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있는 ‘빅 프로젝트’ 안된다

어두운 역사가 없는 민족이나 국가는 없다. 대한민국도 민족 상잔 6.25의 잿더미를 딛고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중언부언 하지만 어느덧 국내 총생산(GDP) 세계 10위, 무역 규모 6위, 1인당 소득 세계 27위로 지난해 G7의 하나인 이태리를 앞섰다.

무역으로 성장한 한국의 수출 대상국은 233개국에 달한다. 도쿄 올림픽 참가국 206개국보다 많고 코카콜라 판매국 220개국보다 많다. 유엔 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을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분류했다. 한국의 경제규모는 북한보다 52배나 크다. 지난 74년까지 남한보다 잘살았던 북한은 지도자를 잘못만나 폭망 했다.

때마침 대선 주자가 확정됐다. 집권 여당의 이재명 후보와 맞장 뜰 제일 야당후보로 윤석열이 결정됐다. 그동안 독선과 오만이 하늘을 찌르면서 국민 혈압 올리던 여야 후보들이 어떤 통치 철학을 펼칠지 궁금하고 불안하다. 두 후보는 고발 사주와 대장동 사건에서 자유롭지 못 한데다 때로는 오만과 궤변의 내로남불로 매를 많이 벌었다. 민심의 심판이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반대편을 무조건 배척하는 확증편향은 금물이다

대구가 무너지면 한국 섬유산업도 없다

본질 문제로 돌아가 먼저 필자가 평소 대구 섬유산업에 대해 기사 비중을 높인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음을 밝혀둔다. 한국의 섬유스트림 중 대구를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섬유산업 뿌리인 국내 면방 산업은 전성기에 370만 추에서 현재 50만추에 불과하고 그마저 가동은 40만추에 지나지 않는다. 베트남에만 40만추 가까이 탈출해 위상이 형편없이 추락했다. 화섬메이커들은 중국세에 밀려 생사기로를 헤매면서 전부 합쳐도 중국“생홍”과“행리”같은 대형회사 1개사 캐퍼의 3분의1에도 미달한다.

봉제산업은 2000년대 초반에 공동화(空洞化)됐다. 국내에는 허리부문인 직물 산업밖에 안 남았다. 대구 화섬직물과 염색산업, 경기 니트산업과 염색 관련 산업이 한국의 섬유 산업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대구 화섬직물이 무너지면 득달같이 화섬산업과 염색산단도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이미 쇠락의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지만 대구 화섬직물이 무너지면 ‘주식회사 한국 섬유산업’은 간판내릴 수밖에 없다. 끝장난 섬유산업이라면 수많은 단체와 연구소, 중앙과 지방 정부 행정조직도 존재할 이유가 없다. 섬유패션 산업의 등대지기이자 지킴이인 국제섬유신문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이 같은 대전제에서 입에 쓴 소리를 이어 간다. 대구 섬유산업을 내시경으로 들여다보면 답답하다 못해 분통이 터진다. 세상이 변해 변곡점의 꼭대기에 와있는데도 변화와 혁신에 둔감하다. 삼성전자와 애플, 아마존과 테슬라가 세계 IT시장과 자동차 유통시장을 지배하는 공룡이 등장했는데도 여전히 천수답 경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첨단설비의 자동화, 로봇화의 하드웨어 투자를 기피한 것은 물론 소프트웨어 분야에 너무 둔감한 것이다.

세계 섬유패션 시장 흐름의 소재와 디자인, 컬러, 기능성의 급변에 편승하지 못한 것은 물론 친환경 명제가 제기 된지 10년이 지나도록 리사이클 소재와 제품 생산이 대만과 중국보다 훨씬 뒤진 것이다. 변화와 혁신의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것은 물론 수십 년 이어온 장사의 기법마저 엉망이 되고 있다. 알다시피 지금은 한국섬유산업을 초토화시킨 중국의 섬유 산업이 중대 기로에 서있다. 전력난과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공장 가동률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원사 값이 폭등하고 염색료가 배로 뛰고, 직물 가격이 오르면서 납기마저 보장이 안되는 것이 지금 중국의 섬유산업이 서 있는 주소다.

