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덥고  팍팍한 세상에 생뚱맞은 얘기로 들릴지 모른다. 중국은 사회주의 혁명을 노동자 대신 농민들이 이끌었다. 농촌으로 도시를 포위하는 마오쩌의 전략이었다. 혁명 후에는 개혁개방의 주역인 덩샤오핑의 ‘흑묘 백묘’ 정책으로 중국을 천지개벽시켰다. 검은 고양이건 흰 고양이건 쥐잡는 고양이가 최고라는 융통성을 내세워 민영기업의 굴기를 이뤘다. 이것이 GDP 18조 달러의 미국에 이어 14조 달러로 바짝 뒤쫓는 중국의 G2 원동력이다.

문재인 정권을 탄생시킨 촛불 혁명은 앞에서 밀어붙인 노동자보다 온건하고 합리적인 다수 국민의 지지에서 비롯됐다. 당시 80만에 불과한 민노총이 촛불 혁명에 벽돌을 놓았지만 완성은 선량한 국민 몫이었다. 그럼에도 지난 2년 남짓 ‘권력서열 1위 민노총, 2위 검찰, 3위 대통령’이라는 기형적인 등식이 저잣거리에 회자될 정도로 세상이 잘못 가고 있었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폐단은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의 괴물을 탄생시켜 영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사지로 내몰았다.

4차 산업혁명 선도 산업 방향은 맞다

그러나 물이 비등점에 도달하면 끓어넘치고 한계 수위를 벗어난 댐은 붕괴될 수밖에 없다. 법 절차를 무시하고 걸핏하면 파업 투쟁을 일삼는 민노총의 상왕(上王) 군림에 국민들이 넌덜머리를 냈다. 국회 담장을 무너뜨리고 경찰관을 폭행하는 범법행위로 구속된 후 6일 만에 풀려난 민노총 위원장이 끝장을 보겠다는 듯 대정부 전면투쟁을 선언할 정도다. 염천 삼복더위에 또다시 최악의 파업 투쟁을 예고한 민노총이야말로 어려운 경제 환경에 기업을 불구덩이 속으로 쑤셔 넣겠다는 발상과 다름없다. 문재인 정부가 이제라도 균형감각을 갖고 노동하기 좋은 나라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외면하면 경제는 끝없이 표류와 방황을 피할 길이 없다.

본질 문제로 돌아가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으로 지난주 의욕적인 ‘섬유 패션산업 활력 재고 방안’이 나왔다. “섬유 패션산업 ICT 융합과 고부가가치화로 4차 산업혁명 선도 산업으로 탈바꿈 시킨다”는 원대한 비전이다. 지나친 장밋빛 청사진에 성공 가능성에 의문부호가 붙지만 그래도 못처럼 내놓은 정부 섬유 패션산업 정책을 만시지탄의 심정으로 일단 환영한다. 섬유 패션산업이 벼랑 끝에 몰려 망망대해 편주 신세가 되기까지 손 놓고 있던 정부가 늦었지만 이제라도 현장 애로 해결사로 나서 근본적 체질을 개선시키겠다는 복안이다.

