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는 열흘만 살고 죽을 자기 집을 지을 때 창자에서 실을 뽑아 완성한다. 생사기로에 몰려 거친 한숨을 토해내고 있는 우리 섬유 기업들도 누에처럼 모진 고통을 감내하며 연명치료에 몰두하고 있다. 섬유패션 산업이 오늘이 있기까지 지난 60년은 그야말로 피와 땀과 눈물의 역사다. 그렇게 쌓아 올린 성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어 억장이 무너진다.

성장은커녕 엔진마저 꺼져 가는 망망대해 편주(片舟) 처지이지만 단 하루 시름을 접고 자긍심에 불타는 뿌듯한 날이 있다. 바로 지난 87년 단일 업종 최초로 수출 100억 불을 달성한 금자탑인 섬유의 날이다.

서른세 번째 맞는 올해 섬유의 날에도 많은 섬유패션인들이 모여 우울한 심경을 달래며 꿈과 희망의 미래를 설계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괄목한 업적과 실적을 쌓은 유공자들에게 정부 훈·포상과 장관·섬산련 회장상까지 80여 명에게 시상이 이루어졌다. 모두가 “죽겠다”고 아우성인 엄혹한 상황에서 업계의 귀감이 된 수상자에게 진심 어린 축하와 경의를 표한다.

유체이탈식 포장 이제 그만하자

글로벌경영의 일인자인 성기학 섬유산업연합회장이 기념사를 통해 분초를 다투는 변곡점의 꼭대기에서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지혜와 전략을 제시해 주목을 끌었다. 그는 “미국과 유럽 섬유패션기업의 최고 구매 책임자들이 2025년까지 지속가능한 소싱과 지속가능한 소재 비율을 50%로 확대(친환경)한 데 따른 준비가 절실하다”고 강조해 더욱 눈길을 끌었다.

이어 정부에서 바쁘다며 불참한 장관을 대신해 축사를 한 정승일 산업부 차관의 섬유패션산업 정책 의지도 얼핏 듣기에는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지난 8월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 발표에 근거해 “자금·입지·세제·규제 특례 등을 집중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고성능 섬유 소재 원천 기술 및 고차가공 등 핵심기술 도입과 M&A, 해외기업 국내 유치를 지원하고 각 스트림 별 기술 개발과 사업 역량 확보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고부가 첨단 제품 중심의 ‘선진국형 섬유패션 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거듭 밝혔다.

그러나 이같은 정책 방향은 말인즉, 구구절절이 옳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손에 잡히는 것이 없는 구호와 구두선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백가쟁명식 정책은 나열했지만 섬유패션산업 기술력 향상 자금을 전부 합쳐도 연간 180억도 안 되는 금액이다. 지난 7월 일본의 경제보복이 불거질 때 반도체 소재 산업에 2조 원을 지원하고 자동차 부품산업이 어려워지니까 7,000억 이상을 지원하겠다는 것과 비교하면 조족지혈이다. 크건 작건 숫자상으로 4만 8,000개 기업이 이 땅에 있고 현장 근로자 30만 명에 백화점, 시장 유통까지 포함하면 수백만 명이 종사하는 섬유패션 산업에 지원하는 예산은 코끼리 비스킷 수준이다. 탄소섬유나 아라미드를 비롯한 산업용 첨단 섬유는 정부가 지원하지 않아도 대기업 스스로 얼마든지 발전 시켜 나갈 수 있지만 광활한 섬유의류 산업은 정부가 과감하고 파격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효성이 탄소섬유에 1조 원을 투자할 수 있지만 수만 개 섬유 기업은 몇억  원의 기술 개발과 마케팅 비용은 물론 수십억이 소요된 자동화 설비에  엄두를 못내고 있다. 500조가 넘는 국가 예산 중 연간 몇백억의 정부 지원으로 죽어가는 섬유산업을 중흥시킨다는 것은 말의 성찬이다. 목표도 방법도 산업 현장과 괴리가 크고 내용도 하로동선(夏爐冬扇) 격이다. 토사곽란에 머큐롬 바른 격이다.

산업부가 그토록 공을 들여 강행한 의류산업협회를 패션협회에 통합시킨 결과도 기대에 못 미친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고율 관세를 얻어맞은 중국산 의류가 치명타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 FTA의 무관세 혜택을 받고 있는 한국산 의류는 천재일우 호기다. 숏딜리버리 패션의류는 한국만큼 잘할 곳이 없어 오더가 늘어나지만 수출품을 제대로 생산할 수 있는 국내 생산설비가 없다. 영세 봉제 업체에 장기 저리 설비자금을 지원하면 한국산 패션의류의 대미 수출은 급증할 수 있다. 하지만 통합된 패션산업협회에 사실상 의류봉제산업육성 정책은 거의 사장된 상태다.

산업부가 기회 있을 때마다 자랑하는 세계 최초의 동대문 ICT 융합 맞춤 의류 상설시범 매장도 기대에 훨씬 못 미친다. 10월 말까지 6개월 동안 고용 창출 48명, 방문객 6,280명, 월 매출 1,400만 원, 총 판매 468벌 중 외국인 대상 판매량 213벌로 46% 차지가 자랑스런(?) 성적표다. 산업부의 자랑과는 달리 수십억을 투자해 만든 ICT융합맞춤의류 상설시범 매장의 실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인근 의류 제조 업체들은 “작업 중 갑작스럽게 주문을 밀어 놓고 독촉한다”고 불만이 많다. 결제도 지연된다며 소규모 협력 봉제 업체들이 손을 떼겠다는 분위기다.

24시간 내 완성을 목표로 한 ICT융합맞춤의류 상설센터를 만들기 위해 별도 예산을 만들었어야지 기존 섬기력 사업의 패션디자인 예산을 전용하거나 축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동대문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실패작이라는 혹평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다. 더구나 24시간 내 완성도 좋지만 주문한 후 2시간 반이면 완성되는 스토어 팩토리가 등장하는 시대다. 산업부의 홍보와는 많은 괴리가 있다. 정부의 섬유패션산업 스피트팩토어 정책 방향이 성공해 섬유패션 산업의 제조 효율성과 생산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소극적인 정책으로는 안 된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신성장 산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보다 광범위하고 적극적이며 다원적인 정책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伊·日·中 섬유패션 산업 정밀조사부터

글만 읽고 세상일에 경험이 없는 백면서생(白面書生)들이 내놓은 산업정책은 시장과 거리가 멀다. 그야말로 거창한 구호는 근사하지만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에 불과하다. 지금 섬유산업의 허리 부문인 니트 및 화섬직물 산업이 백척간두 위기에 몰렸다. 대구와 경기도 산지는 줄초상 돌림병이 창궐하고 있다. 국내 산업이 더 이상 붕괴되지 않기 위한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정부 지원책이 발등의 불이다. 뇌사 상태에 빠진 국내 섬유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유체이탈식의 생색이나 말잔치로는 안 된다.

우리 내부의 중증환부를 어디서부터 집도해야할지 뇌시경으로 정밀 진단해야 한다. 일본과 이태리는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고 어떤 전략으로 성장 동력을 마련했는지 집중 조사 연구해야 한다. 중국과 같은 품목으로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란 관점에서 중국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해야 한다. 전문가로 구성된 조사 연구팀을 보내 정확히 분석해야 올바른 처방이 나온다. 산업의 실상을 모르는 청맹과니 당국자만 원망할 것이 아니라 섬산련과 단체, 연구소가 제구실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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