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두절미하고 세치혀로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지 못한다. 입에 바늘을 물고 혀끝에 독을 바르고 거침없이 찌르고 할퀴는 말의 폐해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일반인 사이에서도 말의 실수는 살인까지 유발하고 정치인의 말실수 한마디에 정치 생명을 앗아가기도 한다. 수많은 정치인이 세치혀 때문에 설화 파문을 일으켜 곤죽이 된 경험이 비일비재하다.
때마침 2차 북· 미 정상회담 일정이 발표 되면서 남북경제교류에도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남· 북 관계개선은 경제교류가 우선이고 그 첫 번째 단추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에 달려있다.
이해 당사자 간 견해는 다를 수 있지만 금강산 관광은 돈을 쓰려고 가는 곳이고 개성공단은 돈을 벌어오는 차이가 있다. 개성공단에서 얻어지는 모든 재화 중 임가공료로 5%만 북한에 돌아가고 95%는 남측에서 차지하는 황금어장이다. 한마디로 개성공단이야말로 우리가 퍼주는 곳이 아니라 퍼오는 곳이다.

 

일부 정치인 아직도 퍼주기 폄훼 남남갈등

최저임금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우리 제조업을 옥죄이는 어려운 국면에서 개성공단 재개는 북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측 기업을 위해 필연적인 논리이고 현실적인 대안이다. 국내 섬유 관련 기업들이 개성공단 재개를 학수고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직은 예단할 수 없지만 북· 미 2차 정상회담이 열리는 3· 4월경에 개성공단 재개에 극적인 전환점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같은 흐름에 맞춰 우선 개성 공단기업들이 올봄에 재가동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벌써부터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 지난주 국회 이언주 의원이 개성공단에 대한 왜곡된 사견을 제기해 일파만파의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개성공단이 재개되면 북한의 핵 개발 자금 유입과 북측 근로자로 인해 남측 근로자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모호하고 자의적인 논리를 내세워 언론에 대서특필 됐다. 복잡 미묘한 북· 미 관계와 한· 미 관계에서 국내 경제를 살리기 위해 개성공단 불씨를 살려내려는 정부· 여당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해 당사자인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상식도, 진실도 통하지 않는 “왜곡된 과장과 편견”이라고 들고 일어나고 있다. 정치인들의 자기중심적 편견과 왜곡은 늘상 있는 일이지만 “남북관계뿐 아니라 남남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한 발언은 신중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먼저 연간 1억 달러 규모의 근로자 임금 중 얼마만큼 북한 핵 개발에 사용됐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누구도 핵 개발 자금 유입의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다만 개성공단이 폐쇄된 후 3년 동안 임금지불이 안됐지만 북한 핵실험은 더욱 두드러졌다. 북한은 석탄을 팔건 해외건설 노무자임금이 됐건 심지어 담배나 마약 밀수출을 했건 연간 50억 달러 이상의 교역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성공단 근로자 임금에 의존해 핵을 개발했다면 폐쇄 기간 동안 핵과 미사일 개발 능력이 없어야 했다.
더욱 개성공단이 재개되면 5만 4000명 규모의 북측 근로자를 다시 고용하게 되고 이로 인해 가뜩이나 일자리가 부족한 남측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개성공단 폐쇄 직전 5만 4000명의 북측 근로자를 고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위해 남측에는 7700개의 원부자재 공급 협력업체에서 7만 7000명의 고용이 이루어졌다. 여기에 개성 공단기업 자체에 1000명의 고용 창출도 이루어졌다. 앞에서 지적하듯이 물과 공기를 제외한 모든 원부자재와 심지어 채소 양념까지 남측에서 공급했다. 전체 개성공단 생산액 중 임가공료로 지불되는 5%만 북한에 줄 뿐 나머지는 남측 몫임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더구나 지금 우리 중소기업이 서 있는 현주소는 감당할 수 없는 추위에 떨고 있다. 섬유 봉제 관련 업체만 이미 6000개 가까운 기업이 해외로 탈출했고 국내에 남아있는 5인 이상 4만 개 기업이 오더가 없어 줄초상 위기에 몰려있다. 원인은 국내외 경기 불황 탓이지만 가장 큰 두 가지 원인이 있다.
하나는 국내 의류벤더들이 해외에 대규모 자체 소싱공장을 운영하면서 원사· 원단공장까지 해외 자가 공장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대구나 경기 북부, 부산에서 공급하던 물량이 시장을 잃은 것이다.
또 하나는 개성공단이 폐쇄되면서 내수용으로 공급하던 원부자재 시장이 사라져 남아있는 공장들이 오더 기근으로 막다른 골목에 몰린 것이다. 대구 직물산업이 우수수 붕괴 되고 경기도 양포동(양주, 포천, 동두천) 편직· 염색업체가 줄초상 속에 매물 폭탄이 터진 것도 개성공단 폐쇄로 직격탄을 맞은 결과다.
초창기 개성공단이 가동될 때 오불관언(吾不關焉) 태도를 보였던 보수적인 대구 섬유업계가 지금은 개성공단을 서로 가려고 안달이다. 경기 북부 니트업계도 같은 움직임이다. 시장을 모르고 구태의연한 고정관념을 벗어나지 못한 청맹과니들이 상황을 왜곡 폄훼하고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폐쇄 직전까지 총 6000억원이 투입된 개성공단은 3조원 이상의 경제적 효과를 거둔 남북경협의 상징이자 실증적 모델임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정치권뿐 아니라 누구라도 개성공단에 대한 진면목을 정확히 알고 판단하고 훈수를 둬야한다. 지난 2003년 착공 후 2006년부터 시범단지 100만 평 위에 겨우 절반을 채우고 생산에 들어간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피나는 고통을 감내하며 정착했다. 필자도 마찬가지이지만 입주기업 모두 철저한 반공주의자들이다. 개성공단 산파 역할을 맡았던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의 직설처럼 “북한 도와주기 위해 개성공단에 간 기업인은 하나도 없다. 오직 어려워진 기업들이 살기 위해 그곳에 갔다”는 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임가공료 5% 물· 공기 빼면 95% 남측 몫

그 과정에서 개성공단 입주기업은 경제적 효과 못지않게 죽의 장막 북한 주민들의 의식 변화란 엄청난 부수효과를 얻어냈다. 처음에는 말대꾸도 하지 않고 미숫가루 제공도 거부하던 북측 근로자들은 새참으로 초코파이에 이어 라면을 먹고 커피까지 마시는 천지개벽의 변화를 이끌었다. 어느덧 북측 근로자들 의식이 70%는 남쪽 사람으로 변할 정도로 부수 효과를 얻었다. 황색 바람을 경계하는 것은 북한 고위 지도자들일 것이다. 개성 공단기업들은 맨땅에 헤딩하며 불모지를 상당부문 개방 사회로 이끈 애국자들이다. 누구이건 퍼준다는 선입견을 품고 개성공단과 관련 기업인을 폄훼하는 것은 옹졸하고 위험한 사고다.
누구든 개성공단을 정치적으로 악용해 남남갈등을 유발해서는 안된다. 대화가 깨지면 평화도 깨진다. 평화비용이 아무리 비싸도 전쟁보다 싸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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