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날갯짓이 심상치 않다. 지난 97년 세계 경영으로 파죽지세를 달리던 대우그룹에 일본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긴가민가한 위기 경고음이 울렸다. 아시아 최대 투자은행 노무라증권이 수직상승하는 대우그룹의 유동성 위기를 처음 경고했다. 그로부터 대우그룹은 세계 경영의 자금 조달처인 영국의 글로벌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이 중단됐다. 대출금 회수 작전이 시작됐다. 김우중 회장은 부랴부랴 고금리를 감수하고 자금 조달 창구를 국내은행으로 돌렸다.
글로벌 금융기관에 비해 몸체가 형편없이 작은 국내 은행들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식의 대우그룹 자금지원요청을 감당할 수 없었다. 당시 국가적으로 전대미문의 IMF 외환위기를 겪고 있을 때다. 일본의 몰인정하게 한국에서 투자자금을 회수해가자 미국·유럽도 잇따라 자금을 빼갔다. 대우그룹은 공중분해 됐고 외환위기의 국가적인 대재앙을 겪었다. 그 노무라증권이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을 1.8%로 사정없이 내려 잡았다. 정부 전망치 2.6% 성장률과 엄청난 괴리다.

 

국제회의에 중앙단체장이 안 보인다.

노무라증권의 전망이 어폐가 있지만 돌아가는 톡박을 보면 상황과 맥락의 개연성을 부인하기 어렵다. 저소득층을 위한다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저소득층에 되레 칼날이 되고 있는 역작용이 가장 큰 요인이다.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0.3%라는 참담한 실적이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철저한 장사꾼 논리인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 경제가 목표인 3% 성장을 기록한 것과 너무 대비한다. 최저임금이 2년간 30%나 수직상승하면서 지난해만 개인·법인 사업자 90만명이 폐업을 신고했다. 도·소매업 24만명과 음식·숙박업 19만명이 업을 포기한 것이다. 4월 수출도 2% 줄어 5개월째 마이너스 성장이다.
한국이 잘된 꼴을 못 보는 일본은 요즘 기세등등하며 한국을 조롱거리로 삼고 있다. 잃어버린 20년을 졸업한 그들은 “한국이 아시아의 그리스를 향해 직행하고 있다”며 파안대소하고 있다. 한국의 공무원 수는 인구대비 일본의 5배이고 세금 살포로 재정이 파탄 난 그리스와 닮은꼴이라고 조소하고 있다. 문 정권의 무지로 한국은 스스로 가라앉고 있다고 혹평하고 있다. 연일 혐한 놀이를 즐기는 일본이 괘씸하고 비열하지만 전부 틀린 말은 아니란 점에서 억장이 무너진다.
본질 문제로 돌아가 경영환경이 엄혹할수록 업계가 단합해 위기극복을 위한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급변하는 마케팅 정보를 공유하고 정보교류와 차별화 전략을 위해 협력하고 경쟁해야 한다. 중국이란 거대공룡과 규모 경쟁이 어렵다면 우리만의 차별화 전략으로 대응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남이 개발한 품목에 들쥐 떼 근성으로 뛰어들어 소나기 경쟁을 벌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정신으로 가기 위한 스트림 간의 소통과 협력이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소통과 협력을 통해 공동발전을 모색하는 중심축은 바로 업계 지도자의 몫이다. 60여개 섬유 패션단체와 연구소를 이끄는 단체장이 지도자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 지도자의 덕목은 희생과 봉사다. 몸과 시간을 뺏겨야 하고 돈도 써야 한다.
부정한 돈을 쓰라는 얘기가 아니다. 평소 지도자는 그늘진 곳도 돌봐야 하지만 업계를 위해 쓸 곳이 너무 많다. 그러니 단체장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기업이 잘돼야 한다. 여유가 있어야 돈을 쓸 수 있고 희생과 봉사가 가능하다. 개똥참외 쓸어 담듯 맡아만 놓고 입으로, 얼굴로 때우는 단체장은 말발이 앞선다.
솔직히 국내 60여 섬유 패션 단체장 중 제대로 소임을 다하는 지도자는 열 손가락 미만이다. 능력도 의욕도 없는 인사들이 수두룩하다. 이 엄중한 시기에 산업이 토사곽란이 났는데도 오불관언(吾不關焉) 행태가 만연돼있다. 심지어 국가의 체면이 걸려있는 국제회의에도 이 핑계 저 핑계로 불참하는 무성의한 방안퉁수 인사들이 많다.
작년 이맘때 대만에서 열린 한·대만 섬유산업 연례회의 때도 참여 단체장이 극히 적어 체면을 구긴 일이 있다. 주관단체인 섬유산업연합회가 독려를 했는데도 중앙단체장들이 이리 빠지고 저리 빠져 모양새가 안 좋았다. 지난 25·26일 경남 창녕 석리 성씨 고택에서 열린 한·대만 섬유산업 연례회의 때도 매한가지였다. 부모상을 당해 불가피한 경우도 있지만 중앙단체장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주관 단체인 섬유산업연합회의 성기학 회장이 유서 깊고 고색창연한 자신의 고택으로 중앙단체장을 초청했다. 하지만 대구단체장만 빼곡히 참석해 ‘대구·대만 섬유산업 연례회의’란 비아냥이 터졌다. 우리나라 섬유패션업계 수장(首長)이자 세계섬유제조업자연맹(ITMF) 회장인 성기학 회장은 귀한 장소를 제공하고 수천만 원 상당의 숙식과 기념품을 제공하는 성의를 다했다. 섬산련 공식행사인데도 섬산련 관계자 숫자보다 3배나 많은 영원무역 고급인력들이 행사를 지원하고 수발을 들었다. 대만 대표단 30여명은 하나같이 유서 깊은 고택에서 베풀어준 아주 특별한 성의에 감동했다. 그렇지만 그 자리에 함께 있어야 할 중앙단체장은 없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무능하고 무성의한 단체장이 많은 것은 산업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62년 역사의 코오롱그룹이 화섬 사업을 포기할 정도라면 섬유산업의 조종(弔鐘)이 울린 것인데도 비상대책 회의가 없다. 산업은 공멸을 향해 지름길로 달리는데 타개하기 위한 중장기 대책이 없다. 무능하고 한심한 단체장들이 많다는 의미다. 물론 국가기간산업이고 모든 산업의 젖줄인 섬유산업이 죽어가는 데도 목표도 방향도 없는 주무 당국의 무능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주력산업 10조 지원, 섬유는 왜 빼나.

