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마지막을 빛낸 디자이너 박춘무 지난 30년의 삶을 돌아보다.

<아듀~2018> 유통바이어가 꼽은 올해의 베스트 디자이너 ‘박춘무’
끝없는 진화와 발전을 거듭한 패션디자이너 공로 인정 올해 공로상 수상자
박춘무 인생 언제나 그녀의 선택은 옳았다
‘데무’ 1988년 런칭 하자마자 획기적인 스타일로 패션게 주름

 

자신이 직접 그린 유화 그림 앞에 선 디자이너 박춘무.

2018년 무술년 한해가 저문다.
지난 한해를 돌아보며 국내 패션계에서 가장 화두가 된 인물에 대해 단 한명만 꼽으라고 한다면 누구를 말할 수 있을까?
본지가 국내 대형 유통사 바이어들을 대상으로 심층 설문조사를 통해 ‘올해의 2018 베스트 브랜드와 2019 유망브랜드’(본지 12월 3일자 특집호) 선정에 있어서 ‘올해를 가장 빛냈던 국내 패션 디자이너’를 선정하는 설문을 조사했다.
그 결과 내수 패션업계의 장기 불황의 늪을 걷고 있는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와 달리 지난 30년간 흔들림없이 굳건하게 국내 패션계를 이끌어온 인물이자 최고의 디렉터라고 모두 일제히 입을 모은 주인공이 있었다.
바로 디자이너 박춘무.
올해 2018 코리아패션대상 영예의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그는 올해 30주년을 맞은 여성 캐릭터 브랜드 ‘데무’의 총괄 디렉터이자 우리들의 영원한 패션계 히어로다.

 

데무 런칭 30주년 기념 전시 패션계 여전히 화제의 행사

올해는 박춘무 디자이너에게 있어 매우 특별한 한해였다.
‘KOREA’라는 작은 나라를 전 세계에 처음으로 공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88올림픽’이라는 역사적인 해인 1988년. 대한민국 여성 캐릭터 캐주얼 시장의 첫 도전작인 ‘데무(DEMOO)’가 서른살 생일을 맞이한 해이기 때문이다.
특히 디자이너 박춘무는 올해 서울패션위크 명예디자이너로 선정되면서 지난 30년의 행적을 집대성해 한눈에 보여주는 특별전 ‘무(無)로부터’가 10월 18일부터 11월 14일까지 약 한달간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데무의 30주년 아카이브 전시회를 보기위해 전국 각지에서 수천명이 방문했고, 참관객들의 요청에 따라 당시 진행 기간보다 열흘을 연장해 전시할 정도로 인기는 대단했다.
전시가 끝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을 정도로 큰 화제를 모은 특별전은 단순히 디자이너 박춘무의 패션 역사를 집대성하는데 그치지 않고 각계 예술가들과 콜라보레이션한 데무의 의상들을 창조해내고, 미술학도 출신답게 디자이너 박춘무가 이번 특별전을 위해 직접 화실에서 작업한 다양한 그림 작품까지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갤러리 형태로 꾸민 전략이 주효했다.

 

‘데무만의’ 오리지널리티, 30년간 장수했던 비결

전시장 곳곳에는 지난 30년간 데무 박춘무의 패션쇼 캣워크에 올랐던 낯익은 작품들을 한눈에 정리 구성해 눈길을 끌었다.
“원칙을 파괴하고 싶다”는 패션 철학으로 출발한 박춘무만의 고집은 ‘비대칭’과 ‘구조적인 커팅’ 형태를 비틀고 뒤집는 등 기존의 정형화된 틀을 깬 ‘아방가르드’와 자연에서 출발한 ‘미니멀리즘’ 그리고 세계화에 밑거름이 된 ‘오리엔탈리즘’까지 데무 고유의 오리지널리티는 독보적인 새로운 컬렉션을 지속적으로 탄생시키며 수년간의 진화를 거듭한 모습을 완성해왔다.
이 모든 컬렉션이 이곳에 한눈에 망라돼있었다.
특히 아티스트 콜라보레이션에 참가한 배우와 가수 등 10인(배종옥 한고은 이은미 김윤아 송경아 변정수 정혜인 한애리 최정화 캘리박 이해주)과 함께한 데무의 콜라보레이션 작품들이 길게 둘어서있었다.
이번 협업은 박춘무 디자이너와 데무 디자인실은 물론 10인 모두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협업이었다.
“과거에 보여준 컬렉션을 재해석해 현재의 브랜드 데무가 되기까지 철학을 담아내고자 노력한 이번 특별전에서 배우, 아티스트, 가수 모델 등 각계각층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이들과 함께 과거에 보여준 데무의 컬렉션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각자의 개성을 담아낸 리미티드 에디션 코트를 제작했는데, 이는 데무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매우 특별한 경험이자 기회였다”는 디자이너 박춘무는 스타들과 콜라보레이션 작품들에 대한 애착을 보였다.

