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이란 인물이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할 정도의 위대한 거물인가. 온 나라 민심이 두 동강 난 채 한 달째 난타전을 벌였다. 어폐가 있지만 남의 눈의 티는 보지만 자기 눈에 박힌 돌은 못 보는 것이 사람이다. 흠결 없는 장관을 뽑으려면 성직자를 선택해야 한다. 성직자도 부모, 형제, 자녀를 몽땅 신상털이하면 견뎌 낼 재간이 없다. 장관 후보 당사자의 자질과 능력, 도덕성은 뒷전이고 사돈네 8촌까지 신상털이하는 청문회가 왜 필요한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인사혁신처에 근무하는 한 지인의 말을 빌리면 장관 후보자 낙점 대상자 20명 중 19명은 한사코 손사래를 젓는다고 한다. 기껏해야 장관 재직 2년인데 본인은 물론 가족·친척까지 난도질 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대통령이 바뀌면 장차관 3,000명의 인사권을 행사한다. 우리나라도 정권이 바뀌면 대통령이 300여명의 장차관급 인사권을 행사한다. 털어서 먼지 안 날 사람 없겠지만 고구마 넝굴처럼 번지는 의혹이 100% 사실이라면 조국 씨가 법무부 장관을 포기했어야 했다.

설비 · 임금 · 전력료 모두 경쟁력 없다

거두절미하고 지난주 오랜만에 신흥국 중 가장 경제성장이 빠른 베트남을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으로 며칠 다녀왔다. 불과 7~8년 전보다 천지개벽 상전벽해를 실감하면서 “우리 정치권이 주야장천 혀에 독을 바르고 바늘로 찌르는 정쟁에 몰두할 때인가”하는 통탄을 금치 못했다. 베트남은 필자가 27년전 수교 직전부터 시작해 수교 후 5~6차례나 다녀온 곳이다.

섬유 업계 투자조사단을 이끌고 한국 언론인으로서는 거의 최초로 들락 거렸다. 수교 전에는 공식 외교채널이 없어 편법으로 호찌민 탄손누트 공항에서 임시 비자를 받아 입국하기도 했다. 한번은 언론사 국장(당시 편집국장 직책)이 하노이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입국이 가능하다고 해서 기다렸으나 통신이 늦어져 일주일간 공항 근처 호텔에서 억류됐다 풀려난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 추억을 안고 8년 만에 다시 찾은 호찌민 시내를 보는 순간 없던 빌딩이 여기저기 우뚝 섰고 자전거 대신 오토바이와 승용차 트럭 행렬이 좁은 도로를 꽉 막았다. 불과 10여 년 전 최빈국에 불과한 베트남은 인구 9,600만명에 1인당 GDP 2,728달러의 역동적인 개도국으로 부상했다. 올해 국가 GDP 규모가 2,605억 달러로 추산되고 GDP 증가율도 6.5%를 낙관하고 있다.

20대와 30대 인구가 3,000만~4000만명에 달한 풍부한 노동력과 한국의 8분의 1수준에 불과한 임금을 매력으로 한국 섬유업체 877개(2018년 기준)가 진출해 있다. 그 중심은 벌써 1인당 GDP가 5,000달러에 달한다는 호찌민 지역에 가장 많이 집중돼 있다. 섬유스트림 중 해외 진출의 1호인 의류 봉제를 시발로 니트 및 우븐직물·염색가공, 면방, 계면활성제를 비롯한 조제, 부자재 가릴 것 없이 웬만한 기업은 거의 베트남에 진출했다. 물론 외양과 실제가 달라 성공한 기업 못지않게 실패해 보따리 싼 기업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정 기업을 일일이 거명할 수 없지만 우선 진출업체 대다수가 규모의 대형화와 첨단설비 공장이 상상을 초월했다. 웬만하면 부지 면적 7,000평에서 3만 평에 달한 데다 60% 건패율에 맞춘 최신 건물에 규격화·표준화된 설비를 보면 ‘악’ 소리가 절로 난다. 한국의 섬유·봉제·염색 가공 공장은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비해 속된 표현으로 ‘하꼬방’ 수준에 불과할 정도다. 손색이 없는 규모 경쟁에 따른 중국과 맞짱 뜨며 생산성과 품질 균일성도 놀라울 정도다.

여기에 생산 현장마다 20~30대 젊은 근로자가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 제조업에서 원자재와 인건비와 함께 3대 요소인 전력료까지 한국보다 20~30%가 싸다. 아직도 수십년 된 구닥다리 설비에 50~60대 노년층 근로자가 현장을 지키며 그마저 부족해 고임금 외국인 근로자에 의존하는 우리 섬유산업이 생존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난파선에 쥐 빠져나가듯 국내 섬유 제조업이 해외로 탈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이한 것은 미·중 무역전쟁 이후 어부지리를 만끽하는 베트남의 섬유의류 산업의 강점에도 불구, 올들어 오더가 많이 줄었다는 사실이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대만 진출 업체와 베트남 현지 기업들 모두 작년보다 오더가 감소했다고 실토한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의 봉제, 니트직물, 염색가공, 프린트, 부자재 업체 모두 작년보다 오더가 줄어 가동률이 80% 내외에 머물고 있다. 그만큼 세계 섬유의류 시장이 공급과잉에 불황이 빚어진 결과다.

문제는 어느덧 중국을 추월해 섬유·의류 경쟁력에서 1·2위를 다투는 베트남마저 오더가 감소하는 상황이니 한국에 오더가 없는 것은 자명한 현상이다. 지구촌에 울타리가 사라진 글로벌 경쟁 시대에 값비싸고 중국과 같은 품질로 경쟁하려는 한국에 어느 얼간이 바이어가 오더를 주겠느냐 하는 점이다. “외할머니 떡도 싸고 맛있어야 사 먹는다”는 것은 양의 동서를 불문하고 보편적 사고다. “자기 두레박 짧은 것은 모르고 우물이 깊다”고 원망하는 우리 업계의 천수답 경영 상태로는 미래가 없다.

야박한 지적인지 몰라도 이대로 가면 ‘주식회사 한국섬유 산업’은 3년 길어야 5년이 시한이다. 이미 공멸로 가는 초침 소리가 째깍째깍 들리고 있다. 중증 상태에 몰린 섬유 산업을 이대로 방치하면 떡쌈 담그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줄초상의 돌림병이 이미 창궐하고 있는 것이 우리 섬유 산업이 서 있는 현주소다.

마지막 기회 투자가 정답이다

중언부언하지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우리 섬유 산업이 기사회생할 수 있는 고단위 처방이 제시돼야 한다. 국내 섬유 산업은 크건 작건 아직도 제조업체가 4만 8,000개에 달한다. 근로자도 30만명이다. 유통 종사자를 합치면 100만명을 초과한다. 이 산업이 송두리째 무너져 중국산에 의존할 경우 그 횡포와 독선으로 인한 후유증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산업 붕괴로 인한 손가락질은 말할 것도 없고 이 땅의 빈곤퇴치 주역의 몰락이 란 불명예를 변명할 여지가 없다.

우선 업계 스스로 각자도생의 냉엄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동화 설비투자에 올인해야 한다. 규모 경쟁은 안 되지만 차별화를 통한 틈새시장은 세계 도처에 널려 있다. 정부도 호떡집에 불난 듯한 반도체 소재 무역 보복에만 열을 낼 게 아니라 기간산업인 섬유산업 중흥 전략의 판을 다시 짜야 한다. 섬유패션 업계는 정부의 산업 정책 실종에 분개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섬유·패션 단체장들도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지금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비상사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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