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태로 두 달 이상 천하 대란을 치른 대한민국에 아직 포연이 자욱하다. 문 정권의 절대 지지자와 반대자의 두 개 층이 병존하며 각혈하며 싸운 심리적 민란 수준의 후유증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박근혜는 최순실이 망쳤고 문재인은 조국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내상을 입었다. 역시 민심과 싸워서 이기는 권력은 없다는 역사의 팩트(fact)를 다시 확인했다.

가짜 뉴스로 인한 혹세무민(惑世誣民)의 폐단도 있지만 이제 두 쪽으로 갈라진 민심을 통합하는 일이 발등의 불이다. 봉건시대 끝간데없이 이어졌던 동인·서인·노론·소론이나 해방 이후 좌우가 대치하던 그런 전철은 안 된다. 법의 최후의 보루는 사법부다. 사법부의 판단에 맡기고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민생이 위험 수위다. 골골하던 경제가 더욱 추락해 올해 마지노선인 2% 성장도 가물가물하다. 먹고 사는 문제가 거덜나면 게도 구럭도 다 놓친다. 백성의 눈물을 닦아줘야 할 정치가 오히려 백성의 뺨을 때리는 고약한 짓거리부터 바뀌어야 한다.

중국산에 유린당한 안방 시장

본질 문제로 돌아가 모든 산업 현장의 실태가 대동소이하지만 공멸로 가는 섬유산업의 줄 파산 돌림병이 예사롭지 않다. ‘죽네죽네하면 죽는다’더니 임계점에 몰려 죽어가는 상황이 현실화 됐다. 난파선의 조짐은 20년 전부터 시작됐으나 발 빠르게 해외로 못 빠진 기업은 시난고난을 지나 중증 환자로 변했다. 사방에서 휘몰아친 외풍에 그야말로 그로기 상태에 내몰렸다.

고임금·인력난·고비용·저효율 구조로 피골이 상접한 기업에 최저 임금이 몰고 온 태풍까지 겹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망가지고 있다. 그나마 개성공단이 알게 모르게 구원투수가 돼 국내 섬유 원부재 산업을 연명 시켰으나 지질히도 복이 없어 이마저 폐쇄된 지 3년을 훌쩍 넘겼다. 대구와 경기 북부 섬유산지가 급속도로 망가진 원인 역시 개성공단 폐쇄가 가장 큰 요인이었다.

그 와중에서도 이제나 저제나 문을 열까 싶어 125개 개성공단 기업은 물론 국내 섬유 업계가 학수고대하고 있으나 돌아가는 통박이 쉽지 않다. 일각에서는 개성공단을 막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금년 말을 전후해 풀어줄 가능성을 예단하고 있지만 그게 쉽게 이루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설상가상 지난주 금강산 관광 지구를 시찰한 김정은 북한 국무 위원장이 “너절한 남측 시설을 싹 쓸어내라.”고 아버지 유훈까지 거역한 후안무치를 보면 싹수가 노래 보인다.

우리 섬유산업이 고임금과 인력난으로 맷돌에 깔려 찢기는 내부 악재뿐 아니라 예기치 않은 외생변수까지 덮쳐 더욱 고통스럽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 미·중 무역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직격탄을 맞은 중국산 섬유의 덤핑 투매가 기승을 부려 국내 산업을 사지(死地)로 내몰고 있다. 폴리에스테르사를 보면 상황의 심각성을 금방 알 수 있다. 중국산을 중심으로 그동안 수입사가 국내 시장을 야금야금 장악해 금년 상반기에는 국내 수요량의 43%까지 차지했다.

그러던 것이 지난 9월에는 국내 수요량의 50%를 넘어서는 한계 상황에 도달했다. 니트직물과 화섬직물 경기 침체로 겨우 월 5만 톤 수요도 못 채우는 상황에서 지난 9월 2만 5,700톤이 들어왔다. 물론 이 숫자에는 베트남산과 인도산 등도 일부 포함됐지만 절대량이 중국산이다. 9월 말 누계를 봐도 중국산 FDY가 작년 동기비 50%가 늘었고 DTY는 18% 늘었으며 POY는 무려 200%나 폭증했다.

