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번영과 행운을 기대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다산(多産)과 번영을 상징하는 흰쥐 띠의 경자년(庚子年) 새해를 맞아 섬유패션 업계에 꿈과 희망이 가득하길 염원한다.

하지만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새해 사자성어처럼 오리무중(五里霧中) · 고군분투(孤軍奮鬪)가 기다리고 있다. 글로벌 경기가 작년보다는 나아질 것으로 기대되지만 근본적으로 경쟁력을 잃은 우리 섬유패션 산업의 현주소가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영의 대가인 성기학 섬유산업연합회장이 신년사에서 밝힌 것처럼 세계의류 수출 2위 국가인 방글라데시가 지난해 수출이 10%가 감소해 현지 정부와 업계가 비상이 걸렸다는 것이다. 방글라데시 정부가 지난해 최저 임금을 한꺼번에 30%나 급격히 올리면서 사단이 생긴 것이다. 반면 최저 임금을 한 자릿수만 올린 베트남은 지난해에도 여유 있게 10%나 성장했다. 하물며 베트남, 방글라보다 10배나 높은 천양지차 임금의 한국이 지난 2년간 실질 최저임금 인상률이 40%에 달했다면 결과는 ‘묻지 마라 갑자생’이다.

최저임금 급상승 발목 잡힌 방글라데시

고임금과 인력난의 구조적인 고비용 저·효율 환경에서 우리 섬유산업이 시난고난 이 정도 버티고 있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중국의 각 스트림별 생산 캐퍼가 전 세계 수요를 커버하고도 남은 공급과잉 시대에 중국과 똑같은 제품으로 경쟁하고 있는 것은 상식도 진실도 통하기 어렵다. 결과는 섬유 각 스트림 전반에서 축소지향을 넘어 간판 내리고 문 닫는 소리가 요란하다. 설마가 사람 잡듯 설마 했다가 올 것이 오고 만 것이다.

대구와 경기북부 섬유산지에 세워진 공장이 갈수록 늘어나 거미줄과 공팡이가 가득한 참담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오죽하면 한국 섬유산업의 상징이자 견인차였던 62년 역사의 코오롱FM이 지난해 문을 닫았겠는가. 국산보다 가격 싸고 품질 차이 없는 중국산 화섬사에 국내 수요 업계가 급속히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봉제는 오래전에 공동화(空洞化)됐고 한국 섬유산업의 허리 부분인 니트 직물과 화섬직물이 급속히 붕괴되면서 염색 산업까지 고꾸라지고 있다. 이 절체절명의 상황은 모질었던 지난해뿐 아니라 올해 새해에도 진행형이다. “먹구름이 많으면 한 번의 번개에도 폭풍이 친다.”는 크리스틴 자가리드 IMF 총재의 경고가 빈말이 아니다.

문제는 6,000개 기업이 엑소더스한 빈자리를 지키고 있는 국내 섬유산업이 속절없이 소멸되는 줄초상이 창궐하고 있어도 뚜렷한 대응책이 안 보인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져야 할 기업부터 구태의연한 천수답 경영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안되면 조상 탓하듯 최저임금, 52시간제만 타령할 뿐 도전과 혁신의 자구책이 절대 부족하다.

중언부언하지만 단체나 연구소가 제구실을 하는 것도 아니고 중장기 육성발전전략을 마련하고 시행해야 할 주무 부처는 죽든 살든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새해 예산이 사상 최대의 512조에 달한 가운데 덩달아 부품소재산업육성 예산이 작년보다 90%나 늘어난 1조 2,780억 원이지만 섬유패션 분야는 그물로 바람 막는 수준이다.

기업의 죽고 사는 문제를 정부나 단체보고 책임지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다만 죽은 나무는 물을 줘도 못 사는 것처럼 산업도 죽기 전에 물을 줘서 살리는 정책이 절실한 것이다.

물론 이 와중에 해외 진출기업 못지않게 국내에서도 불황을 모르며 알차고 건실하게 성장하는 기업이 얼마든지 있다. 중국은 물론 국내 경쟁 업체가 하지 않은 차별화 전략과 적극적인 시장 전략으로 불황을 남의 일로 간주하는 기업이 많다. 이들의 공통점은 줄기차게 자동화 투자하고 기술 개발하는 기업이다.

임금 부담을 줄이고 생산성과 품질 성가로 승부하는 기업이다. 소가 밟아도 끄떡없는 주력 바이어와 끈끈한 신뢰를 바탕으로 일취월장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 남아있는 섬유 기업이 살아 이기는 길은 중국과 규모 경쟁이 아닌 철저한 차별화의 틈새시장 공략이다. 중국이 주도하는 품목은 미련 없이 버리되 경쟁 품목을 갖고도 중국을 이길 수 있는 도전과 혁신이 필요하다. 중국이란 나라는 규모 경쟁에서 계란으로 바위 치기인 데다 인건비는 5분 1에 불과하다. 수출하면 증지세 17%를 돌려받는 제도다. 제조원가에서 우리나라보다 30% 가까운 격차가 난다.

이같은 높은 벽을 극복할 수 있는 초 특단의 절감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세일즈 기법에서부터 오더 수주, 생산설비, 관리, 인력, 자재 관리를 포함 100여 가지의 통상적인 방식과 절차를 혁명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같은 기종이라도 관리 능력을 배가시키고 소요 인력을 줄이면서 생산성을 중국보다 50% 이상 늘릴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실제 국내 某 원단밀은 이같은 전략으로 중국과 품질, 생산성, 가격경쟁력을 극복하고 오히려 비교 우위를 구축했다. 여기에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마부위침(磨斧爲針) 각오로 총력전을 전개하면 시장은 반응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 새해에는 시장이 아무리 각박해도 스트림 간에 상생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 어제의 ‘甲’이 오늘의 ‘乙’이 되는 세상이지만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정신으로 역지사지를 생각해야 한다. 해외에 대규모 소싱공장을 운영하며 고도성장을 만끽하는 의류 벤더들이 보다 성숙된 자세로 국내 원사, 원단 업체와 같거나 비슷하면 국산 소재를 더 많이 쓰는 동반성장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2020년’ 죽느냐 사느냐 분수령이다

아무리 인센티브제의 운영 방식이리고 해도 가격 후려치고 원단 샘플 차지 안 주는 부도덕한 사고 양태를 벤더 오너들이 솔선수범으로 개선해야 한다.

다행이 새해 글로벌 경기는 크게 나아질 요소는 없지만 혹독했던 작년보다는 다소 나아질 조짐이 보인다. 미·중 무역전쟁도 휴전이 됐고 지난 연말 미국의 폭풍 소비가 섬유 수출 경기에 청신호가 되고 있다. 희망과 용기의 끈을 놓지 말고 도전과 혁신을 통해 새해에는 웃었으면 싶다. 섬유패션 업계의 배짱과 강단을 믿는다.

다시 강조하지만 자칫 공멸 위기에 처한 섬유산업을 희생시키기 위해 섬유패션단체장과 지도자들이 새해에는 구원투수로 등장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기사회생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같이 적극적이고 다각적인 노력만이 날개 없이 추락한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하고 성장 동력을 재구축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처방이다. 2020년 경자년은 ‘주식회사 한국섬유패션산업’이 죽느냐 사느냐의 분수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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