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4월이다. 봄바람이 산들될 때 엄동설한 북풍한설이 몰아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대재앙이다. 봄의 전령 문턱에서 폭풍이 몰아쳐 추위 타는 사람, 얼어 죽는 기업의 아비규환이다. 건물은 가만두고 사람만 죽게 한 중성자탄보다 무섭고 핵보다 더한 가공할 공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세계 경제가 불구덩이 속으로 타들어 간다. 33년 전 블랙먼데이 이후 최악의 기록이다.

감염 공포로 공장이 멈춰 섰고 가게도 문을 닫았다. 사람의 통행이 봉쇄되고 상점이 폐쇄돼 살 사람도 팔 사람도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 실물 경제를 탈진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기업하는 사람, 월급 받는 사람 모두 전대미문의 재앙에 와들와들 떨고 있다. 저잣거리 마실 나온 사람까지 땅 꺼지는 한숨을 넘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대구 섬유산지 모조리 문 닫는다

1월 중순 불거진 중국발 우한 폐렴이 창궐한 지 2개월 지났는데도 역병(疫病)의 기세가 더욱 기세등등하다. 우리가 겁에 질릴 때 우습게 보던 유럽이 초토화되더니 미국으로 건너가 소리소문없이 죽어가는 시체가 즐비하다. 우리가 부러워하던 미국과 유럽 선진국의 보건의료 시스템이 한국보다 훨씬 후진국임을 처음 알았다. 한국의 방역 능력이 세계 1위이고 사재기 없는 성숙된 국민 의식도 금메달이다.

문제는 코로나 사태가 지나가는 소낙비가 아니라 장기화 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유럽의 외출 봉쇄와 상점 폐쇄가 길어질 조짐이 크면서 적어도 6월까지는 이 기세가 꺾일 가능성이 희박하다. 미국의 유통 바이어나 브랜드바이어들의 태도도 처음에는 단기전을 예상하다 날이 갈수록 장기전을 대비하고 있다. 매장 폐쇄가 길어질 수밖에 없고 오프라인의 기능이 정지되면서 공급과 수요 모두 멈춰 섰다.

미국의 오프라인 유통바이어 중 생필품을 병행하는 월마트와 타겟, 코스트코만이 타격을 덜 받을 뿐 메이시스, 갭, 콜스 등 의류패션 비중이 높은 수많은 유통 업체들은 장기간 매장 폐쇄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적어도 4월부터 6월까지 온라인을 제외하고는 오프라인 매출은 제로 상태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우리나라 섬유의류 기업이 의존하고 있는 미국의 유통바이어들은 자기만 살겠다고 무자비한 ‘갑’질을 자행하고 있다.

미국 바이어들은 의류, 원단 가릴 것 없이 상식도 진실도 통하지 않은 오더 캔슬이 무차별 이뤄지고 있다. 생산이 진행되는 오더 캔슬은 물론 이미 완성된 의류 제품의 선적중단에 2월에 선적한 제품까지 취소 통보하고 있다. 미국의 대형 유통바이어인 콜스의 경우 세아, 한세, 한솔 ‘빅3’와 계약한 의류 제품의 3~4월 선적 조건 1억 5,000만 달러 규모를 이유 불문하고 캔슬 시켰다. 작업에 물려 있는 오더, 완제품 선적 직전이나 선적된 제품까지 캔슬했다. 캔슬 차지는커녕 라이어 빌리티도 없이 에이전트 격인 리엔풍을 토해 일방 통보했다.

콜스와 거래하고 있는 국내 의류벤더와 원단밀 등 300개 거래 협력 기업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집단 소송 불사라는 강경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집단 소송이 결코 감정대로 녹록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소송을 해서 이긴다는 보장도 없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를 생각해 빅바이어를 포기할 수 없는 고민이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짓거리는 콜스뿐 아니라 많은 바이어들이 저지르고 있는 고약한 행태다.

결국 당하는 것은 한국 섬유 의류기업이다. 당장 국내적으로 대구 산지에 4월 들어 오더가 전멸돼 공장 문을 닫은 참혹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염색 가공 업체들 중 4월 한 달 문을 닫는 기업이 속출하면서 제직, 편직 공장들도 하나둘 문 닫는 곳이 부지기수다. 신규 오더가 없는 데다 제‧편직 후 포장까지 마친 원단을 선적 직전에 캔슬 당해 공장을 돌릴 방법이 없는 것이다. 한 집 건너 두 집 건너 휴업하더니 너도나도 따라가는 분위기가 대세가 되고 말았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대구 산지가 4월 한 달을 일제히 문을 닫고 휴업을 한다 쳐도 5월과 6월에 나아진다는 가능성이 희박한 것이다. 휴업이 3개월 이상 길어지면 공장 폐업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그 사이 떡쌀 담그는 공장이 부지기수 늘어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제·편직·염색 업체의 휴업이 장기화되면 득달같이 면방·화섬 업체로 불길이 번지는 것은 자명하다. 가뜩이나 누적 적자에 신음하는 국내 화섬과 면방 업체들의 연쇄 피해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꽃피고 새우는 좋은 계절에 추위 타고 얼어 죽는 기업이 늘어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훅’ 불면 날아갈 것 같은 국내 섬유 스트림의 허약체질뿐 아니다. 해외 진출로 승승장구하던 의류 벤더들도 걱정이 태산이다. 수천 명, 수만 명이 근무하는 해외 공장에 오더가 끊겨 생산라인이 멈춰 섰다. 오더는 모조리 캔슬 됐고 완제품 선적까지 중단돼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할 지경이다. 규모가 큰 만큼 팬딩돼 잠겨있는 자금이 상상을 초월한 규모다. 이미 선적 완료돼 미국과 유럽 매장에서 팔린 제품의 결제마저 중단됐다.

해외 공장이 가동을 못 하면서 근로자 임금 문제도 골칫거리다. 근로자에게 귀책 사유가 있어 일을 못 할 경우 무노동 무임금을 적용할 수 있지만 사용자 귀책일 경우는 임금을 보전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사용자도, 근로자도 귀책 사유가 없어 애매한 입장이다. 해당국 정부는 “노사협상으로 해결하라”며 “공을 넘기고 있다”

살아남아야 코로나 이후 기약한다

이같은 전대미문 상황에서 살아남은 자가 강하고 강한 기업은 코로나19 이후에 기회가 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자금력이 있는 기업까지 수단 방법을 동원해 현금 확보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는 것도 상황의 심각성을 점치고 있기 때문이다. 빚 없는 기업, 현금이 많은 기업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쓰러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힘 있는 기업들은 벌써부터 “직원들 희생시키지 않고 임금 불이익도 없다”고 공언하고 있다.

반면 중견 벤더인 풍인 같은 회사는 임원과 직원 임금 삭감과 감원이란 가장 쉬운 방법을 택해 말썽이 되고 있다. 오죽하면 청와대 청원이 1만 명을 훨씬 초과했겠는가. 기업이 어려우면 사람부터 줄이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기업치고 잘 나가는 기업은 없다. 정부가 기업을 살리기 위해 100조 원을 투입하고 근로자 고용 유지를 위해 75%의 임금을 보전하는 필사적 노력에 반하는 행태다. 지금은 노사 모두 사즉생(死則生) 각오로 위기를 극복하고 코로나19 이후를 대비하는 지혜와 양보가 절실하다. 3분기부터 다시 수직 상승할 것이라는 미국 경기 전망이 결코 신기루가 아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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