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부자 1위인 유니클로 야나이 다다시  회장(70)의 폭탄 발언이 한·일 양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일본 집권 자민당 열성 팬인 그가 아베 정권의 무모한 대한(對韓) 경제보복에 대해 입에 도끼를 물고 아베노믹스를 비난한 것이다. 그는 지난 14일 자 경제지 닛케이 비즈니스 기고문에서 “한국의 반일감정을 충분히 이해한다.”면서 “이대로 가면 일본은 망한다.”는 취지로 독설을 퍼부었다.

개인적으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절친인 야나이 회장이 자신이 지지하는 아베 정권을 무차별 공격한 의도가 무엇인지 속단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석 달째 계속되는 한국 내 일본상품 불매운동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유니클로의 탈출 행보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있다. 그러나 그의 기고문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한국 내 불매운동만을 겨냥한 것은 결코 아닌 것 같다.

아베 정권의 무모한 대한(對韓) 경제보복이 실익은 없고 일본 안 가기, 상품 안 사기로 자국 피해만 늘어가자 ‘가는 방망이 오는 홍두깨’의 전략 실패를 꼬집은 것이다. 지금 일본은 모든 매스컴이 총동원돼 혐한 논리에 혈안이 돼 있고 기업인들이 숨을 죽이며 정부에 할 말을 못 하는 상황에서 야나이 회장의 용기는 평가받을만하다.

유니클로 야나이 회장 아베 정권에 독설

솔직히 야나이 다다시  회장의 아베 정권을 향한 비판을 미화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등불처럼 번진 일본 상품 불매 운동에도 옥석을 가릴 필요가 있다. 유니클로 한국법인인 에프알엘코리아는 한국 기업인 롯데의 지분이 절반 가까운 49%에 달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의류 벤더인 세아상역, 한솔섬유, 팬코, 비전랜드 등이 핵심 서플라이어다. 한국산 소재도 일정량 공급되고 있다. 불매운동이 시작된 후 지난 7월 한국 내 유니클로 매출이 70%까지 떨어지자 국내 某 의류 벤더의 베트남 공장 유니클로 라인이 텅 비었다. 이 서플라이어는 베트남 공장에 1만 명 이상이 근무하고 한국 본사에도 1,000명 가까운 직원이 근무하는 일자리 창출 모범 기업이다.

한국에서의 유니클로 매출은 지난해 기준 1조 4,000억 원으로 황금시장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지난 8월 말 기준 1년 동안 일본 유니클로 본사 패스트리테일링 매출은 1조 8,600억 엔(18조 7,612억원)에 순이익은 1,190억 엔(1조 2,003억원)에 달했다. 올해 한국에서 불매운동으로 매출 타격이 불가피하지만 유니클로 경영에 빨간불이 켜질 정도는 아니다. 아베 정권의 저격수로 등장한 야나이 회장의 용기 있는 발언은 일본의 대한(對韓) 정책 변화에 도움이 됐지 결코 해악이 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유니클로 불매 운동이 확산되면 될수록 거래 한국 기업에도 크건 작건 영향이 온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돼먹지 않은 아베 정권에 맞불을 놓은 것은 당연하지만 친한파 기업까지 무차별 보복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말을 바꿔 중언부언하지만 한국의 섬유 산업이 이만큼이나 버틸 수 있는 것은 니트직물과 우븐직물의 허리 부문이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허리 부문이 하루가 다르게 시난고난 골골하며 줄초상 돌림병이 창궐하고 있다. 공장을 가동할수록 적자가 늘어나면서 휴폐업과 축소지향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6,000개 가까운 기업이 난파선에 쥐 빠져나가듯 해외로 탈출했고 안 나갔거나 못 나간 기업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억지로 버티는 참상이다. 벌써부터 추위 타는 기업, 얼어 죽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고임금에 인력난, 비싼 전력료에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 등 온갖 악조건 속에 기업이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돈 여유가 있는 기업은 자포자기하고 미리 회사 정리하는 이상한 풍토가 유행되고 있다. 물론 어려운 것은 한국만의 사정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공급과잉의 피해는 섬유의류 산업의 성장에 급제동이 걸리고 있다. 중국은 물론 베트남, 인도네시아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오더가 크게 줄어 섬유산업이 어렵다는 얘기다.

경우는 다르지만 인도네시아에서 한국 제직 설비로는 상상할 수 없는 현신 직기 1,000대 규모를 가동해 생지를 생산하는 일부 한국인 기업인들이 요즘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한다. 혁신 직기 3,000~5,000대 규모의 중국 공장에서 생산된 치폰(시폰) 생지가 인도네시아산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공략하기 때문이다. 싸게 만드는 노하우를 따라갈 재간이 없는 중국산과 도저히 경쟁이 안 되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염색공장 폐수 단속권을 군대에 맡기면서 규정에 조금만 어긋나면 무차별 폐쇄하는 것도 현지 진출 기업들의 고충이다.

환경보호를 위한 염색공장 폐수 기준은 베트남이 한국보다 훨씬 더 강하다. 베트남에서 염색공장 허가가 어려운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염색공장이 폐수 기준을 엄수한다 해도 자체 제·편직 공장 물량밖에 소화할 수 없다. 자체 공장 원단이나 실이 아닌 외부 반입 임가공은 철저히 법으로 막고 있다. 만약 외부 임가공을 허용하면 중국산 생지가 무더기로 들어와 가공해 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베트남에는 폐수만 남는다는 논리다.

억장이 무너진 것은 세계적인 염색전용 단지인 대구염색산업공단 입주기업의 염색가공 물량의 60% 이상이 중국산 등 수입생지라는 것이다. 126개 입주 기업이 겨우 가동률 60% 남짓을 유지하는 데도 국내산 니트나 우븐직물로는 어림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국내 직물 원단 산업이 급속히 쪼그라든 증거다. 그렇지만 중국산이나 인도네시아산 치폰(시폰) 생지 등을 들여와 염색가공 후 미국에 수출했을 때 원산지 위반이란 무서운 제재가 뒤따름을 명심해야 한다.

직물 산업마저 무너지면 공멸이다

국내 섬유산업을 지탱하는 허리 부문인 직물 산업이 더 이상 붕괴되지 않기 위해서는 차별화 전략밖에 없다. 인도네시아 같은 인력과 저임금의 유리한 여건에서도 중국과 똑같은 물건을 만드는 것은 독약으로 알고 대처하고 있다. 문득 생각난 하나의 예증으로 바지용 원단의 대명사인 스위스 셀러가 그 좋은 30년 명성과 비교 우위를 과감히 인도 라마에 팔았다. 그리고 세계적인 곡물회사인 미국 카길과 협력해 생분해성 친환경 옥수수 섬유(PLL) 개발에 나선 것을 강 건너 불구경할 일이 아니다.   

세계는 이미 리사이클을 포함해 친환경 섬유가 대세다. 페트병을 이용한 리사이클과 뱀부, 옥수수, 칡 섬유, 천연염색 등 소재 혁명의 변곡점을 맞고 있다. 그럼에도 이 변화의 시대에 아직도 방안퉁수에 불과한 우리 섬유산업 현주소를 보면 자탄의 한숨이 절로 난다. 이미 곤죽이 되다시피한 기업 자체적으로는 어렵겠지만 정부·연구소·단체와 기업이 사즉생(死卽生) 각오로 하나가 돼 차별화 전략에 명운을 걸어야 한다. 더 지체하면 섬유 산업은 공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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