼놓았던 섬유용 PET 중합노에 불을 지피는 한편 PEF 방사라인에 대한 정비·보수작업에 나섰다. 대한화섬의 가동재개로 PEF 공급은 오는 26일부터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한화섬은 이번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일산 200톤 규모 PET칩 중합노를 제외한 일산 360톤 규모의 PEF와 일산 465톤 규모 PSF 중합노의 불을 껐었다.지난 18일 대한화섬이 불을 지핀 중합노는 PEF 부문에만 한정됐으나 이번 생산재개와 함께 구조조정 전 캐퍼대비 61.6% 가동률을 보였던 PEF생산은 풀 가동체제로 전환된다. 대한화섬의 PEF 생산능력은 일산 360톤에 이른다. 반면 일산 465톤에 달하는 PSF 생산은 중단하는 대신 PSF용 중합노는 빠른 시일 내에 가동을 재개시켜 구조조정 전 중합능력 체제를 유지할 방침이다. 대한화섬은 이번 구조조정으로 근로자·사무직직원을 포함, 250명을 웃도는 인력이 명예퇴직을 신청해 전체 인원 486명 가운데 51.4%에 이르는 인력이 회사를 떠나게 됐다. 특히 울산공장 근로자에 이어 사무직 직원에 대한 명예퇴직 신청·접수 역시 직원들의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순조롭게 진행됐으나 사무직 직원이 받는 명예퇴직금은 울산공장 근로자 25개월분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한편 대한화섬은 이번에 명예퇴직을 신청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명퇴금과 함께 1인당 2000만원까지 창업자금 및 생활자금을 지원키로 했다. 이 자금은 연리 1%에 2년 거치 3년 분할상환조건이다. 또 명예퇴직을 신청한 직원들에게 오는 25일 일괄적으로 200억원을 웃도는 명예퇴직금을 지급하는 한편 창업 및 생활자금 지원과 관련 20억원의 지원금도 이미 확보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해설 대한화섬의 대규모 인력구조조정이 미세한 파열음도 나오지 않은 채 일사천리로 종결됐다. 예상 밖의 상황이다. 지난 2일 국내 화섬산업의 제 2의 구조조정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상징될 만큼 큰 파장이 예고됐던 대한화섬 구조조정 회오리는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했다. 비록 사측의 일방적인 통고로 시작된 구조조정이었으나 노사양측간 충분한 설명과 이해를 바탕으로 교감을 이루었고 모두 실리를 취하는 방향에서 합심일체의 모양새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로 이어지고 있다.다시말해 대한화섬이 명예퇴직금을 주면서까지 구조조정에 나서야 했던 절박감이나 이 같은 위기를 감지한 노조의 혜안 역시 수준급이었다는 게 이번 구조조정 사태를 지켜 본 관련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대한화섬은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2002년을 제외하고는 3년을 적자를 기록했다. 적자규모도 세자리 수를 넘나드는 규모였다. 대한화섬은 재계에서 빚 없는 경영으로 유명한 태광산업 그룹의 계열사다. 국내 어느 화섬업체보다 유동성이 풍부한 내실있는 업체가 PET영업에서 4년 동안 3년간이나 적자를 기록했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한다.국내 화섬업체 가운데 빚 없는 경영을 펼치는 데는 한 곳도 없다. 그러나 대한화섬은 아니다. 그런데도 적자를 냈다는 것은 대한화섬의 PEF·PSF 제품 경쟁력이 그만큼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원가에 들어가는 고정비용 특히 임금 부분의 경쟁력이 경쟁사보다 낮다는 것을 드러낸 셈이다.대한화섬이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에 나선 것은 이 같은 고비용·저효율 구조에서 앞으로 화섬산업의 경쟁에서 이겨낼 수 없다는 절박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같은 위기의식을 근로자들이 통찰한 것도 구조조정의 대명제를 원만하게 도출하는 데 기여했다.그러나 이 같은 구조조정에도 대한화섬은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PEF제품의 품질경쟁력 때문이다. 소위 기능성·감성 특수사를 비롯 극세사 등 고부가 수익성을 창출하는 원사품종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범용 원사로는 수익성을 창출하는 데 한계에 부딪혔고 중국을 비롯 국내 후발 화섬업체와의 경쟁에서도 밀릴 수밖에 없다. 이는 이미 지난 4년간에 걸친 경영성적표가 그대로 입증한다.그리고 인력 구조조정과 함께 생산 구조조정 차원에서 PSF 생산을 중단키로 한 것은 이를 반증하는 또 하나의 큰 예다. 휴비스나 새한이 기존 방적용 PSF 생산에서 저융점사나 콘쥬게이트 제품생산으로 발빠르게 선회한 것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생산경쟁국을 염두에 둔 생존의 활로모색이었다는 점에서 대한화섬의 사표가 될 수밖에 없다.대한화섬의 총 근로자·사무직 직원 486명 가운데 51.4%에 달하는 250여명이 어찌됐던 한꺼번에 떠났다. 이제 대한화섬의 과제는 한솥밥을 먹던 동료가 직장을 떠나야 하는 아픔을 곱씹고 품질경쟁체제를 구축하는 게 생존의 에너지가 된다는 것을 인식할 때다.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발생한 가격경쟁력은 분명 한계가 있다. 그래서 품질경쟁체제 구축만이 한껏 물오른 대한화섬의 경쟁력을 더욱 제고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보여줘야 할 때다. (전상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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