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두절미하고 코로나19 감염 확진자가 집단으로 발생한 대구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염색공단이 있다. 127개 염색 업체가 입주해 있는 대구염색산업단지에는 대규모 열병합 발전소와 공동 폐수처리장 등 가장 경쟁력 있는 첨단 공동 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만에 하나 이 공단 시설 근무자중 단 한 명이라도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면 공단 시설을 그 즉시 폐쇄해야 한다. 감염 확진자가 발생해 시설이 폐쇄되면 득달같이 전기, 증기, 용수 공급이 차단되고 폐수 처리가 중단돼 127개 입주기업 전체가 조업이 올스톱되는 끔찍한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 감염 경로도, 백신도, 치료 약도 없는 신종 코로나가 예고 없이 공단 시설 근무자에 감염되는 확진자가 나오면 염색 뿐 아니라 지역 섬유 각 스트림이 마비 상태에 빠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대구염색공단 뿐 아니다. 50개 업체가 입주해 있는 부산염색공단을 비롯 전국 9개 염색단지가 모두 같은 처지다. 이 때문에 전국 염색공단을 책임지고 있는 각 공단 지휘부는 밤잠을 설치며 물샐틈없는 방역 대책에 총력을 경주하고 있다. 자체 방역은 물론 군부대 지원까지 받아 겹겹 방역에 매진하고 있다.

염색공단 지휘탑의 초비상 死鬪(사투)

자칫 현재 추세대로 가면 확진자가 1만 명까지 확산될 가능성이 큰 코로나19는 비록 사망률이 낮다고 해도 그 피해는 건물을 놔두고 사람만 죽이는 중성자탄 보다 무서운 대재앙이다. 단위 기업들도 확진자가 나온 즉시 공장 폐쇄 공포감에 싸여 있지만 공동시설 운영 책임을 맡고 있는 전국 염색공단 이사장을 비롯한 지휘부의 잠 못 이룰 고초에 위로와 경의를 표한다.

그야말로 천하 대란의 시대에 우리 섬유패션 산업이 지질히도 복이 없다. 춘절 연휴 때 발생한 우한 쇼크로 중국 산업이 폭망할 위기를 맞게 되자 불감청고소원 쾌재를 불렀다. 세계의 공장 중국 섬유산업이 벼랑 끝에 몰리자 시난고난 휘청거린 우리 섬유산업에 반사 이익이 돌아왔다. 우리 정부와 민간 부문의 초기 대응도 일본이 시샘할 정도로 우등생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일반 시민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신천지란 괴상한 종교 집단에서 불기 시작한 역병(疫病)이 대구를 중심으로 기하급수적으로 퍼지면서 한국 경제를 초토화시키고 있다. 우리가 속한 섬유패션 산업 역시 완전 젓 담가 버렸다. 중국의 대체 시장으로 급부상한 한국 섬유 산업은 거꾸로 게도 구럭도 다 놓치고 있다.

코로나 진원지인 중국이 생산 설비를 재가동하면서 한국에 떨어진 이삭마저 훑어가고 있다. 세계 100개국에서 한국인 입국을 거부당해 중국인 못지않게 괴물 취급을 당하고 있다. 디자인과 컬러를 봐야 상담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대면 상담이 막혀 세일즈 담당자가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최소한 상반기 장사는 물 건너간 채 여름 비수기로 직행할 수밖에 없다.

