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산업 생태계가 급속히 와해되고 있다.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지만 갈수록 동이 트기는커녕 칠흑 같은 어둠이 짙게 깔리고 있다. 가뜩이나 경쟁력을 잃어가 시난고난하던 처지에서 불과 2년 동안 최저임금 30% 인상이란 해머를 얻어맞고 스트림 전반이 겉잡을 수없이 휘청거리고 있다. 산업이 쑥대밭 되면서 그 좋던 시절 황금마차가 영구차로 변하고 있다.
급기야 대한민국 섬유산업의 상징이자 견인차인 62년 역사의 코오롱그룹의 화섬 산업이 조종(弔鐘)을 울린 데 이어 대구·경기 도처에서 포연이 짙게 깔리고 있다. 지난 1월 31일 전격 법정관리가 시작된 ‘르까프’브랜드 화승의 채권추심 포괄적 금지 명령 이후 대구·부산 원부자재 공급 업체들이 연쇄도산의 피 말리는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나라 밖 경제 환경도 결코 녹록지 않다. 미국에서만 올 한해 백화점과 스토어몰 등 오프라인 유통매장 5800개가 또 문을 닫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 중 일부 의류 소비는 온라인이 흡수하겠지만 전체는 아닌 것 같다. 인도네시아서 활약하던 한국인 봉제공장 사장이 야반도주해 파문이 커지자 우리 대통령까지 나서 해결책을 지시했다. 베트남에 있는 의류 벤더 하청공장들도 일감이 없어 철수를 고민하는 곳이 한두곳이 아니라는 소문이다.

