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두로 이마 지지는 폭염보다 더 참기 힘든 것은 믿었던 우방의 배신이다. 한·일 경제 전쟁의 포연이 짙게 깔리면서 글로벌 우정이란 믿을 게 못 된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한국을 망가뜨리겠다”는 아베의 교활한 경제보복은 부인할 수 없는 왜침(倭侵)이고 국가 대위국(大危局)이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고 했지만 동맹을 넘어 혈맹인 미국이 강 건너 불구경하는 이유를 당최 알 수가 없다.  

아베 정권은 무모한 경제 도발을 저지르고도 반성은커녕 황당한 거짓말로 자기중심적 역선전에 혈안이다. 일본 언론은 끝간데 없는 혐한 기사로 도배질하며 상식도 진실도 저버린 파렴치 행태가 도를 넘었다.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억지를 부린 것도 모자라 “한글을 일본이 만들어 보급했다”는 소가 웃을 코미디를 연출하고 있다.

옹기 짐 지고 가다 자갈밭에 넘어졌다

때마침 문재인 대통령이 온 국민과 함께 피가 거꾸로 선 비분강개를 억제하고 아주 절제된 광복절 대일 메시지를 전달했다.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고 마지막 인내를 포기하지 않았다. 일본의 행위야 묵과하기 어려운 괘씸죄이지만 “당나귀가 사람을 발로 찬다고 맞대응해 찰 수 없다”는 정련되고 성숙한 발언이다. 이제 공은 다시 일본에 넘어갔다. 선진국을 향해 지붕 위에 올라간 한국의 사다리를 걷어찬 일본이 불을 보고 달려들다 죽은 불나방 모험을 끝내야 한다.

본질 문제로 돌아가 어폐가 있지만 옹기 짐 지고 가다 자갈밭에 넘어진 우리 섬유산업 현주소를 지켜보면 체념이 길게 밴 자포자기 한숨을 떨칠 수 없다.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책임질 수밖에 없는 각자도생 시대라고 해도 줄 파산 사태를 강 건너 불구경하는 주무 당국과 단체의 무능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한나라의 산업의 흥망성쇠는 정책당국의 육성전략에 따라 좌우되는 것은 선·후진국의 공통된 현상이다. 전성기에 해가 저문 후 20년 가까이 시난고난 간당간당한 섬유산업에 제대로 된 육성 정책이 있었다면 오늘과 같은 참상은 막을 수 있었다.

관치 경제, 통제 경제가 많이 해소돼 민간의 자율체제가 진화됐지만 우리 산업은 아직도 주무 당국의 입김에 많이 작용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싫건 좋건 간섭과 통제는 산업정책 곳곳에 뿌리 깊이 남아있다.

또 기업 입장에서도 이것을 당연시 받아들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같은 오랜 관행에 인이 박혀 크건작건 기업은 어려울수록 주무 당국에 많은 것을 기대하며 도움을 청하고 있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주무 부처의 섬유산업 정책이 겉돌고 헛발질까지 하면서 업계가 정부에 거는 기대치가 급속히 줄어들었다. 그것이 각자도생이란 현실적 흐름에 불가피할 수 있지만 급기야 정부에 대한 원망과 비난으로 번지고 있다. 산업 현장에 줄초상이 번지고 있는데도 뚜렷한 대안이나 지원책이 안 보인 데 대한 불만일 수 있다. 세상이 분초를 다투며 변하는 변곡점의 꼭대기에서 시장을 리드하지 못하고 천수답 경영에 머문 자업자득인 줄 알면서도 조상 탓하듯 정부를 원망한 것이다.

지난주 대구 섬유업계 중진이며 섬유경영의 대가 중의 한 사람인 某중진 인사가 무심결에 한마디 던졌다. “섬유산업이 줄초상 당해도 주무 당국이나 핵심 섬유 단체는 걱정은커녕 눈도 깜짝 안 할 텐데 뭘 기대하겠냐?”며 일갈했다. 도처에서 곡소리가 요란한데도 산업부 주무 당국은 벽이 갈라졌는데 벽지나 바르고 있다는 것이다. 섬유산업연합회 사무국을 중심으로 한 책임 있는 단체의 무능도 함께 질타했다. 무능하고 무기력한 섬유단체 책임자를 향해 “나쁜 사람들”이란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물론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이다. 하지만 섬유산업은 분명 뿌리산업이고 노송(老松)이 무덤을 지키듯 아직도 가장 많은 제조업체와 고용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 기간산업이다.

일본도 소득이 높아지면서 과거 섬유 사양론이 제기됐지만 고이즈미 정권에서 섬유가 단순한 의류용이 아닌 산업의 중요 소재산업임을 깨닫고 집중 지원을 재개했다. 그 결과 도레이와  데이진 등이 의류용은 물론 아라미드, 탄소섬유 등 산업용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일본 부자 1위로 우뚝 선 유니클로의 야나이 회장이 성공 신화를 이룬 것도 도레이 같은 소재산업의 협업이 절대적이었다. 여기에 일본 종합상사가 나서 시장개혁과 금융을 지원해 오늘의 유니클로 왕국이 됐다.

섬유패션산업 정책을 관장하는 산업부가 그림을 크게 그리면서 한국판 유니클로를 만드는 데 적극적이고 과감한 대책을 진즉 서둘렀어야 했다. 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코끼리 비스킷 수준인 연간 180억도 안된 적은 규모의 섬기력 예산 중 20년 가까이 글로벌 브랜드 개발 사업에 매년 20억원 남짓 지원해본들 한강에 돌 던지기다. 찔끔찔끔 지원해서 글로벌 브랜드가 탄생한다면 후진국도 진즉 했을 것이다.

산업부가 올해 27억원이란 거액을 들어 동대문에 선보인 ‘위드인24’도 관심을 끌지는 몰라도 시장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실제 요즘 동대문을 다녀온 사람들은 그곳에 사람이 안 보인다고 히죽거린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산업부가 한국판 유니클로를 만들기 위해 통 큰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을 개발하지 않았지만 세계 1등 기업이 된 것은 응용기술 때문이다. 유니클로의 성공사례를 우리는 벤치마킹 할 수 있는 유리한 여건이다. 일본은 되는데 한국이 못할 리 없다.

한국판 유니클로 아직 늦지 않았다.

주무 당국자가 공부해야 한다. 청맹과니가 돼서는 안 된다. 위기의 한국 섬유산업의 기사회생은 획기적인 소재 혁명에 달려있다. 리오셀, 뱀부섬유, 리사이클섬유 공장 설립이 해답이다. 지구촌 환경 보호와 무궁무진한 시장잠재력을 갖고 있는 친환경 천연 염색공장도 한국에서 시작됐다. 독일 연구진과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이 견학을 오고 나이키가 신발에 접목할 정도다. 국제섬유신문이 그 많은 정보를 제공해도 현장에 가서 확인하는 공직자가 안 보인다. 이를 제대로 뒷받침못한 섬산련 사무국을 비롯한 단체와 연구소도 반성하고 분발해야 한다. 불구덩이 속으로 빠져들어 악에 받친 섬유패션 기업인의 이유 있는 탄식과 호소를 외면하지 말기 바란다. 앞뒤가 캄캄한 상황에서 이미 공멸의 길로 진입한 ‘주식회사 한국 섬유패션산업’의 조종(吊鍾)을 언제까지 구경할 작정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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