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실정의 모든 덤터기는 소득주도 성장이 뒤집어쓰고 있다. 정부가 임금 등 시장가격에 개입해 인위적으로 소득을 끌어올리면 “소비가 늘어나고 경제가 성장한다”는 이단(異端) 경제학자의 생체실험 결과다. 하지만 소득주도 성장의 앙꼬인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여·야 정치권 지도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치러진 2년 전 대선당시 여·야 대선후보 모두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앞다퉈 공약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1만원 인상 시점을 2019년에,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후보는 2022년까지 하겠다고 공약했다.
집권한 문 대통령 정부에서 2년간 29%를 올려 시급 8350원으로 높이면서 독박을 뒤집어썼다. 자기가 피땀 흘려 돈 벌어본 경험이 없는 정치인의 인기영합주의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고용 참사’, ‘해고 도미노’의 주범으로 몰리는 최저임금 인상을 놓고 내년에는 동결 수준으로 묶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다.
 

한국 벤더와 중국 벤더의 의식 차이

말을 바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향해 강도 높은 무역전쟁을 선포하면서 중국 대표적인 통신업체 화웨이가 최대위기에 봉착했다. 미국 정부의 행정 명령에 따라 화웨이 제품 불매운동을 우방국에까지 강요하고 있다. 한국에도 화웨이 제품 사용금지 압력이 떨어져 미·중 사이에서 처신이 아주 어렵게 됐다. 함부로 어느 쪽 손을 들어줄 수 없는 난감한 처지다.
한 가지 눈길을 끈 것은 중국 국민들의 태도다. 중국 시민들이 화웨이 살리기에 팔소매를 걷어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선호하던 삼성전자와 애플 스마트폰을 외면하고 화웨이 제품구매에 줄을 서고 있다고 한다. 중국인들 사이에 “같은 가격과 성능이면 국산제품을 사자”는 애국소비심리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원래 중국에서 뿐만 아니라 동남아 각국에서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는 화교들의 단결력과 애국심은 남다르다. 어느 화교가 사업에 실패하면 집단으로 재기 자금을 지원해주는 것도 전통적인 불문율이다. 베트남에 진출한 중국 기업들은 자국 면방업체 면사 가격이 고리당 10~20달러 비싸도 자국 기업 면사를 구매한다. 한국 벤더들이 불과 고리당 5달러만 차이가 나도 중국·대만산 면사를 구매하는 것과 너무 대조되는 현상이다.
중언부언하지만 국내 섬유산업이 시난 고난을 넘어 절체절명의 벼랑 끝에 몰려있다. 섬유 전 스트림이 생사기로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울 좋은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임금은 수직상승하고 생산 현장에는 사람이 안 온다. 청년 실업자가 140만 명이라고 난리를 치지만 산업 현장에는 돈 아니라 금을 줘도 안 온다.
이같은 시대조류에 섬유산업이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은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봉제 산업부터 난파선에 쥐 빠져나가듯 엑소더스 현상을 보여 국내는 공동화된 지 오래다.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의류 벤더들이 해외에 앞다투어 통 큰 투자를 확대해 성공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봉제가 떠나면 원부자재의 현지화로 직결돼 면사·화섬사·직·편직물도 현지 구매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 국내 섬유산업은 어느 스트림 불문하고 추풍낙엽 신세가 됐다. 전통 섬유 강국이 갖고 있는 다소간의 차별화 전략으로 버티어 오지만 중국, 베트남의 규모 경쟁과 생산성, 품질향상 앞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분초를 다투는 변곡점의 꼭대기에서 천수답 경영으로 이만큼 버티고 있는 것도 기적이다. 그 사이 하루가 멀다 하고 조난되고 낙오되는 섬유 기업이 즐비하다.
그런 한편 지금 국내에 남아있는 섬유 기업 대다수는 강한 신념을 갖고 백방으로 차별화 전략을 추구하는 기업들이다. 비록 규모 경쟁은 중국, 베트남에 밀리지만 차별화 품질로 승부를 걸고 있다. 그만큼 글로벌 시장 곳곳에 틈새시장은 널려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똑같은 제품으로는 생존이 어렵다는 판단을 오래전에 내린 결과다.
여기서 아쉽고 안타까운 것은 자국 통신업체 화웨이를 살리겠다는 중국인들의 애국소비가 한국에는 없다는 사실이다. 대량 수요처인 의류벤더들이 국내는 물론 해외공장에서 오직 가격만을 중시하고 국산 소재 사용을 외면하는 몰인정이 판을 치고 있다. 내수 패션기업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같은 가격에 동일한 품질임에도 뒷구멍으로 대접받는 외국산 소재를 선호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외할머니 떡도 싸고 맛있어야 사 먹는다”는 원리를 외면하자는 것이 아니다. 같은 값이면 국산을 써야 하고 상담 과정에서 값이 비싸면 내리고 조정하려는 노력마저 기피하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오늘날 글로벌 의류 벤더들이 이처럼 도약하기까지는 국내 소재 업체들의 공을 무시할 수 없다. 면방·화섬과 원단밀이 의류 벤더와 하나의 톱니바퀴를 이뤄 맞물러 돌아갔기 때문에 가능했다. 의류 벤더의 초고속 성장 이면에는 이같이 소재 업체들의 지원과 협력이 밑바탕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월이 바뀌어 벤더가 ‘갑’이 되고 소재 업체가 ‘乙’이 된 상황이라고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싸고 좋아야 생존한다는 시장원리는 거역해서도 거역할 수도 없다. 거듭 말하지만 같은 값이면 국산 소재를 쓰도록 노력해줘야 한다는 점이다. 국내 대형 의류 벤더 중 국내 생산팀을 운영하는 곳은 한솔섬유 한 곳에 불과하다. 대다수 벤더는 필요에 따라 그것도 가격을 후려쳐 병아리 눈물만큼 국산을 사용할 뿐이다.
 

甲·乙 공수 전환 올챙이 시절 기억을

초대형 의류 벤더의 연간 이익이 1000억원에 육박하면서 원사나 원단밀에게 가혹하게 값을 후려치는 행태가 보편화된 지 오래다. 지난번에도 지적했지만 某 초대형 의류 벤더가 겨우 8만 달러도 안 되는 국산 프린트 니트 원단을 구매한 후 4만 8000달러에 달한 클레임을 제기하는 몰인정하고 찌질한 행태가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우리가 서 있는 현주소다. 반면 미국의 유명 유통업체 한 곳은 야드당 2달러 80센트면 이익이 짭짤한 니트 원단 오더 상담 중 그 값으로는 채산이 안 될 테니 3달러 20센트를 주겠다고 자발적으로 계약서에 사인한 것과 차원이 다르다.
이같이 도덕적으로 병든 일부 의류 벤더의 행태를 바로잡기 위해 벤더 오너들이 나서야 한다.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는 현업관계자들은 어떻게든 쥐어짜 원가를 낮추는 데 혈안이 될 수밖에 없다. 벤더오너들이 국산 소재를 기피하고 거래 과정에서 물의를 일으키는 행태를 실무진의 책임이라고 변명해서는 안 된다. 갈수록 엄혹한 국내 섬유산업을 살리기 위해 벤더와 패션기업의 국산 소재 사용의 애국 소비가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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