이번 섬유 패션 활력 방안은 이례적으로 지난 26일 부총리 주재 18차 경제활력대책 회의에서 산업부와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환경부, 국방부, 소방청을 망라한 관계 부처 주무과장이 참석한 가운데 확정한 내용이란 점에서 무게감을 담고 있다. 그만큼 일자리에 비상이 걸린 정부가 비록 1인 이상 사업자까지 포함시키면 4만 8000개에 30만 명이 종사하는 섬유 패션산업을 살려야 한다는 자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핵심 내용 중에는 △봉제·염색·신발 스피드팩토어로 제작된 제조업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키고 △섬유산업의 ‘아이돌’로 통하는 산업용 섬유로 세계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섬유 패션 인력 유입 확대로 만성적 현장인력 부족을 해소하고 △생산설비 고도화로 국내 제조 경쟁력을 향상시키며 △수출 기업화 지원으로 글로벌 강소기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섬유 패션산업을 ICT, 5G와 융복합을 통해 스마트화하고 자동차·항공 첨단산업용 신소재 산업으로 탈바꿈 시킨다는 혁신 전략이 포함됐다. 섬유 패션 전 공정 스피드팩토어(팩토리+스토어) 확산을 위해 핵심기술 개발 및 시범사업을 지원하고 국방, 안전, 수송 등 분야에서 첨단 신소재 공공수요 창출로 섬유 패션산업 혁신을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대전제에서 근본적 체질 개선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신성장 산업으로 탈바꿈 시키겠다는 포부다. 이를 위해 18년부터 2021년까지 봉제·염색·신발산업의 스피드팩토어 핵심기술 개발에 올해 122억 원을 포함 390억 원을 지원키로 했다.

특히 이미 동대문에서 선보인 소비자가 매장에서 의류를 주문하면 24시간에 완성하는 ‘스피드팩토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핵심 문제다. 소비자가 빅데이터와 가상현실을 활용해 나만의 옷과 운동화를 디자인해 주문하면 이미 확보된 원단을 활용해 자동화 공정을 갖춘 봉제공장에서 만들어 24시간 내에 소비자에게 배송한다는 것이다. 공정 자동화에는 봉제와 물류이송을 돕는 협동 로봇을 활용할 계획이다.

또 이날 발표한 섬유 패션산업 활력 방안에서 눈길을 끈 것은 탄소섬유와 아라미드, 고선명 염색 등 고부가 첨단산업용 섬유 중심으로 구조를 고도화 해나간다는 대목이다. 이 부문에 올해 107개 R&D 과제에 770억 원을 지원하고 시제품 제작을 위해 99개사에 37억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소방복의 난염·방염복과 공공 근로·고 가시성 작업복 실증 연계사업을 위해 올해부터 2023년까지 524억 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의 연계 사업으로 그동안 줄기차게 제기해온 군 피복류 국산 소재 우선 사용 의무화를 위한 방위사업 법 개정과 국산 탄소섬유 수송 용기 보급사업과 난연 제품 사용 확대를 적극 추진키로 했다.

염색업계의 고질적 인력 부족과 숙련기술 단절을 해소하기 위해 염색가공 전 공정 자동화 생산라인 구축을 실현키로 했다. 올해와 내년 2년간 외국인 노동자 고용한도를 20% 상향 운영도 포함시켰다. 신발산업도 주문·배송까지 전 공정 자동화 및 ICT 융합을 통해 인력난 해소 및 생산성 증대로 해외 이전기업의 U턴을 촉진하고 독일 아디다스 이상의 신발 스피드팩토어 구축과 확산을 꾀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친환경 혁신소재 전략이 없다

이같이 정부가 모처럼 섬유 패션산업을 ICT 융합과 고부가가치화로 4차 산업혁명 선도 산업으로 탈바꿈 시키겠다는 활력 방안을 마련했지만 성공 여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동대문에 선보인 스피드팩토어도 아직 성공 여부가 가물가물하다. 외국인 근로자 고용한도 20% 상향 운영은 이미 실시되고 있지만 일감이 없는 현장은 기진맥진 상태다. 봉제 스피드팩토어를 정차시켜 동북아 다품종 중소량 패션의류 생산거점화 정책도 의욕은 좋지만 실현이 쉬운 일이 아니다.

또 무엇보다 섬유산업의 허리 부문인 직물산업이 붕괴되고 있는데도 이를 해소할 방안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친환경 신소재 개발 전략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리사이클 섬유 소재와 뱀부, 칡 섬유, 레이온 라이크 화섬 소재 개발 지원과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 천연 염색 같은 주요 쟁점이 정책 과제로 안 보인 것도 몹시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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