때마침 정부 금융당국이 “한국 경제의 하방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금융의 경쟁력 안전판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바로 자동차와 조선, 디스플레이, 석유화학 등 주력산업에 속한 중소, 중견기업을 위해 10조원을 지원한다면서 “올해 4조원을 먼저 풀겠다”고 했다. 국가 경제 기여도에서 일등 공신인 섬유는 미운 오리 새끼처럼 지원대상에서 거론조차 안 되고 있다.
냄비 속 개구리의 화상 정도를 따지면 자동차·조선·디스플레이는 1도 화상이고 섬유는 3도 화상이다. 제조업체 수와 고용 인력이 가장 많은 섬유는 제쳐두고 타 산업에 천문학적인 정부 예산을 지원하는 것을 보면 억장이 무너지고 분통이 터진다. 이 지경이 되기 전에 업계의 지도자인 섬유패션단체장이 한데 뭉쳐 때로는 애원하고 항의하며 가져와야했다. 10조 중 섬유산업에 1조만 지원해 구조를 고도화하면 중국 아니라 일본·이태리도 겁나지 않은 경쟁력을 구축할 수 있다.
이제라도 섬유단체의 큰 집 격인 섬유산업연합회를 중심으로 단체장들이 결속하고 소통해야 한다. 물론 섬산련부터 멍석을 깔고 유인하는 노력을 경주해야한다. 지도자들이 제구실을 하고 뭉쳐야 한다. 자신 없으면 용퇴해야 한다.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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