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뚱맞은 얘기로 들릴지 몰라도 철권통치의 중국에서 통치 이념의 두 가지 핵심요소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13억 인민이 굶지 않도록 식량의 자급자족이고, 하나는 돼지고기 수급이 원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중국은 전 세계 돼지고기 소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 중국에서 요즘 고급 식당을 제외하면 좀처럼 돼지고기 메뉴를 찾기 힘들다. 중국 전역을 할퀴고 간 아프리카 돼지 열병으로 사육 돼지의 절반을 매몰 처리한 후유증이다.

지난주 상해에서 열린 ‘인터텍스타일 상하이’에 참관하면서 머무는 동안 가설로만 알았던 돼지 파동은 실제 상황임을 직접 목격했다. 우리나라도 아프리카 돼지 열풍이 창궐해 축산 농가는 물론 온 나라가 비상이 걸렸다. 공항과 항만에는 농수축산부가 만든 초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아프리카 돼지 열병 방지를 위해 전 국민의 협조를 당부하고 있다.

미·중 무역 전쟁 中 섬유산업 그로기

경제가 침몰을 향해 이미 기울어지고 일본 아베 정권의 경제보복 비수를 맞으며 아프리카 돼지 열풍까지 번지는 안팎의 위기상황이다. 이 절체  절명의 천하 대란의 시대에 온 나라가 조국 사태로 연일 거칠고 거센 공세에 날밤을 세우고 있다. 한마디로 정치권의 하는 꼬락서니를 보면 정나미가 떨어진다. 갈수록 거칠고 짙은 분열을 하루빨리 치유해야 한다.

본질 문제로 돌아가 “흉년 떡도 많이 나오면 싸다”고 했다. 글로벌 경제 침체 속에 공급과잉의 악순환을 겪으면서 전 세계 섬유패션 업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아주 고급이 아니면 아주 싸야 먹힐 뿐 어중간한 제품은 시장에서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 섬유패션 산업이 이같이 고급도 아니고 싸구려도 아닌 맷돌 속에 깔려 찢기고 신음하고 있다.

큰 나무 밑에는 그늘이 많아 풀조차 살기가 어렵다. 지구촌 울타리가 사라진 글로벌 시대에 중국이란 거목과 인접한 우리 섬유 업계 역시 그늘 속에 깔려 거친 한숨을 몰아쉬고 있다. 대륙 기질인지 몰라도 무조건 큰 것을 선호하는 중국의 무차별 확장 전략에 이웃의 한국 섬유 산업이 그로기 상태에 몰려 있다. 중국의 섬유산업은 스트림을 불문하고 자국 수요는 물론 전 세계수요량을 채우고도 남는 캐퍼다.

화섬 설비는 이미 연산 5,000만 톤(2018년)을 넘어서 130만 톤도 제대로 생산하지 못한 한국의 40배 규모다. 면방적은 네이차오 1개사가 800만추이고 전체는 4000만추를 상회한다. 80년대 말 전성기 때 370만추이던 한국은 지금 60만추도 밑돌아 거의 70배 규모다. 제직·편직·염색·사가공 모두 이같은 매머드 규모다.

규모 경쟁은 필연적으로 생산성과 직결된다. 설비 규모만 많은 것이 아니라 자동화·성력화에서도 한국은 맨발 벗고 뛰어도 못 따라간다. 40~50년 된 구닥다리 설비로 대응하려는 우리 섬유 업계는 생산성과 품질 균일화도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여기에 풍부한 인력과 한국 임금의 5분의 1에 불과한 중국과 맞짱 뜨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다.

