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망가졌다. 한 살 더 먹어도 자고새면 삿대질에 쌈박질이다. 더욱이 김경수 경남지사 구속 수감 이후 문재인 정권이 흔들리고 있다. 화력을 총동원한 야당의 공세 앞에 허약한 집권여당이 맥을 못 추고 있다. 그렇다고 역풍을 아랑곳 하지 않고 임기 절반도 못 채운 대통령을 향해 노골적으로 ‘물러가라’는 식의 야당의 행태도 금도를 벗어나 무례하고 가증스럽다.
이 판국에 새해 들어 울타리 없는 글로벌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잘 나가던 미국 경제가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G2인 중국도 미국 호랑이 앞에 웃통 벗고 대들다 경기침체로 무서운 후폭풍을 맞았다. 세계 경제가 미·중 양국의 재채기에 감기몸살을 앓을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수출 의존도가 90%에 달한 우리 경제에 직격탄이 몰려오고 있다. 대한민국을 먹여 살린 반도체마저 슈퍼 호황이 꺾여 곤두박질치고 있다. 우리 경제 전반에 빙하기가 몰려오고 있다. 그래서 오죽하면 기업마다 새해의 키워드는 ‘생존’이겠는가.
경제 전반이 맨살 위에 지네가 지나가듯 스멀거린 공포 속에 정치인들은 피 말리는 기업인의 고통을 모른다. 기업이 죽건 살건 자기 주머니에서 돈 나갈 일 없는 정치인들은 시시각각 쓰러져가는 기업 현장을 외면한다.

 

