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줄 파산에 생태계까지 파괴되고 있는 우리 섬유산업이 과연 기사회생할 수 있을지 한심하다 못해 기가 막힌다. 산업 현장 도처에서 곡소리가 울려 퍼지고 저자거리 마실 나온 사람마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아우성이다. 이럴 땐 간섭과 통제에 이력이 난 주무 당국의 백면서생들마저 “각자도생하라”며 침묵으로 일관한다.
물론 기업이 죽고 사는 문제는 기업 스스로의 몫이다. 하지만 어려울 땐 주무 당국이 나서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느냐”고 걱정스런 한마디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닌가. 산업이 중증상태로 살얼음판을 걸어온 지 수년이 돼도 ‘어디로 가야 한다’는 대전제가 없다. 그 흔한 중장기 전략마저 도통 찾아보기 어렵다. 목표도 방향도 안 보인다.
이웃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을 보내면서 섬유산업이 산업 전반에 아주 중요한 소재 산업임을 깨닫고 지원을 강화해왔다. 아라미드, 탄소섬유 등으로 중후장대에서 경박단소의 소재 변화를 선도했다.

 

언제까지 팔짱 끼고 볼 것인가

 비행기 날개, 선박, 자동차 핵심소재의 왕국이 됐다. 산업용 섬유뿐 아니라 스마트 의류용 기능성 소재개발로 유니클로라는 세계적 SPA브랜드를 탄생시켰다. 한때 국가 전략산업에서 제외되던 잘못된 정책을 벗어던지고 고이즈미 정권 때부터 섬유산업의 진면목을 재발견해 집중 지원해왔다.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가 넘는 ‘G3' 일본은 지금 이 순간 후꾸이 직물 산지가 풀가동하고 있다.
산업의 부침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잘나갈 때 더 잘하도록 밀어주는 것은 물론 침체기에는 정부가 나서 지원책을 강구하는 것이 존립 목적이다. 우리도 조선 산업이 위기를 겪자 정부가 상상을 초월한 수 조원을 지원했다. 어려운 시기를 버티면서 다시 세계 1위 강국의 위상을 되찾았다. 자동차 산업이 어렵게 되자 정부가 급히 막대한 자금을 들여 부품업계를 수혈하고 있다. 특정산업이 붕괴위기를 맞을 때는 각 부처가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은 우리 정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아주 괴이쩍은 것은 아직도 기업수와 고용이 가장 많은 섬유산업이 폭망 위기에 몰렸는데도 정부가 대책회의를 했다는 얘기를 못 들었다. 국가 경제의 일등공신인 섬유산업을 미운 오리 새끼 취급하는 이유를 당최 알 수 없다. 섬유·패션 산업이 위기에 몰린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인데도 주무부처가 어떻게 중흥발전 시킬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안 보인다. 우리보다 임금이 비싼 일본과 이태리는 어떤 전략으로 위기를 돌파했는지 귀동냥, 눈동냥이라도 나서야 했다.
하다못해 그 흔한 해외 전시회에도 자주 나가 세계의 섬유 패션 트랜드가 어떻게 바뀌고 어떤 소재가 등장했는지 주무 당국자는 보고 배워야 했다. 선진국은 어떻게 앞서가고 우리는 어떻게 지원책을 강구해 넘어설 수 있는지 깊이 성찰해야 했다.
봄·가을로 열리는 파리 프리미에르 비죵이나 텍스월드는 물론 중국 상하이에서 열리는 인터텍스타일 전시회라도 뻔질나게 드나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곳 전시장에서 산업부 주무 당국자를 봤다는 사람이 없다. 10년 전만해도 프리뷰인 상하이에 장·차관급 고위 인사와 주무 당국자가 참석했지만 언젠가부터 이마저 사라졌다.
“죽건 살건 알아서 하라”는 식은 주무 당국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가뜩이나 시난고난하며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에 피 말리는 고통을 겪는 섬유 패션 기업을 내팽개칠 일이 아니다. 산업정책을 맡은 공직자가 소명 의식을 발휘해 어려운 기업에 갈 길을 제시하는 지원 노력이 절실하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제대로 처방을 내려면 산업의 특성과 이면을 읽어가는 훈련이 돼 있어야 한다. 제대로 알고 분석해야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온다. 오래 들여다보고 깊이 고민한 경험과 내공이 있어야 한다. 솔직히 그럴만한 의지와 실력을 갖췄는지 의문이다.
국가의 산업정책은 해당 산업의 명운을 좌우한다. 일정 수준 정부 지원책이 강화되면 그 산업은 승승장구했다. 우리 섬유 산업계는 어느 산업보다 정부 정책에 적극 호응해왔다. 받는 것은 없어도 해달라면 모두 수용했다. 지금은 소유권도 없고 간섭할 권리도 없지만 섬유산업연합회 상근책임자의 낙하산 인사도 모두 수용했다. 섬산련이 아닌 다른 단체도 무리하게 사람을 받으라면 받아왔다.
그럼에도 섬유산업 정책이 실종된 것은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 주무당국이 늦었지만 섬유 패션 산업 중흥에 팔소매를 걷어야 한다. 모두 합쳐 연간 200억원도 안되는 섬기력 사업 예산으로 생색을 낼 생각을 말아야한다. 그 대전제에서 명제는 이미 설정돼있다. 산업용이건 의류용이건 차별화 신소재 개발을 국책사업으로 지원해 성과를 내야한다.
이웃 일본의 예를 들어 벤치마킹하면 된다. 미스비시가 일반 아세테이트에 리피드 고열염색에도 끄떡없는 트리 아세테이트의 독점 기술로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아세이카세이는 셀룰로이드 섬유인 큐프라의 독점 기술로 엔조이하고 있다. 가네가롱이 개발한 가발용 원사는 전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한국에는 이런 독점기술이 없다.

 

PE·나일론 소재는 한계에 왔다

 이제 나일론과 폴리에스테르로는 한계가 왔다. 또 다른 친환경 기능성 소재를 한국이 개발하도록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가공기술개발도 발등의 불이다. 똑같은 생지를 갖고 한국에서 가공한 것과 일본에서 가공한 것은 품질이 천양지차다. 이 부문에 집중지원을 하면 한국 직물의 시장과 부가가치가 크게 상승할 수 있다. 천문학적 기술개발지원 자금지원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독일이 150년 전 화학 염료를 개발해 세계시장을 석권한 후 생산기지를 중국에 모두 넘겼다. 중국이 시장을 지배하지만 화학 염료는 환경파괴의 주범이다. 언젠가는 친환경 천연염료와 천연 염색시대가 올 수밖에 없다. 한국의 한 중소기업이 100억원을 들여 전남 나주의 파일럿 공장 경험을 살려 대구에 세계 최초 천연염색 대량 생산체제를 구축했다는 기사가 본지에 대서특필된 일이 있다. 이를 보고 독일의 유명한 기업과 연구소 관계자, 영국 캠브리지대학 연구진이 각별한 관심을 갖고 공장견학을 요청했다. 반면 우리 산업부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것이 성공되면 세계 최초 친환경 천연염색의 금맥을 캐는 신기원을 열게 돼 있는데도 말이다. 절실하고 처절한 백척간두의 섬유산업을 언제까지 오불관언(吾不關焉)으로 일관할 것인지 답답하고 분통이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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