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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탓’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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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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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를 주먹 안에 가득 쥐고 물속에 들어가면 술렁술렁 빠져나간다. 우리의 기업 현실이 물속 주먹 안의 모래처럼 생태계가 와해되는 모양새다. 폐일언하고 약자를 위한 소득주도 성장이 또 다른 약자를 약탈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의 후폭풍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사지로 몰아넣고 일자를 앗아간 것이다.
이웃 일본은 지역별·업종별 최저임금 차등적용과 연봉 1억 2000만원 이하 계층에는 시간 외 초과 근무제를 허용하고 있다. 효과적인 탄력근로제다. 겹겹이 옭아맨 주 52시간 근무와 탄력근로 6개월이 우리 현실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잃어버린 20년을 극복하고 떵떵거리는 일본과 자칫 잃어버린 20년을 향해 빙하기로 향한 우리의 처지가 참담하다.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기업의 경쟁력은 지금 이 순간 한계상황을 넘어 붕괴위기에 몰린 댐의 수위와 같다. 많건 작건 내년에 또다시 최저임금을 손대면 한국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백기 투항할 수밖에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내수 시장도 금맥 있다.

말을 바꿔 고립무원의 한계상황에 몰린 우리 섬유산업에 파산의 불길이 언제 발화 될지 숨을 죽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같이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인데도 업계 스스로의 전략 빈곤과 기량 부족은 여전하다. 섬유산업의 마지막 보루인 허리 부분의 직물산업부터 사즉생(死卽生) 노력보다 해묵은 남 탓으로 일관하고 있다. 아니꼽고 치사하다며 안방 시장은 외면한 채 치열한 해외시장에 치중하는 모습이다.
물론 니트 직물과 화섬 직물의 미들 스트림은 절대 비중이 수출이다. 당연히 수출은 수출대로 확대하되 소홀했던 국내시장도 눈독을 들여 전력투구하면 금맥을 캘 수 있다. 의류 벤더와 내수 패션브랜드들이 국산소재 사용을 기피한다고 원망할게 아니라 집요하게 접근하고 설득하면 길은 있기 마련이다. 국내 패션업체들 상당수가 아직도 국산소재 정보가 빈곤하고 적극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고 오히려 항변한 것도 일리가 있다고 본다.
중언부언하지만 평창 동계 올림픽 때부터 두드러진 롱패딩 열풍만 해도 그렇다. 아웃도어 스포츠 10대 브랜드에서 업체당 작게는 수만장 많게는 100만장까지 만들어 국내에서 소비했다. 겉감과 안감을 합쳐 피스당 7야드가 소요된다면 수천만 야드에 달한다. 이 엄청난 원단 중 절반만 국내 소재로 대체하면 대구 산지 직기 전체를 다 돌려도 감당하기 어렵다.
제조업은 바로 가동률이 원가다. 돈이 남지 않아도 설비를 풀가동하면 의외의 소득이 떨어질 수 있다. 대구 산지 직물업체들은 가격이 싸다고 내팽개치지만 알고 보면 의외의 실속을 기대할 수 있다. 문제는 국내 10대 스포츠 아웃도어 브랜드를 집요하게 찾아가 마케팅을 벌이는 적극성이 부족해 알토란같은 오더를 중국산에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언필칭 대구 산지 반응은 “오더만 주면 품질·가격을 중국산과 맞출 용의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무책임한 발상이다. 패션브랜드들 입장에서는 가만히 앉아있어도 중국소흥일대에서 활약 중인 한국인 브로커들이 샘플 들고 찾아와 싼값에 공급하겠다고 줄을 서 있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다양한 샘플을 들고 와 매달리는데 뭐가 아쉬워 발품 팔아 국내 업체 찾아다니겠는가. 그럼에도 이들 패션브랜드에게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고 닦달할 수 있겠는가.
대구 산지 직물업체들이 제대로 된 제품 적정가격에 팔겠다는 총력 전략이 없는 한 내수 패션 시장 공략은 어림없다. 소재 선택권을 쥐고 있는 디자이너들이 국내 직물 업계의 소극적인 접근에는 눈도 깜짝 않고 있다. 대구 산지 직물 업계 대표나 필요하면 단체장을 동원해 패션브랜드 오너를 설득하고 채근해야 한다. “이 엄혹한 시기에 함께 같이 가자”고 설득하면 결코 그들이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구조상 최고경영진의 결심이 없는 한 국산 소재 사용은 요원한 얘기다.
이대로 가면 국내 섬유 스트림 간에 상생 정신은 자취를 감추고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원단업체들이 표류할 수밖에 없고 결과는 중국에게 시장을 통째로 뺏길 수밖에 없다. 염료유통에서 톡톡히 체험한 것처럼 수출용이건 내수용이건 중국 독무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한 가격폭등과 납기지연의 부작용과 폐해는 패션업계 스스로의 몫이다. 국산 소재를 ‘안 쓰는 것인지’, 아니면 ‘못 쓰는 것인지’를 분명히 식별해야 한다. 비싸고 질 나쁜 원단을 사달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만 가격과 품질 차이가 없는데도 국산을 외면하고 중국산 등에 올인하는 패션기업은 언젠가 부메랑이 돼 뼈아픈 후회를 자초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더불어 직물 업계 스스로도 통렬히 반성하며 새롭게 거듭나야 할 폐단이 너무 많다. 수십 년 대구 직물 업계는 남이 개발해 장사가 된다 하면 너도나도 달려들어 시장을 망치는 들쥐 떼 근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제트류를 비롯한 공전의 히트품목들도 우리 업계끼리 과당경쟁 소나기 수출로 스스로 수명을 단축했다. ITY 싱글스판 같은 품목은 아직도 가격대비 품질에서 중국도 따라오지 못한 독점물이다.
이 역시 순전히 한국 업체 끼리 제살깎기 경쟁으로 채산이 악화돼 해당 업체마다 ‘죽을 맛’이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터키에 한국산 트랜스가공 원단이 시장을 휩쓸었다. 불황에도 트랜스 원단이 대히트하자 중국이 따라와 시장을 교란했지만 중국산 품질이 떨어져 시장에서 외면당했다. 하지만 이 품목도 한국 업체들이 치고받는 과당경쟁으로 시장이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끝 모를 제살깎기 과당경쟁.

최근 2~3년간 터키 시장에 돌풍을 일으킨 한국산 문라이트 원단도 같은 처지가 돼 시장이 죽었다. 한국산의 독점시장을 한국 업체 끼리 카피하고 제살깎기 경쟁해 결국 꿩도 매도 다 놓쳤다. 일본이나 대만기업들은 동 업계 경쟁업체가 하는 품목은 피해가는 것이 최소한의 불문율이다. 한국 기업들은 배고픈 것도 못 참지만 남이 잘되면 배가 아파 못 견디는 고약한 행태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제 대구 직물 업계나 경기 북부 니트 업계 가릴 것 없이 구태의연한 봉건적 방법으로는 살아남지 못한다. 중국이 만드는 물건을 같이 만들어서는 백전백패하는 것뿐 아니다. 우리끼리도 경쟁업체가 하는 품목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운 세상이다. 소재의 차별화 제·편직 차별화, 염색·후가공 차별화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허리 부문인 직물 산업이 무너지면 한국의 섬유산업은 끝장이다. 산토끼도 잡아야 하지만 집토끼도 금맥임을 알고 집중적으로 개척해야 한다. 제살깎기 과당경쟁은 자신도 죽고 남을 죽이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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