대구산지도 구조적인 고임금과 인력난에 이어 원사 값 급등과 스팀료, 염료 값 급상승으로 염색 가공 인상이 줄줄히 대기하고 있다. 부자재, 포장, 운송료 등 모든 비용이 급상승해 원가 압력을 가중 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수출단가 현실화를 못하고 있다. 비교적 큰 기업이 사라지면서 세일즈 능력과 기법이 떨어져 바이어의 엄살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중국 리스크가 사라진 이 시점에서는 수출 단가를 끌어 올릴 수 있는 천재일우 호기다. 시장이 엄동설한 이라는 것은 입에 발린 변명이다. 지금은 한국산 화섬직물과 니트직물 같은 품질 좋은 원단을 공급할 나라가 없다.

벌써 일부 선도 기업은 배짱으로 바이어를 설득해 성공 사례가 나오고 있다. 터키시장에서도 수출 단가가 상승하고 있다. 바이어가 저항하면 은행 대출을 받더라도 몇 달간 오퍼 발행을 중단할 필요가 있다. 몇몇 기업은 이 방법으로 바이어를 굴복시켜 제값 받기를 성공시키고 있다. 대구 직물 조합이 조합원들에게 제값받기 종용을 위해 공문을 보낼 정도로 지금이 가격 인상 적기다. 언제까지 제살깎기 과당경쟁으로 버티겠다는 것인지 당최 알수가 없다. 수요 증가와 공급망 붕괴로 원자재를 비롯한 완제품까지 전 세계가 가격인상 열병을 앓고 있는 시점에 대구 직물 업계만 시황타령을 하고 있다.

더구나 경쟁국인 중국과 한국은 주력 제품 구조가 다르다. 한국은 연사물, 중국은 사이징물 위주다. ITY 니트직물도 한국의 독점 품목이다. 순전히 우리끼리 과당 경쟁으로 투매를 일삼아 자신도 죽고 남도 죽이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얘기는 다르지만 지난주 대구에서 아주 특별한 대토론회가 열려 전국적인 이목을 집중시켰다. 대구경북섬유산업연합회가 주최한 ‘대구경북 섬유산업 비상대책 대토론회’에서 백가쟁명식 이지만 많은 의견이 도출됐다. 이를 바탕으로 염색가공협회 회원인 지역 3개 대학 교수 3명에게 프로젝트 용역을 주기로 했다. 이 프로젝트 안이 나오는대로 T/F팀을 구성해 대선주자 캠프와 접촉해 선거 공약으로 채택토록 한다는 것이다.

2천만원 용역은 빅 프로젝트 못 나온다

지역 섬유 산업이 지리멸렬되는 절박한 상황에서 대경 섬산련이 비상대책 대토론회를 열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차기정부에서 통 큰 지원을 받겠다는 발상 자체는 아주 시의 적절하고 타당하다고 본다. 필자도 당시 토론회에 참석해 취지를 공감하고 치하하면서 부디 ‘용두사미가 되지 않고 통 큰 성과를 기대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프로젝트 초안을 맡은 3명의 지역출신 교수들이 제대로 된 대작을 만들 수 있을지 걱정이다. 단순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구축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를 바꿀 수 있는 전략을 담아야 한다. 잃어버린 20년을 극복하고 호황을 누린 일본의 사례나 이태리의 사례를 벤치마킹 할 수 있는 전략과 방법이 강구돼야 한다. 한국판 유니클로가 생기면 자연 발생적으로 대구 소재 산업은 동반 성장이 가능하다. 직물 소재 개발과 제직, 염색 기술을 뛰어넘어 디자인 패션까지 아울러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예산이 부족하면 각출 방법도 검토해야 한다. 고작 2000만원 예산으로 지역 3명의 교수에게 백년대계의 큰 그림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저작권자 © 국제섬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