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폐가 있지만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정책 기조인 소득주도 성장이 난도질당하고 있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고용성적표 때문이다. ‘실업자 최대’, ‘실업률 최고’란 면목 없는 F 학점 성적표가 원인이다. 소득도 성장도, 고용도 없는 이단(異端) 경제학자의 생체실험의 결과다.
숫자는 거짓말을 못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1월 고용 동향’에 따르면 실업자가 122만 명에 달했다. 19년 만에 최악의 성적이다. 일자리 양과 질 모두 곤두박질쳤다. 최대임금을 가파르게 올린 실책이 고용재앙을 일으켰다. 주홍글씨가 된 소득주도 성장의 포장뿐 아니라 내용물도 바꿔 하루빨리 혁신성장으로 유턴해야 한다.

 

한국섬유역사 코오롱FM의 운명

그러나 단순 실업자 통계만 보고 고용 실패로 매도하는 것 또한 무리가 있다. 따지고 보면 널려있는 것이 일자리다. 너도나도 삼성, 현대, LG, SK나 공기업 가려고 기를 쓰니 문제다. 지금 이 순간도 중소기업은 사람이 없어 심각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중소기업에도 좋은 일자리가 얼마든지 있다.
이명박 정부 때도 실업률 때문에 고심참담하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청년들이 눈높이를 낮추도록 당부해왔다. 재벌그룹이나 공무원만 쳐다보고 중소기업은 안중에도 없는 잘못된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자영업자 고용 감소도 내시경으로 냉철히 봐야 한다. 최저임금과 주휴수당 때문에 자영업주가 쪼개기 알바를 늘린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집 건너 치킨집, 식당이 생겨 제살깎기 경쟁을 벌이는 구조가 원인임을 알아야 한다. 인구 1000명당 미국은 식당이 0.8개인데 반해 한국은 11개에 달한다. 난립으로 인한 과당경쟁을 정부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것이다.
본질 문제로 돌아가 기어코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중소기업 모두 대동소이하지만 고래 심줄처럼 질긴 섬유산업에 조종(弔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대구·경기 가릴 것 없이 섬유산지의 제·편직, 염색, 사가공까지 도처에서 곡소리가 요란하다. 서까래에 이어 기둥이 붕괴되더니 이제 대들보까지 무너져 섬유산업 생태계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아직 예단할 수 없지만 한국 섬유산업의 상징이자 대들보인 코오롱 그룹의 화섬메이커 ‘코오롱FM'이 화섬사 생산을 포기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종결정은 22일 이사회가 분수령이 되겠지만 소문이 사실이라면 충격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할 사안이다.
62년 전인 1957년 한국나일론을 시발로 69년 폴리에스테르사까지 진출해 우리나라 섬유산업의 근대화·고도화를 선도한 곳이 코오롱이다. 화섬원사 메이커가 못자리가 돼 오늘의 코오롱 그룹이란 재벌을 축성했으며 화섬산업의 선두주자로서 섬유산업을 이끌어왔다. 세계 최대 화섬직물 산지로 우뚝 선 대구와 경기 북부 니트 산지가 존재한 것도 코오롱이란 든든한 버팀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섬유산업발전의 견인차이자 상징 같은 위상이 바로 코오롱인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고 장강의 앞 물이 뒷물에 밀려나는 산업구조 속에 천하의 코오롱도 중국의 위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국내 섬유산업의 쇠락을 몰고 온 중국의 공세 앞에 코오롱의 화섬사 산업도 급격히 추락했다. 첨단설비로 무장한 중국의 대규모 경쟁력에 설 땅을 잃고 급기야 매년 수백억 원의 적자를 감수해왔다. 아무리 자구노력을 해도 원천적으로 중국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존폐위기에서 마지막 컨설팅을 의뢰해 길을 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폴리에스테르와 나일론 원사를 생산한 코오롱FM이 한국 나일론 시절부터 한국 섬유산업 근대화에 기여한 공로 못지않게 아쉬운 점도 많다. 중국과 대만 화섬업계의 질적 양적 일취월장을 지켜보면서 차별화 전략에서 뒤쳐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이것은 코오롱FM뿐 아니라 우리나라 화섬업계가 안고 있는 공통된 문제다. 중국·대만 심지어 베트남까지 대규모 첨단설비로 무장하며 협공해오는 사이 우리 화섬업계는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40년, 50년 구닥다리 설비에 의존하면서 생산성과 차별화에서 크게 뒤졌다.
일본 화섬업계가 다양한 기능성 소재를 개발하고 생산해 유니클로를 중심으로 기능성 세계 화섬신소재시장을 선도한 데 반해 우리는 고작 일본을 뒤따라가는 데 급급했다. 일본의 기능성 차별화 소재를 카피하는 수준이었고 독자적인 신소재개발은 뒷전이었다. 니트건 우븐이건 제직·편직 기술만 갖고 해외 시장에서 제값 받기를 구현하기는 어렵다. 적어도 소재의 차별화 없이 직물 차별화는 요원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중언부언하지만 한국 섬유산업의 미래 먹거리는 소재 차별화에 달렸다.
하지만 아쉽고 안타깝게도 차별화 신소재개발이 한참 뒤져있어 걱정이다. 전 세계 패션 트렌드가 친환경 소재로 급격히 변하고 있지만 우리의 대응 능력은 한참 뒤떨어져 있다. 지난주 파리에서 열린 춘계 프리미에르비죵에서도 두드러진 현상은 리사이클 섬유나 생분해성 소재가 각광을 받았다. 오가닉·면·모달·텐셀은 물론 심지어 천연염료를 활용한 천연 염색 직물이 크게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한국의 이같은 친환경, 친인체용 소재는 크게 뒤떨어져 있다.
리사이클 소재는 가격경쟁에서 뒤쳐져있고 한국이 먼저 시작한 생분해성 소재는 중국이 훨씬 앞서가고 있다. 일본 미쓰비시는 일반 아세테이트에 리피드 고열 염색을 해도 끄떡없는 이른바 트리아세테이트의 독점기술로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아사이카세이는 셀룰로이드 섬유인 ‘큐프라’의 독점기술을 갖고 장기간 엔조이하는 등 일본 기업들은 독자기술로 세계시장을 섭렵하고 있다. 한국은 이런 독자기술이 없어 항상 일본이나 다른 나라 소재를 모방하거나 카피에 의존하는 후진성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한국서 레이온필라멘트 개발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 가지 낭보는 지난 2월 4일과 11일 자 국제섬유신문 통합호 1면 톱기사인 “친환경 소재개발 혁명 없이 섬유산업 미래 없다.”제하의 ‘리오셀·죽 섬유 국산화 눈뜨자’ 기사를 본 기업들의 뜨거운 반응이다. 그 기사를 읽은 많은 기업인들이 공감을 표시하며 관심을 표명했다. 심지어 모 유력 섬유 기업은 탄탄한 재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무공해 용매기술을 활용해 리오셀필라멘트 개발을 위한 투자방침을 확정하고 본격 준비에 착수키로 했다.
이것이 성공적으로 실현되면 당사자는 물론 한국 섬유산업 발전에 새로운 거보를 딛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친환경 신소재개발 투자에 올인해야 할 이유다. 

저작권자 © 국제섬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