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패션단체장 ‘줄초상 곡소리’ 안 들리는가?”

업·미들·다운스트림 총체적 吊鍾 줄초상 불 보듯 
대구 · 경기북부 산지 곡소리 기업 포기 줄이어 초비상

정부 산업정책 실종 기껏 그물로 바람 막는 정책
지도자들 꿀 먹은 벙어리 침묵은 직무유기 인식을

 

“꿀 먹은 벙어리 섬유패션단체장 일어나라”
‘섬유패션 혁신 비대위 만들자!’

1년 전인 지난해 1월 7일 자 본지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비장한 각오로 신년 화두를 제시했지만 백면서생(白面書生)의 주무 당국과 무사안일의 섬유 단체 대부분은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

결과는 붕괴되고 축소되는 악순환 속에 산업 현장은 줄초상의 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식회사 한국섬유산업’은 속수무책으로 가라앉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도 진행형이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당사자인 기업들이 각자도생의 냉엄한 현실 앞에 악다구니를 쓰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기업이 사즉생(死卽生) 각으로 몸부림을 쳤지만 글로벌 경기 불황과 최저임금 압박 속에 맷돌에 깔려 찢기고 신음했다.

지난해 초 62년 역사의 코오롱FM이 그룹 재벌 축성의 못자리인 화섬사 사업을 접은 충격을 안겨줬다.

이미 수년 전부터 공룡 중국의 규모 경쟁을 앞세운 저가 투매로 골병이 들어 중증 상태에서 쓰러진 것이다.

한국 섬유산업 중흥의 핵심주체인 코오롱 FM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은 섬유 산업을 받치고 있는 대들보 화섬산업 전체의 조종(吊鍾)을 의미한다. 이미 중국의 규모 경쟁을 앞세운 무차별 저가 공세는 우리 안방 시장의 60%를 점유했다.

폴리에스테르사 가격이 국산보다 ㎏당 적어도 200원 이상 싼 데다 품질 경쟁력까지 갖추고 있어 당해낼 재간이 없다. 하나의 예증으로 반세기 역사의 중견 화섬직물 업체가 30여 년간 화섬사를 의존해 온 코오롱 FM이 문을 닫자 중국산 화섬사로 거래선을 바꿔봤다.

중국산 수입사가 가격 싸고 품질까지 좋아 수요량 전체를 수입사로 대체했다. 몰라서 그렇지 한번 수입사 맛을 보면 국산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국내 화섬 업계가 좌불안석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간이 문제지 수요 업체들이 적어도 레귤러사는 수입사로 거의 전환하는 것은 불문가지다. 제2, 제3의 코오롱 FM이 대기하고 있다.

세계 탄소섬유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일본 도레이가 성공하기까지 십수  년간 눈덩이 적자를 감수하며 키워왔지만 한국 화섬 업계 어느 곳도 그 같은 적자를 감수하여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기업은 없다.

한국 섬유산업의 뿌리인 면방은 이미 난파선의 쥐가 된지 오래다. 끊임없는 축소지향에 베트남으로 탈출하면서 국내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더욱 극심한 절망감을 떨칠 수 없는 것은 우리 섬유 산업을 받치고 있는 니트직물과 화섬직물의 미들스트림이 급속히 붕괴되고 있는 사실이다. 대구 산지에 섬유 직기가 나날이 감소하고 이마저 가동률이 50~60%에 머물고 있다. 여유 있는 기업은 일찌감치 손을 떼거나 공장 세주고 임대업으로 전환했다.

양포동(양주·포천·동두천)의 경기북부니트 업계는 매물이 속출하고 문 닫은 공장이 수두룩하다. 중고기계상에 편직기 팔아달라는 주문이 차고 넘쳐도 쳐다보는 사람이 없다.

스팀료 폐수처리 비용이 가장 싸다는 대구염색산업공단의 스팀 사용량이 크게 줄어든 것은 지역 직물 업계의 존립에 비상이 켜졌다는 얘기다.