중국의 화섬 생산량은 전 세계수요량을 커버할 규모이고 중국 1개 화섬 업체의 생산량이 한국 전체 생산량보다 많은 것은 공인된 사실이다. 가뜩이나 대량 생산에 따른 규모 경쟁력이 강한 데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수출은 물론 자국 내수가 부진해지자 덤핑 가격으로 한국 시장을 유린한 것이다. 품목에 따라 다르지만 중국산 화섬사 가격이 한국산보다 관세를 물고도 파운드당 70원에서 100원이 싸게 들어오고 있다. ㎏당 150원에서 200원 차이가 난다는 것은 직물 제조원가에 커다란 영향이 미치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국내 화섬메이커들이 국내 안방 시장 절반을 수입사에 내주면서 위기의식이 더욱 커지고 있다. 거래선을 지키기 위해 수입사 가격에 맞추느라 출혈경쟁을 하지만 감당할 재간이 없다. 결국 재고는 쌓이고 채산이 악화돼 고강도 감산에 감산을 거듭하는 고통스러운 경영을 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61년 역사를 자랑하는 코오롱 그룹 형성의 주력 기업인 코오롱FM이 문을 닫는 결단을 내렸겠는가. 국내 재벌급 화섬메이커가 문을 닫은 것은 섬유 업계뿐 아니라 재계 전체에 큰 충격이었다.

과거 한국합섬, 금강화섬, 대하합섬 등 후발 화섬메이커가 문을 닫았지만 그때는 순전히 강성 노조의 등쌀에 정상 경영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대로 가면 제2·제3의 코오롱FM이 불가피하며 그때는 화섬사 시장이 중국 손아귀에 들어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필연적으로 염료처럼 가격 폭등과 수급 불안의 악순환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억장이 무너지는 것은 대구 산지 직물 업체가 자가 공장에서 제직하는 것보다 중국에서 생지를 수입하는 것이 30%가 더 싸다는 것이다. 많은 직물 업체들이 중국산 생지를 사서 대구염색공단에서 가공해 수출하는 것이 자직하는 것보다 이익이라는 것이다. 하나의 예증으로 “대구염색공단에서 염색 가공하고 있는 전체 물량의 60%가 한국에서 빼앗긴 중국산 치폰(시폰)을 중심으로 한 수입 생지”라고 대구 업계 중진이 지적하고 있다.

“차별화 없는 천수답 경영 공멸”

중국산 생지 값이 싼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 내 화섬사 가격이 한국보다 훨씬 저렴한 데다 제직 공장의 혁신 직기 대수가 단위 공장당 3,000대~5,000대 규모가 즐비하다. 대구 산지는 갈수록 쪼그라들어 혁신 직기 200대 규모를 보유한 기업을 전부 합쳐도 10개 회사 미만이다. 한 가지 물건을 대량생산한 데 따른 원가 경쟁력은 상상을 초월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 주력 산업인 화섬직물과 화섬사가 중국과 경쟁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그렇다면 우리 섬유 산업의 대종인 화섬직물 산업이 어떻게 돌파구를 마련하느냐가 관건이다. 분명한 명제는 차별화다. 중국이 만드는 품목과 대적하는 것 자체가 무모한 자살행위다. 중국이 안하거나 못하는 품목의 틈새시장을 찾아야 한다. 쉽지만은 않지만 틈새시장은 얼마든지 열려있다.

우선 소재의 차별화다. 전 세계 조류인 친환경 소재와 제·편직 사가공 염색기술이 핵심이다. 대 전제는 투자다. 웅덩이를 파지 않고 물이 고이기를 바라는 것은 요술을 기대하는 것이다. 개별 기업의 각자도생과 함께 강 건너 불구경하는 정부와 단체가 다각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


 

 

 

 

 

 


□도끼자루(X) →규범 표기는 ‘도낏자루’이다.

□도낏자루(O)  
명사  도끼의 자루.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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