또 한편의 공간에는 비디오아트처럼 구성된 디스플레이 공간에서 정구호 서울컬렉션 총감독을 비롯해 이번 협업의 주인공인 데무 콜라보레이션 10인의 박춘무 디자이너 회고 인터뷰가 연신 상영되고 있었다.
아티스트 콜라보레이션 인물중 한명인 W코리아 이해주 편집장은 “박춘무 디자이너는 뉴웨이브인서울 출신중 지금까지 활동하는 디자이너 중 유일한 분”이라며 “2000년대 들어 디자이너 부티크와 매스 브랜드 중간에 전혀 새로운 조닝을 만든 것이 해외 수입브랜드 공격에도 견딜수 있었던 비결이었다”고 전했다.
90년대 후반부터 국내로 물밀듯이 쏟아지는 외산 브랜드의 전면 공세에도 데무가 지금까지 흔들림없이 롱런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전문가들은 여러가지 의견을 전한다.
1988년 S/S 롯데호텔 패션쇼를 시작으로 1995년부터 서울컬렉션에 지속적으로 작품을 소개하며 발전을 거듭하는데 그치지 않고, 파리 프레타 포르테와 트라노이, 뉴욕 코트리와 언터메조 전시회, 후즈넥스트와 퓨어런던, 화이트 밀란 등 각종 해외 페어에 지속적으로 참가해 수출고를 쌓았던 것은 데무가 글로벌 패션마켓에서 당당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거듭날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현재 40개국 편집숍에서 데무는 디자이너 브랜드로 팔리고 있다.
이처럼 국내외 종횡무진 글로벌 디자이너로서 명망을 높여온 디자이너 박춘무는 30년간 데무의 변화를 시대에 흐름에 부응하면서 견뎌온 유일한 패션계 인물이자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데무 그 자체의 일관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지난 10월 16일부터 11월 14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둘레길 배움터에 마련된 데무 박춘무 30주년 아카이브 전시회.

 

패션외길 30년, 사실 훨씬 일찍부터 그녀는 그림을 그리는 디자이너였다.

박춘무씨의 어린시절은 미술학도에서 출발한다.
학창시절 그림에 워낙 재능이 탁월해 반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국민학교 시절 교실에서 내가 쓱쓱 그림을 그리면 아이들이 어느새 이것도 그려달라 저것도 그려달라며 줄을 서있기 일쑤였다. 당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너무도 즐겁고 행복해 어릴적 꿈은 커서 멋진 화가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꿈은 실현되지 않았다.
어릴적부터 아동복을 운영했던 아버지 사업이 기울면서 부산에서 순천으로 타향살이를 해야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사랑받고 자라면서도 미술학도에 대한 꿈은 여전했다. 야간 학교를 다니는 동안 틈틈이 그림을 그리고 공부도 했다.
전문 대학에서 공예과를 전공하고 졸업도 했지만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워진 환경 탓에 20대부터 남대문에서 옷장사를 시작했다.
당시 ‘바우하우스’라는 이름으로 박춘무 디자이너의 눈에 맞는 옷들은 남대문 최고의 히트 브랜드로 대박이 났다.
“당시 내가 디자인한 옷들은 항상 옆집보다 인기가 많았고 어느새 입소문을 타고 줄을 서서 옷을 사갔다. 시간이 갈수록 옷은 불티나게 팔렸고 돈은 셀수 없을 만큼 벌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옆집 매장 여사장님의 모습을 보고 있는 내가 내 자신의 미래도 저러겠구나 싶었는데  소름이 확 끼쳤다. 내가 원하는 길은 이게 아니다 싶어 그길로 바로 매장을 정리하고 국제복장학원에 입학해 정식으로 패션 디자이너의 기본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디자이너 박춘무는 그만큼 자신감이 넘쳤다고 한다.
몇년후 자신의 이름 끝글자 ‘무’를 딴 브랜드 ‘데무(DEMOO)'를 런칭했다.
디자인 작업을 통한 열망으로 팔릴만한 장사에 여념했던 남대문 상가를 접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은 내건 브랜드를 탄생시킨 첫 도전이었다.
“데무의 인기에 입소문을 타고 당시에 롯데백화점에서 매장 입점을 제안했고 이어 패션쇼까지 열었다. 첫 쇼를 한 후 데무스타일에 대한 엄청난 관심과 인기가 지금도 기억난다”.
자신을 믿었던 만큼 데무에 대한 확신도 컸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그는 국내 여성복 시장의 한 획을 긋는 브랜드 데무는 그렇게 탄생했다.