이같이 세계 섬유산업을 쥐락펴락하는 중국도 요즘 심한 불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글로벌 경제 침체 속에서 미·중 무역전쟁이란 햄머를 얻어맞고 기진맥진 상태다. 지난주에 열린 ‘추계 인터텍스타일 상하이’에서 만난 중국 섬유업계 인사들 중 많은 인사가 누렇게 떠 있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수출 오더는 말할 것도 없고 중국  내수도 쪼그라들어 산지 가동률이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 섬유의류 업계 전체적으로 봐 예년보다 거의 40%가량 오더가 줄었다는 것이다. 소흥 일대 염색공장 가동률도 70%에 머물고 있다. 원래 제·편직보다 염색 기술과 캐퍼가 부족한데도 가동률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 섬유 산업의 거대 공룡 중국도 미·중 무역전쟁 와중에는 별수가 없다.

그럼에도 중국은 몸체 큰 공룡답지 않게 무서운 순발력을 발휘하며 세계 패션 트렌드에 맞는 신소재 개발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리사이클 섬유 열풍을 타고 셩홍과 지아렌 같은 중국의 초대형 화섬 업체가 앞장서 대량 생산을 구축하며 세계 시장을 섭렵하고 있다. 대만도 씽콩·빠리톤 같은 회사가 자국 또는 베트남에서 페트병 리사이클 섬유의 대량생산을 통해 세계 시장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는데 대해 맞짱 도전하고 있다. 강 건너 불구경하는 우리 처지가 그저 한심하다. 중국의 기능성 차별화 소재 개발도 하루가 다르게 급진전 되고 있다.

우리 섬유산업의 마지막 보루인 직물 산업 역시 중국의 큰 나무 밑에 그로기 상태에 빠졌거나 빠질 날이 임박했다. 과거 대구화섬직물 업계가 연사기술을 앞세워 치폰(시폰)직물의 독무대를 누리다 중국이 따라오면서 한방에 가 버렸다. 연사물인 ITY 싱글스판은 아직 한국의 독무대이지만 이 역시 중국이 새로 진출해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원사값이 한국보다 20~30% 싼 데다 저렴한 인건비와 수출보조금을 앞세워 세계 시장을 휘저으면 당할 재간이 없다.

여기에 연사 기술차로 한국산 보다 생지 원단 품질은 떨어져도 광범위한 날염 설비를 앞세워 감쪽같이 커버하고 있다. 생지값이 한국산보다 ㎏당 400원 이상 격차가 난다. 이런 ITY 싱글스판을 프린팅해 봉제용으로 최근 베트남에 대량 공급하고 있다. 치폰(쉬폰)에 이어 ITY 싱글스판까지 중국에 뺏기면 대구 산지는 극단적인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다.

지난 17일부터 27일까지 잇따라 열린 파리 PV와 텍스월드 중국 인터텍스타일 상하이에서 주목받는 소재는 단연 리사이클 소재의 니트직물이다. 단순한 니트원단이 아닌 그야말로 우븐라이크 박지원단이 각광을 받을 것으로 보여졌다. 기본은 친환경 소재이며 여기에 폴리와 아세테이트복합 및 후가공·메모리들이 강세를 예고했다. 과연 우리 섬유산업이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지 걱정이다.

무주공산 한국에 리사이클 칩 공장

망망대해 편주(片舟) 처지의 우리 섬유 산업이 그나마 살 수 있는 처방은 첫째도 차별화, 둘째도 차별화다. 거대 공룡 중국이 못한 틈새시장이 돌파구다. 바로 소재의 차별화가 관건이다. 소재개발 없는 차별화는 구두선이다. 세계적인 친환경 리사이클 섬유의 열풍에도 한국에는 아직 페트병 칩 공장이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하루 빨리 극복해야 한다. 다행히 늦었지만 국내 대형 화섬업체 두 곳에서 페트병 리사이클 칩 공장 설립을 구체화하고 있다.(본지 9월 23일 자 1면 톱기사 참조). 만시지탄의 감이 크지만 천만다행이다. 소재 빈곤에 허덕이는 우리 섬유산업에 한 가닥 희망임을 부인할 수 없다. 언제 누가 페트병 리사이클 칩 공장을 설립할지 아직 예단을 빠르지만 칩 공장 설립 기업에게 섬유 업계의 전폭적인 지원과 수요 협력이 필수다. 우리 섬유산업의 미래 먹거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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