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에 찔려 피가 나도 한참 지나 ‘아얏’ 소리하는 격이다. 무감각한 것인지 소통이 안되서인지 당최 알 수가 없다. 급격한 최저임금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이 몰고 온 충격과 아우성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닌데 이제야 겨우 사태의 심각성을 아는 것 같다. 대통령이 노동부 실무자에게 “최저임금 속도가 빠른 것이냐”고 겨우 운을 뗐다.
제백사(除百事)하고 늦었지만 대통령이 경제 살리기에 팔소매를 걷은 것은 천만다행이다. 곤죽이 되다시피 한 제조업을 살리기 위해 중소기업 시설투자에 2조 원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2022년까지 스마트공장 3만 개를 만들겠다는 원대한 청사진도 밝혔다. 돌아가는 통박으로 봐 최저임금인상 속도 조절도 가시화되고 탄력근로제도 손볼 것 같다.
정부가 임금을 시장 가격에 개입해 인위적으로 소득을 끌어올리면 경제가 성장할 것으로 우긴 소득 주도 성장정책의 부작용을 직시한 것이다. 제조업으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섬유를 비롯한 전통주력산업이 활기를 잃고 있는 발등의 불을 “제조혁신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는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을 떨칠 수 없다.

 

고임금· 인력난 대책이 답이다

문제는 경쟁력이다. 전통 주력산업이 죽건 말건 내팽개친 것은 문제지만 정부가 아무리 애써도 우리 내부가 안고 있는 태생적인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 사람과 자본· 기술 3대 요소 중 우선 가장 큰 걸림돌인 사람 문제가 아킬레스건이다. 임금은 베트남보다 10배나 높고 산업 현장에 사람이 없어 외국인 근로자까지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제도의 모순이 전통 주력산업을 죽인 것이다.  
하나의 예증으로 섬유산업뿐 아니라 모든 산업의 뿌리인 면방산업을 보자. 80년대까지 370만 추에 달하던 면방설비가 올해 겨우 50만 추대로 급감하고 있다. 코마 30수를 생산하는데 소요되는 방적비가 한국은 고리당 200~220달러인데 반해 베트남은 150달러 수준이다. 원면은 한국이나 베트남, 중국이 똑같은 가격에 미면이나 호주면을 쓰고 있으나 방적비 차이에서 도저히 경쟁이 안된다. 근로자 임금은 물론 전기료까지 차이나기 때문이다.
똑같은 품질의 화이트사를 한국면방업체는 600달러인데 베트남 한국공장은 570달러 내외다. 대량 수요처인 의류벤더나 원단밀들이 똑같은 품질의 면사를 베트남에 있는 한국 면방업체에서 구매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줄이고 또 줄여 겨우 50만 추대로 급감한 국내 면방사가 생산하는 면사가 지금 이 순간도 재고가 산더미처럼 쌓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섬유산업 중 가장 보수적이라는 면방업계가 국내 시설을 앞 다퉈 베트남으로 옮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가 국내 투자를 기피하고 해외로 집단 탈출한다고 핏발선 눈으로 바라보지만 기업이 살기 위해 나갈 수밖에 없다. 90년대 후반부터 엑소더스가 시작된 국내 봉제 산업이 완전 공동화(空洞化)된 것처럼 면방 공동화 역시 받아놓은 밥상 격이다.
이같은 현상이 면방과 봉제뿐인가, 각 스트림이 똑같이 겪고 있는 중증현상이다. 지난 60년대 초부터 재벌급 대기업이 진출해 키워온 화섬 산업 운명도 간당간당하기는 매한가지다. 전 세계 수요량을 커버하고도 남을 방대한 캐퍼를 갖고 있는 중국 화섬업계의 공세가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다. 최신설비로 무장한 중국 화섬 메이커는 1개 회사 캐퍼가 한국 전체 캐퍼 보다 많은 규모 경쟁의 비교우위를 갖고 있다. POY, DTY 가리지 않고 중국산이 이미 한국 시장을 대거 장악했다. 그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재고 처분을 위해 무차별 덤핑투매까지 자행하고 있다.
지구촌에 울타리가 사라진 글로벌 시대에 중국산 화섬사는 사실상 국산과 연동돼 있다. 중국 가격에 따라 올리거나 내릴 수밖에 없다. 최근처럼 일시에 파운드당 200원씩 내린 중국의 덤핑투매 앞에 국내 화섬업계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눈덩이 적자를 지속하다 겨우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는 순간 중국산의 덤핑으로 수요가 몰리고 시장은 잠식당해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격을 낮췄다.
자동화 설비의 규모 경쟁으로 시장을 석권한 중국 앞에 40년 구닥다리 설비로 중국보다 5~6배 비싼 인건비를 안고 싸우는 자체가 역부족이다. 재고는 쌓이고 채산은 악화돼 하는 수없이 국내 화섬업계가 대규모 감산 등 극약처방을 내리고 있다. 아무리 애국심이 강해도 기업은 마냥 적자를 용인할 수는 없다. 이대로 가면 머지않은 장래에 화섬공장 포기선언이 나오지 않으란 법이 없다.
섬유산업의 허리 부문인 직물산업이 이런 환경에서 이만큼 버티고 있는 것은 기적이다. 대구 합섬 직물과 경기 북부 니트직물 업계가 신소재 빈곤의 어려움 속에 시난고난 근근이 버티고 있는 것이 용하다. 그런 직물산업도 낙조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대구나 경기도 일대 섬유기업인 10명 중 9명은 할 수만 있으면 당장 문을 닫겠다는 체념적인 한숨 소리가 땅 꺼지게 들리고 있다.
그러나 섬유산업의 최후의 보루인 직물산업만은 살려야 한다. 이것이 무너지면 그야말로 게도 구럭도 다 놓칠 수밖에 없다. 처방이 간단치는 않지는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한국이 갖고 있는 축적된 노우하우와 광범위한 시장망, 세계 어느 나라보다 발 빠른 순발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해야 한다.

 

남이 하는 제품은 무덤이다

중언부언하지만 섬유 기업이 신념을 갖고 투자해야 한다. 차별화가 유일한 처방이라면 첨단 자동화 설비에 투자해야 한다. 국내외 눈동냥, 귀동냥을 총동원한 신기술개발로 중국과 인도, 베트남이 안하거나 못하는 품목을 찾아 올인 해야 한다. 경쟁국이 만드는 제품은 똑같이 만들어서는 죽는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정부가 스마트공장 3만 개 신설도 좋지만 이미 한계상황에 도달한 섬유 등 전통 주력산업을 위해 기업의 설비 개체에 파격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인력난과 고임금으로 인한 직격탄을 덜어주기 위해 외국인 연수생 제도를 최대한 늘려야 한다. 지금처럼 3개월 단위가 아닌 2~3년 기간으로 체류 기간을 연장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이다. 국내 면방· 화섬 산업이 붕괴되면 중국산의 가격 횡포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럴 때 일수록‘주식회사 한국섬유산업’이란 공동운명체를 생각해 각 스트림이 함께 멀리 가야 한다. 특히 벤더나 패션기업들이 투철한 상생정신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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