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자본주의 꽃이다. 그 기업이 한참 오래전부터 기력을 잃고 말라 죽고 있다. 경제가 위기를 넘어 공멸 상태를 치닫고 있는데도 본분을 잃은 국회는 25시를 여야가 각혈하며 쌈박질이다. 오죽하면 민간경제 수장인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국회가 경제를 버려진 자식”이라고 분통을 터뜨리겠는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현주소는 동인·서인·노론·소론으로 갈라진 조선시대 사색 당쟁과 진배없다. 아니 패망 직전 좌우로 갈린 월남 사태와 딱 닮은 꼴이다. 여야 불문하고 어느 한쪽이 사슴을 사슴이라고 말하면 한쪽은 벌떼같이 달려들어 ‘말(馬)’이라고 입에 바늘을 물고 삿대질을 하는 형국이다. (指鹿爲馬). 상대의 주장은 무조건 반대해야 이기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나날이 악화되는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 중국은 조공 받던 버릇처럼 아직도 사드 보복을 완전히 풀지 않고 있다. 일본 아베 정부는 야비한 섬나라 근성대로 경제보복의 비수를 꽂았다. 구경꾼 입장인 트럼프 대통령은 대한 통상 압력에 방위비 압박까지 강화하고 있다. 설상가상 아프리카 돼지 열병이 창궐하기 시작해 온 나라가 비상이다.

섬유 · 자동차 부품 혼수상태 ‘동병상련’

나라 안팎 사방팔방이 위험수위에 노출돼 있는 지뢰밭인데 조국(祖國)이 아닌 조국(曺國) 사태로 한 달 이상 온 나라가 폭풍 속에 휘말리고 있다. 정부 여당은 무슨 필유곡절이 있어 조국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지. 야당은 무슨 약점이 많아 통치자도 아닌 1개 장관 하나에 온 화력을 집중해 삭발하며 사생결단하는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시민은 이제 날이면 날마다 도배질하는 ‘조국’이란 이름만 나와도 넌덜머리가 난다. 나라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느라면 “얼치기 진보정권의 자살골인지.” 아니면 “사사건건 딴죽이나 거는 보수 세력의 후안무치 진영논리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본질 문제로 돌아가 하루가 다르게 경쟁력을 잃은 한국의 제조업 현장은 거미줄과 곰팡이만 쌓여가고 있다. 굳이 자위하자면 우리가 속한 섬유산업뿐 아니라 타 산업은 더욱 심각한 초상집 그 자체라는 것이다. 지난 추석 직전 대구에서 내놓으라 하는 자동차 부품회사인 신화가 부도를  내고 화의를 신청했다. 한때 잘 나가던 왜관 지역 소재 자동차 부품공장 절반이 떡살 담그기 직전이라고 한다.

성주공단 소재 유명한 글로벌 자동차 미션전문 대형회사도 가동률이 30%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섬유는 “죽네 죽네” 하면서도 자동차 부품보다 낫다고 위로한다. 대구·경북 제조업체의 주 거래가 가장 많은 대구은행 임직원들은 요즘 ‘자동차 부품’ 소리만 들어도 질색 팔색 하며 돌아선다는 전언이다. 기업 현장의 참상이 이 모양 이 꼴인데도 “우리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문 대통령의 평가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거두절미하고 “남의 염병이 나의 고뿔만 못하다”고 했다. 자동차 부품이나 타 중소기업에 비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우리 섬유산업이 망망대해 편주(片舟) 신세에 처한 사실은 삼척동자도 부인할 수 없다. 중언부언하지만 최저 임금인상과 52시간 얘기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섬유산업은 급속히 싹수가 노랗게 변해갔다. 울타리가 사라진 글로벌 시대에 경쟁력을 잃어버린 우리 섬유산업이 이대로 유지되리라고 믿는 것 자체가 신기루였다. 중국·베트남과 똑같은 제품, 아니 그보다 훨씬 뒤진 품목으로 연명해온 것이 기적이었다.

지난 추석 직전 중국에서 열린 화섬 회의에서 중국이 밝힌 화섬생산 보고서는 우선 규모에서 우리 업계의 경풍(驚風)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중국의 지난해 화섬생산량은 무려 5011만톤에 달했다. 우리나라 화섬생산량 전체인 130만톤의 40배에 가깝다. 이 중 260만 톤은 해외로 수출했다. 상당량이 한국에 들어왔다. 가연기도 한국 전체가 200대 남짓인데 생홍 1개사 보유 대수가 1,000대에 달한다. 생홍의 이 방대한 가연기도 중국에서는 ‘빅5’에도 못 들어간다고 한다.

규모 경쟁에서 비롯된 한국과 중국의 격차는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단순한 규모뿐 아니다. 설비 자동화 투자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앞서 있다. 40년 50년 된 구닥다리 설비 일색인 한국 화섬 업계와는 비교가 안 된다. 규모와 설비의 자동화에서 오는 생산성과 품질의 균일성도 절대 우위다. 여기에 중국은 PLA나 리사이클 섬유 등 친환경 소재로의 세계적인 트렌드에 일찍부터 편승해왔다.

묵은 설비로 레귤러 원사 비중이 높은 우리 화섬 업계가 중국은 물론 대만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화섬뿐 아니다. 쪼그라들 때로 쪼그라든 면방은 겨우 60만 추에 머문 국내 설비마저 제대로 가동을 못한다. 국내 웬만한 면방 회사 재고가 200만 ㎏를 웃돈다. 똑같이 미면(美綿)을 쓰지만 중국·베트남은 우리 인건비의 5분 1, 8분의 1 수준이다. 여기에 전기료마저 베트남보다 20~30% 비싼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지난달 말 베트남 섬유공장을 둘러본 필자가 누누이 강조했지만 한국의 경쟁력은 베트남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하다. 20·30대 젊은 근로자가 4000만명에 육박한 베트남은 60대 고령자에 의존한 우리 업계가 당해 낼 재간이 없다. 화섬과 면방 등 섬유 소재 메이커들이 생사기로에서 죽을 쑤고 있으니 신소재가 제대로 개발될 수 없다. 중국 · 베트남산 원사가 더 싸고 좋은데 굳이 국산 소재를 쓸 이유가 사라졌다. 실수요자인 대구나 경기북부 산지 역시 애국심은 뒷전이고 우선 싸고 편리한 중국·베트남산을 선호한다. 화섬, 면방이 수입사에 안방 시장을 내주고 처참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오래전에 공동화(空洞化)된 봉제는 포기한 지 오래지만 대구 직물 산지와 경기북부 니트 산지가 줄초상을 맞고 있는 것은 예고된 참사다.

기댈 곳 믿을 곳 없다 오직 ‘각자도생’

이 와중에 산업 정책을 담당하는 산업부는 섬유 산업을 버린 자식 취급하듯 뚜렷한 섬유 정책이 없다. 시난고난 기진맥진한 업계의 회생책은 커녕 현상유지 방안도 없다. 섬유 정책은 실종된 지 오래인데 섬산련에 대한 낙하산 인사는 빼놓지 않고 챙기고 있다. 백면서생(白面書生)이 정책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이를 깨우치고 채근해야 할 섬유 단체들도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 무능한 산업부 섬유 부서와 무능한 단체들은 이제 아예 정나미가 떨어져 지적할 가치도 사라졌다.

대안은 각자도생을 위해 중국·대만·일본이 하지 않거나 못하는 틈새시장을 찾는 길이다. 그 시장 규모는 세계 도처에 널려있다. 다만 이것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요술이 아니다. 첨단 자동화 설비 투자하고 기술 개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저작권자 © 국제섬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