 

성공만 한것은 아니다.. 뼈 아픈 ‘무플러스’의 실패는 비싼 교훈

박춘무 디자이너가 지금도 가장 뼈저리게 아픈 기억은 데무의 동생을 보낸 기억이다.
데무의 세컨브랜드 ‘무플러스’는 데무보다 더 캐주얼하면서 데무의 모던하고 아방가르드한 감성을 담은 영 캐주얼이었다.
당시 런칭과 동시에 유통에서는 미래가 촉망되는 기대주였다.
런칭과 동시에 많은 자금을 쏟아부었던 만큼 재정적인 어려움이 커졌다.
“당시 무플러스 거래처에 밀린 자금이 쌓이면서 전화를 붙들고 대금 결재를 못해 울먹이고 있는 경리과 직원에게 우리 빚이 얼마냐고 물어봤다. 당장 200억이 밀렸다고 했다. 앞이 캄캄했다. 브랜드 중단을 결정해야했고 밀린 자금을 갚기 위해 긴축경영에 나섰다. 허리띠를 바짝 졸라맸고 회사의 모든 자금을 줄였으며, 그렇게 2년만에 모든 빚을 다 갚을 수 있었다.”
경영자의 빠른 의사결정은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당시 무플러스를 그대로 끌고 갔다면 지금의 데무도 힘들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때의 경험은 지금까지 데무를 장수시킬 수 있는 비싼 경험이었다.
지금의 데무의 영버전인 디데무 역시 그에게는 여전한 숙제다.
“데무를 좋아하지만 연령이 낫은 고객들에게 제안하는 디데무는 데무의 감성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는데, 동종 PC가 모두 힘든 지금 디데무 역시 시장에서 버티기가 여간하지 않다. 동일 조닝보다 퀄리티가 뛰어나고 상품력을 높게 유지하는 터라 고정층이 두터운 장점을 살려 리뉴얼을 준비중이다”

 

아들 최윤모 이사 경영 일선 참여이후 회사 더 젊고 참신해져 든든
앞으로의 30년이 더 기대되는 헤리티지 ‘데무’

데무 아카이브 전시에서 가장 인기를 보였던 공간은 사실 박춘무 디자이너가 직접 그린 그림들이 걸려있는 곳이었다.
패션계 인사들은 물론 일반인들까지 박춘무 디자이너의 그림실력에 탄복해 연일 감탄을 내뱉었다.
특히 전시 첫날부터 고가에 즉석 판매될 만큼 그녀의 유화 그림들은 ‘데무’스러움을 고스란히 담아 모던하고 세련됐다는 평을 받았다.
이번 전시를 위해 밤을 새워 주말에도 화실에서 살았다는 그녀는 “화가로서 행복했다”고 한다.
지난 30년간 패션 디자이너로 살았다면 이제는 아들이자 글로벌사업부 총괄사업부 최윤모 이사에게 많은 업무를 넘기고 화가 박춘무로서의 삶도 멋지게 살아보고 싶다며 웃는다.
자랑스러운 우리 브랜드 ‘데무’의 앞으로 30년은 그녀가 직접 그린 그림을 담은 아름다운 작품 의상들도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박춘무.
그의 멋진 행보는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조정희기자.

   
   
   
   
   

10인의 아티스트와 콜라보레이션으로 탄생한 코트 컬렉션(좌)과 데무의 30년 역사를 집대성한 컬렉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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