소재산업 끝없는 잔혹사 막아야

 국내외 상황이 어려울수록 우리 내부가 상생 정신으로 뭉쳐야 가느다란 희망이 있지만 이것마저 녹록지 않아 앞뒤가 막막하다. ‘안에서 깨진 쪽박 밖에서도 샌다’고 우리 내부에서 협력이 빗나가는데 외부요인이 호의적일 수 없다. 국내 섬유 패션 각 스트림이 상생 정신을 갖고 함께 멀리 가자고 발족했던 섬산련의 ‘스트림간협력간담회’ 마저 점점 활기가 떨어지고 있다. 국내 각 생산자 단체와 업계 회장, 의류벤더 오너와 패션업계 회장이 함께하여 협력 체제를 구축키로 굳게 다짐한 약속과는 달리 갈수록 시들해지는 기분이다.
 물론 금쪽같은 시간을 쪼개 쓰는 회장들의 시간할애가 어려운 점을 모르는바 아니다. 하지만 국내 굴지의 의류 벤더 회장과 패션기업 오너의 참석률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패션업계 오너들도 섬산련 실무진이 직접 방문해 참석을 요청해도 이 핑계 저 핑계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乙’이 돼버린 국내 생산자 단체장과 기업 대표들만 열심히 참석한데 반해 벤더와 패션업계 오너들은 한자락 깔고 기피하는 모양세다. 이 모임의 산파역을 맡았던 필자의 마음은 허탈한 탄식을 떨칠 수 없다.
 스트림간 협력간담회가 꼭 생산자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해외에서 소싱공장을 운영하는 벤더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협력방안을 마련하는데 섬산련과 생산자측이 협력하는 사항도 적지 않다. 하나의 예증으로 이 회의에서 벤더 오너들이 하나같이 하소연하던 해외 현지 공장 관리자 양성요청을 받고 섬산련이 득달같이 이를 진행해 현지에서 잘 근무하고 있다. 개별기업의 능력으로는 한계가 있어 섬산련이 주도해 현지 정부와 접촉하고 설득해 인허가 등 여러 방안을 지원하는 등 의류 벤더들도 예상외의 혜택을 받고 있다.
 패션기업도 생산자 측 회장들과 소통하면서 소재 개발정보와 협력방안을 찾을 수 있다. 어떤 소재를 어떻게 개발해달라고 요구하고 성사시키면 피차 이익이다. 일본 도레이와 유니클로의 협력관계처럼 양측이 공조하여 소재를 개발하고 활용하는 전략 또한 윈윈하는 길이다. 그럼에도 국산 소재 더 써달라는 요구가 싫어 3개월 만에 열리는 회의에 꽁무니를 빼는 벤더 회장과 패션기업 회장들이 야속하다.
 몇 년 전 국내 굴지의 의류 벤더 회장이 스트림 간 협련간담회를 잘 키우고 활용해 함께 윈윈해야 한다고 철석같이 약속했으나 어느 날 갑자기 발길을 끊었다. 자신의 명예욕이 좌절된데 대한 뒤틀림 같다. 某 의류 벤더 겸 패션기업 회장은 섬유의 날에 영예의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한 고마움에 섬산련 장학금 10억 원을 10년에 걸쳐 매년 1억씩 기탁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수상 당해 연도에 1억 원을 내고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며 스트림간협력회의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반면 바쁜 일정을 쪼개 스트림간협력회의에 개근하는 극소수 벤더 회장에겐 존경과 경의를 표하지만 상생을 거부한 이런 인사들에게 기업인에게 최고 영예인 금탑산업훈장을 왜 추천했는지 알 수가 없다.
 중언부언하지만 지금은 국내 섬유산업이 미증유의 위기상황에 처해있다. 이대로 2-3년만 더 지나면 그야말로 공멸의 공포를 벗어날 수 없는 엄혹한 상황이다. 의류 벤더와 패션기업들이 꺼져가는 국내 소재 산업을 살리기 위해 팔소매를 걷어야 한다. 가격이 비싸면 깎고 품질이 안 되면 닦달해서 국산 소재를 더 많이 사용하려는 애국심이 필요하다.
 벤더와 패션기업들이 돈 될만하는 대량오더는 중국에 주고 까다롭고 어려운 소재만 국내산을 사용하는 관행부터 고쳐야한다. 심지어 국내 소재업체가 돈과 기술을 동원해 어렵게 개발한 소재샘플을 중국에 넘겨주고 싼 값에 만들라고 주문하는 치졸한 행태는 고쳐야한다. 같은 원단을 1만 야드 생산할 때와 10만·100만 야드 생산할 때의 원가는 천양지차다.
 과거 없는 현재 없고 현재 없는 미래도 없다. 지금은 ‘甲’이 돼 글로벌 기업으로 위용을 과시하고 있지만 오늘이 있기까지 국내 소재산업의 지원이 절대적이었다. 패션기업도 매한가지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고 적어도 성공한 의류 벤더나 패션기업들은 과거의 은덕을 되새길 줄 알아야한다.

벤더·패션기업 오너 애국심에 달렸다.

 오늘부터 당장 꺼져가는 국내 소재 산업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의류 벤더 오너와 패션기업 회장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더 이상 외면하거나 방치하면 국내 소재 산업의 붕괴는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그때는 땅을 치고 후회해도 소용없다. 국내 산업이 사라진 후 중국이나 인도산 수입 소재 가격과 수급이 지금처럼 이루어질 리 없다.
 이 문제는 벤더 오너나 패션기업 최고경영자가 채찍을 들고 진두지휘해야 한다. 현재의 잘못된 관행의 유통구조를 오너들이 바로잡지 않으면 도루아미타불이다. 원단구매를 담당하는 디자이너나 구매파트 실무자에게 백번 지시해본들 소용없다. 오랜 관행의 땟자국이 더덕더덕 붙어있는 커넥션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초일류 스포츠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에 국내 원단 사용량이 가장 많은 이유는 오너가 국산 소재 사용지시뿐 아니라 직접 진행사항을 수시로 점검하기에 가능했다. 오너가 체면상 형식적으로 지시해본들 실무부서는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로 커넥션을 타파할 수 없다.
 거듭 강조하지만 소재 대량수요처인 의류 벤더와 패션기업 오너들이 전면에 나서 와해되는 국내 소재 산업 살리기에 앞장서야 한다. 더 이상 소재 산업의 끝 모를 잔혹사를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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