섬유 각 스트림이 고비용 저효율 구조 속에 불구덩이 속으로 타들어 가고 있는데 위기 극복의 전면에서 지원해야 할 정부나 단체, 연구소는 태평하다 못해 꿀 먹은 벙어리다. 기업의 각자도생을 지원해야 할 산업부의 섬유 정책은 실종된 지 오래인 데다 지원 방안이라야 기껏 그물로 바람 막겠다는 수준이다.

일본 같은 경제 대국도 경제 산업성이 해마다 섬유패션 산업의 현상과 중장기 전략을 담은 320페이지 규모의 백서를 만들고 지원책을 강화하고 있다. 후쿠이 산지를 중심으로 다 죽게 된 일본 섬유산업이 기사회생한 것도 업계의 자구 노력을 정부가 나름대로 적극 지원 육성했었기 때문이다.

섬유산업에 토사곽란이 난지 오래인 우리는 정부가 320페이지 백서는 커녕 30페이지 보고서도 없다. 반도체, 자동차만 보이고 제조업의 9%, 고용 8%인 섬유 산업은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이다.

제조원가 한국보다 30% 싼 중국 극복대책 있다
어렵다고 방치하면 “다 함께 죽는다” 자각을

정부 정책이 실종되거나 소극적이면 섬유 단체나 연구소가 나서 대안을 마련하고 이를 정부에 채근해야 함에도 복지부동, 무사안일이다. 섬유 단체의 총 본산인 섬유산업연합회 사무국을 비롯해 60개가 넘는 섬유 단체와 연구소는 극소수를 제외하고 있으나 마나 무용지물 상태다.

중언부언하지만 지금은 섬유 산업이 처해 있는 상황이 평시가 아닌 준전시 상태의 엄혹한 위기국면이다. 올해에 대전환점을 마련하지 못하면 게도 구럭도 다 놓칠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더구나 섬유 산업은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혁명에 올라탈 지식과 기술도 절대 부족하고 빈곤하다. 벼랑 끝에 몰린 섬유산업이 올해 기사회생하느냐, 아니면 희망 없이 추락하느냐 중대 갈림길에 놓여 있다.

그 초점은 한국보다 기본 제조원가에서 30%나 저렴한 중국을 극복하는 다각적이고 적극적이며 입체적인 처방이 발등의 불이다.

기업이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는 자구 노력을 지원할 수 있는 외부 자원이 급선무다.

그 역할은 정부와 단체, 연구소가 맡아야 할 책무다. 공짜로 퍼주는 복지정책보다 파격적인 조건의 자동화 첨단설비자금과 R&D 자금을 지원해 경쟁력을 구축하는 일에 팔소매를 걷어야 한다. 섬유 산업이 극단적인 궁지에 몰려서 생사기로를 헤매고 있는데도 정부는 물론 단체, 연구소 단체장들이 그 흔한 대책 회의 한번 한 일이 없다.

섬유패션 단체장들이 꿀 먹은 벙어리에서 깨어나 장관도 만나고 국회의원도 만나고 총리, 나아가 대통령을 면담해 고부가 전통산업의 중요성과 일자리 창출 일등 공신의 지원을 설득하고 촉구해야 한다. 10여 년 전 섬유인들은 산업부의 훼방을 무릅쓰고 섬유특별법 제정을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도 전개했다. 이같은 대전제에서 섬유 단체장과 지도자들이 참여하는 ‘섬유패션혁신 비상대책위원회’ 설치를 다시 한번 촉구한다. 그만큼 섬유 산업이 처해 있는 상황이 절실하고 처절하다. 더 이상 좌절하거나 포기해선 안 된다. 지혜를 모아 섬유패션 산업 중장기 발전 전략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어영부영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어렵다고 미루고 방치하면 다 같이 죽는다.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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