수출 내수 가릴 것 없이 봄철 성수기를 허망하게 보내는 것은 불문가지다. 내수 패션 업계의 땅 꺼지는 한숨은 더욱 처연하다. 도대체 사람 구경하기가 어려워 매출 자체를 거론할 수 없다. 백화점, 가두매장에 고객 발길이 끊어진 지 오래다.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다고 다행히 온라인 쪽만 어부지리를 톡톡히 보고 있을 뿐이다. 이 참담한 천재지변에 떡 쌀 담그는 기업이 길게 줄을 설 수밖에 없다.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에 따라 올해 본 예산이 집행되기도 전에 10조 원 이상의 추경을 요구하고 있다. 당연한 위기 대응 정책이다. 다만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도 중요하지만 중소기업에 더 많은 배려가 뒤따라야 한다. 섬유패션을 비롯한 중소기업 대다수는 빚으로 버티고 있다. 대출금 연장과 금리보전, 운영자금 지원 등 파격적인 지원을 중소기업에 집중해 줄초상을 막아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전대미문의 이 위기 상황을 초당적으로 협력해 극복하는 것 못지않게 근본 문제는 우리 업계 스스로 사는 길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의 지원책은 얼은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 지금처럼 네가 죽건 말건 나만 살면 된다는 비열하고 야비한 사고에서 벗어나 함께 멀리 가는 동반자 정신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 핵심의 주역은 힘 있는 의류 수출 벤더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대다수 의류 벤더들은 해외에 대규모 봉제 공장을 운영하면서 미국과 유럽의 거대 유통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발 빠른 글로벌경영 전략이 적중해 어렵다던 지난해에도 수백억에서 일천억 이상의 흑자를 내 승승장구하고 있다. 반면 지난날 의류 벤더들을 전폭 지원했던 국내 소재 업체들은 피골이 상접해 있다. 화섬, 면방은 물론 원단밀들까지 눈덩이 적자 아니면 겨우 연명에 급급하고 있다.

직물 원단이나 염색은 물론 화섬, 면방 등 소재 업체들은 지금 ‘가동률이 원가’라는 절박한 상황에서 악전고투하며 하루하루를 넘기고 있다. 하나의 예증으로 포천에 아직도 수백 대의 편직 공장과 안산에 1일 4만 킬로 캐퍼의 염색가공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대표적인 우량기업 오너 C회장의 독백은 많은 섬유 기업인의 가슴을 여미게 한다. 이 회사 회장은 마지막 보루로 한국에서 공장을 끝까지 경영하겠다는 의지의 기업인이다. 설비 자동화 투자에 지난해에도 수십억을 투자했지만 아직도 하루에 어김없이 500만 원씩 한 달이면 1억 5,000만 원씩 적자가 난다는 것이다. “오늘은 공장에 가서 직원들에게 문 닫겠다”고 다짐하며 가지만 “몇십 년 고락을 같이 한 100여 명의 얼굴을 보는 순간 차마 입밖에 뗄 수 없어 포기하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익은 고사하고 직원들 고용만 유지할 정도로 현상 유지만 바라지만 오더 기근으로 갈수록 경영이 팍팍해져 밤잠을 설친다고 실토했다.

후안무치 모르쇠 태도 이대로 안 된다

국내 선두권 원단밀이 이럴진대 다른 기업은 오죽하겠는가. 국내 의류 벤더들이 거래 원단, 염색 업체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해외에 대규모 자체 공장을 만들면서 국내 기업들은 거래선을 잃고 생존을 위협받은 지 오래다. 벤더 측이 ‘국산 소재는 비싸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오더를 지원해 생산성으로 가격을 맞추도록 유도해야 함에도 그런 노력이 아주 부족하다. 돈 될만한 대량 오더는 중국에 주고 국내 업체에게는 소규모 까다로운 이삭을 제시하면서 이마저 모질게 가격을 후려치고 클레임을 걸어 제풀에 죽게 만드는 횡포를 서슴지 않는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일본과 이탈리아, 중국산까지 전액 지급하는 원단 샘플치를 국산 원단은 안 주고 뭉개는 갑질에서부터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온갖 불공정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본지가 원단 샘플 차지와 클레임 횡포 사례를 조목조목 지적해도 ‘기찻길 옆 개 짖는 소리’ 정도의 모르쇠로 일관하는 후안무치를 보이고 있다. 어려운 섬유산업을 살리기 위해 벤더들의 각성과 협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몰염치 행위를 개선하지 않으면 망신당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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