베트남의 하청 기지 전락할 것인가

 최저임금이 2년간 기본급 29%가 올랐다면 상여금, 4대 보험, 퇴직금을 합쳐 통상 40~50% 이상 오른 셈법을 모른다. 간판 내리고 문 닫는 기업이 급격히 늘어나는 이 판국에 노조원 수만 급팽창한 민노총 공화국의 말로가 어떻게 전개될지 불을 보듯 뻔하다.
폐일언하고 냄비 속 개구리 신세인 우리 섬유산업이 어느덧 3도 화상을 입었다. 백척간두 벼랑 끝에 몰린 섬유산업에 파산의 불길이 이미 발화하기 시작했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이 촉매제는 됐지만 근본 문제는 아니었다. 이미 과거 정부 때부터 중증환자가 돼 시난고난 지내오다 문재인 정부가 핑곗거리를 제공하며 독박을 쓴 것이다.
6000개에 가까운 섬유 기업이 해외로 탈출해 국내는 상당수 쭉정이만 남았다. 요즘도 갈 수만 있다면 베트남을 향해 엑소더스가 이어지고 있다. 30대 팔팔한 근로자의 월 임금이 오르고 또 올랐지만 월 40만원 수준에서 한국의 10분의 1수준이다. 생산설비도 중국에 이어 대규모로 이어지고 설비 또한 자동화율이 급진전되고 있다.
이미 서막이 울려 퍼졌지만 이대로 가면 한국의 섬유산업은 베트남의 하청기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크고 돈 될만한 오더는 중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이 차지하고 한국은 이삭이나 줍는 처연한 신세가 되고 있다. 눈 씻고 봐도 한국의 섬유산업이 중국, 베트남 등지와 겨뤄 생존할 가능성이 안 보인다.
섬유 기업인들의 천수답 경영의식도 문제지만 정부의 어쭙잖은 지원 정책이 쇠락을 재촉하고 있다. 이미 전 세계 수요량을 생산할 수 있는 광범위한 캐퍼를 확보한 중국은 섬유산업이 날개를 달 수밖에 없다.
섬유 공장 설비는 물론 운전자금까지 기업에 130%를 지원한다. 반면 한국의 은행들은 섬유 기업이 “만져보고 준다”고 해도 변 묻은 새 발 털듯 털고 있다.
산업정책을 담당하는 산업자원부의 섬유 정책이 실종된 지 오래다. 경쟁력을 잃은 섬유산업에 줄초상 돌림병을 예고해도 뚜렷한 대책이 없다. 기업의 운명은 기업 스스로 책임지는 각자도생 시대이지만 이런 위기일수록 중장기 정책을 마련해야 함에도 감감무소식이다. 올해 섬기력 사업예산 166억 원을 확보했다고 자화자찬하지만 섬유패션 중흥에는 병아리 눈물에 지나지 않는다. 담벼락이 갈라졌는데도 한쪽 벽지만 새로 한 격이다.
목표도 방향도 없는 것이 정부 당국이라면 그 많은 섬유 패션단체와 연구소 역시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인 중국과의 규모 경쟁이 물 건너간 지 오래라면 중국이 안하거나 못한 아이템을 찾아 틈새시장을 찾아야 함에도 제자리걸음이다. 무능하고 노쇠한 일부 단체장들은 안되면 조상 탓하듯 지청구로 궤변을 늘어놓는다. 무엇보다 절박하고 시급한 것은 섬유 기업인들의 발상 대전환이다. 세상은 변하고 변해 변곡점의 꼭대기에 와 있는데도 과거의 천수답 경영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구 산지만 봐도 분초를 다투는 변화의 시대에 한참 뒤떨어져 있다. 섬유 역사 60여 년 동안 언제라고 편할 날이 있었는가 돌이켜보면 그때마다 위기였다.
일본 경영계의 신(神)으로 불리는 마쓰시타 전기 창업주 고(故) 마쓰시타 회장의 유명한 경영어록처럼 “호황은 좋다. 불황은 더욱 좋다”는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불황 때 움츠리지 말고 더욱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호황 때 빛을 본다. 대구 섬유업계 원로·중진 중에 상당수가 투자하지 않고 “공장 임대주거나 매각해서 편히 살겠다”는 비겁한 사고가 바뀌지 않는 한 표류와 방황은 피할 길이 없다. 세상 바뀐 줄 모르고 비수기 때 잔뜩 짜 쌓아놓고 성수기에 왕창 팔겠다는 봉건적 사고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것이 부인 못 할 사실이다.
지금은 국내외 모든 여건이 위기상황이다. 위기일수록 차별화 전략은 필연적인 논리이고 현실적인 대안이다. 규모 경쟁을 앞세운 중국, 베트남과 경쟁해 살아남는 길은 차별화가 최선의 대안이다. 제직·편직·염색업계의 과감한 설비투자와 기술개발이 당면과제이다. 최저임금 급등과 근로시간 단축에 살아남은 길은 자동화 설비투자다. 이 부분에 정부가 중국처럼 130%는 안 돼도 100% 저리 금융지원을 펴야 한다.

 

섬유산업 명운 신소재 개발에 달렸다

이와 병행해 발등의 불은 차별화 소재 개발이다. 섬유산업의 대들보인 화섬 메이커들이 소재 개발 투자에 과감히 배팅해야 한다. 축적된 중합·방사기술의 노하우를 활용해 가벼운 PP 섬유나 리오셀·뱀부 섬유와 융복합하는 신소재 개발에 전력투구해야 한다. 폴리에스테르 잠재권축사를 가장 먼저 개발한 일본 테이진이 가볍지만 열에 약한 PP 섬유의 약점을 보완한 ‘뉴 잠재권축사’ 출하를 준비하는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화섬, 면방, 사가공, 제·편직, 염색업체가 공동 참여하는 신소재개발 프로젝트를 서둘러야 한다. 신소재 개발 없이는 섬유산업의 미래는 열리지 않는다. 노력해서 안 될 것이 없다. 실패의 모험을 기피하면 대박을 기대할 수 없다. 한국의 섬유산업은 위기에 강한 특성을 갖고 있다. ITY 싱글 스판 니트 직물업계가 박리다매 차별화로 전력투구한 결과 중국마저 손들게 했다. 절대 포기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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