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재앙은 돌고 돈다. 무서운 역병(疫病)이 창궐해 멀쩡한 사람들이 저승사자에 불려갔다. 인류 역사에 기록된 최악의 전염병은 1918년과 1919년 2년 동안 창궐한 스페인 독감이다. 불과 2년 만에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인 5억 명이 감염돼 500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 무서운 호흡기 질환은 한반도까지 덮쳐 당시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742만 명이 감염됐다. 그리고 14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원래 시작은 1918년 봄에 발생했으나 독감처럼 시름시름 앓다 며칠 후면 회복됐다. 그러나 같은 해 가을 두 번째 전염성이 아주 강한 지독한 인플루엔자 파동이 복수로 나타났다. 피부가 파랗게 변하고 폐에 액체가 채워져 질식을 일으킨 후 사망하는 무서운 병이었다. 당시 대 유행을 일으킨 독감의 특정 계통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발원지는 불분명했다. 유럽, 아시아, 미국 지역에서 처음 발견된 후 몇 달 새 지구 모든 나라에 퍼졌다.

오더 캔슬 값 후려치기 시작됐다

지금 전 세계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신종 코로나19가 스페인 독감과 닮은 호흡기 질환이다. 발원지 중국을 시발로 일본, 한국, 아시아, 중동, 유럽, 미국, 아프리카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감염자 수에서 이탈리아, 이란이 한국을 추월했고 급기야 이탈리아는 전 국민 외출 금지와 상점 폐쇄란 극약 처방을 내렸다. 이탈리아에 감염자가 급속히 늘어난 것은 지난해 12월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에 놀라 돈 많은 중국인들이 이탈리아로 대거 피신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가설까지 나돌고 있다.

급기야 굼뜬 세계보건기구(WTO)가 코로나19에 대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할 정도이고 보면 100년 전 스페인 독감과 닮은꼴이다. 14세기 때는 쥐에 기생하는 벼룩에 의해 페스트균이 옮겨져 발생하는 급성열성감염병이 크게 유행해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해방 직후 우리나라 농촌에서도 호열자가 발생해 타처로 나가지 못하도록 금줄이 쳐지는 웃지 못할 풍경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의약 기능이 발달되지 못했지만 21세기 첨단의학 시대에 한 세기 전 그때 그 시기에 서 있다는 점에 당혹감을 떨칠 수 없다. 사스, 메르스가 소총이라면 ‘코로나19’는 중성자탄이다.

중언부언 서론이 긴 것은 코로나19가 몰고 온 파도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전 세계 경제를 초토화 시킬 위력 앞에 섬유패션 산업이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역병의 위세에 눌려 섬유패션 산업이 가장 먼저 희생될 개연설 마저 제기되고 있다. 실제 벌써부터 돌아가는 통박은 나비의 날갯짓에서 감지되고 있다.

알려진 것처럼 코로나19로 인한 내수 패션 경기는 이제 젓 담아 버렸다. 2월부터 내수 시장의 서까래가 내려 앉더니 3월 들어 기둥과 대들보가 붕괴되는 참상을 나타내고 있다.

백화점, 가두매장 매출이 평소의 반 토막은커녕 80~90%까지 줄었다. 사람 왕래가 없으니 매출이 일어날 수 없는 기막힌 상황이다. 명품은 온라인으로 벌충한다 하지만 대다수 패션브랜드가 온라인으로는 한계가 있다. 내수 패션 업체들이 파랗게 질려 떡쌀 담그는 돌림병이 크게 번질 전망이다.

섬유 수출도 앞뒤가 막막한 상황이다. 각국이 한국인 입국을 막아서면서 수출 상담 자체가 막히고 있다. 이탈리아에 앞서 스페인의 자라, H&M의 본사가 외국인 출입을 가장 먼저 봉쇄했다. 한국, 중국뿐 아니라 유럽 사람까지 차단했다. 의류, 원단 가릴 것 없이 신규 상담이 막히고 말았다. 출장을 가기도 어렵지만 가본들 거래 바이어를 만날 수 없다.

잘 나가던 의류 벤더들까지 사시나무 떨듯 고통스럽게 경련을 일으킨 것은 가장 큰 미국 시장 동향이다. 신종 코로나19가 미국을 뚫으면서 미국 유통업계에도 벌써부터 적막강산을 향한 서막이 울려 퍼지고 있다. 백화점과 스토어 몰을 비롯한 대형 유통 매장에 고객 수가 이달 들어 줄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창궐 속도에 맞춰 삶은 울셔츠 오그라들 듯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특단의 치료 약이나 예방 백신이 나오지 않는 한 4월 이후 미국의 백화점, 몰 등 크고 작은 오프라인 유통 매장은 지금 한국이 겪고 있는 상황을 그대로 답습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 백화점과 마트, 가두매장에 사람 구경하기 힘든 것처럼 미국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핵보다 더 무서운 공포의 대상이 신종 코로나19의 위력이다.

미국의 대형 유통 바이어와 디자이너 브랜드 바이어들은 이달 들어 우려했던 코로나 수칙을 이미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중국은 물론 한국 거래선까지 만남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며칠 전 국내 대표적인 의류 벤더 S사 임원이 주거래 바이어와 상담을 위해 뉴욕으로 날아가 바이어에게 면담을 요청했으나 변 묻은 새 발 털듯 손사래를 당했다. 미국 거래선과 상담 차 갔으나 뉴욕 법인 사무실에 머물다 되돌아왔다.

이 회사뿐 아니라 미국과 거래하는 모든 벤더나 원단밀들이 대동소이하다. 대형 바이어인 ‘갭’에 까지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 본사 건물 전체를 폐쇄하기까지 했다. 출장자들이 거래 바이어 사무실을 못 들어가고 샘플이나 서류를 현관 앞에 두고 나오는 것이 한국의 택배기사 행태와 비슷하다. 하는 수 없이 메일로 의사소통을 하지만 디자인과 컬러, 스타일을 대면하지 않고 상담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1, 2, 3월 황금의 상담 시즌을 올해 허송하고 있는 것이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벼랑길이다

겁나는 것은 거래바이어들의 발톱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든지 경기가 나쁘면 바이어가 오더를 캔슬하고 가격을 후려치는 것이 다반사이지만 올해는 순전히 신종 코로나19로 인한 매출 부진을 공급자에게 덮어씌우기 시작했다. 한국 의류 벤더들이 해외 소싱 공장에서 생산 공급하는 의류용 원단은 대부분 바이어의 노미네이션에 의해 이루어진다.

코로나 사태로 바이어가 노미한 중국산 원단 공급이 20일에서 한 달 가까이 지연됐는데도 납기 지연 책임을 한국 벤더에게 요구한다. 이로 인한 에어 차지를 한국 의류 벤더에게 전가하는 고약한 짓거리가 시작됐다. 오더 캔슬은 물론 이미 생산에 투입된 제품 가격까지 후려치고 있다. 신종 코로나로 인한 매출 타격을 의류 벤더들이 뒤집어쓰고 있는 실정이다.

아무튼 대재앙은 진행형이다. 코로나 역병의 기세가 하루빨리 종식되길 바라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섬유·패션 수출 내수 모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 위기 극복을 위한 비책이 발등의 불이다. 설마하다 우사 당하는 벼랑 끝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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