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국민의 삶을 전 생애에 책임을 지고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 국민 한 명도 차별받지 않는 나라가 돼야한다.” 구구절절 “함께 잘 살자”는 문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누구도 토를 달 사람은 없다. 하지만 민생이 갈수록 팍팍해진 엄혹한 시점에서 대통령의 설득이 좀처럼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외면당한 시장에서 전략 빈곤과 기량 부족이 드러난 소득주도 성장을 그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에 우려가 뒤따른다.

솔직히 경제가 벼랑 끝을 향해 적색경보가 발령된 것이 우리의 현주소다. 생산과 소비가 가파르게 뒷걸음치고 있다. 거의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호황으로 3분기 최대 실적을 올렸지만 내년 전망에 빨간불이 켜졌다고 한다. 경제지표의 바로미터인 증권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선진국 경제는 호황을 만끽하는 데 반해 우리만 엄동설한이다. 자본주의 꽃인 기업들은 경쟁력 악화와 반기업 정서에 내밀려 해외로 탈출하거나 간판 내리는 돌림병이 창궐하고 있다. 중소 영세기업마다 파산의 불길이 언제 어디서 발화할 것인지 숨을 죽이고 있다. 이 판국에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고 일갈한 북한 당국자의 싸가지 없는 망언에 더욱 비분강개 부아가 치민다.

 

미 노스페이스과 신한의 함께 멀리 가는 협력

본질 문제로 들어가 갈수록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심각성을 외면하고 혼자 가려는 풍토가 만연되는 세태 속에 아주 특별한 낭보가 들어왔다. 바로 세계 최대 아웃도어 브랜드인 미국 노스페이스(영원무역 노스페이스와는 무관)와 차별화 소재 업체 신한산업이 손을 잡았다. 미국 노스페이스에 3년간 500만미터 신한 산업 원단을 공급키로 계약한 것이다.

미국 노스페이스와 신한산업의 이같은 쾌거는 무심이상의 깊은 뜻을 안고 있다. 국내 섬유산업의 최후 보루인 허리 부문 직물산업이 걷잡을 수 없이 휘청거리는 위기상황에서 양사의 협력 정신은 많은 섬유패션기업에 적지 않은 좌표를 제시하고 있다.

미국 노스페이스에 3년간 차별화 원단을 대량 공급키로한 신한산업은 아웃도어용 원단기술에서 국제적으로 명성을 인정받고 있다. 화섬 교직물 간판 주자인 영텍스가 모기업인 신한은 독자적인 기술개발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해외 유명 패션 브랜드들이 신한의 기술력과 신용을 전폭 인정하고 있을 정도다.

필자가 미국 노스페이스와 신한산업의 대규모 원단공급 계약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은 국산 소재 사용 확대를 위해 나름대로 전력투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소재 산업은 고임금과 인력난의 구조적인 악재 속에 최저임금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이 몰고 온 파고가 너무 넓고 거칠어 생사기로에 서 있다. 이미 공동화된 지 오래인 봉제에 이어 허리 부문인 직물산업이 망가지면 국내 섬유산업은 전 분야가 거덜 날 수밖에 없다. 직물을 중심으로 염색과 사가공, 여기에 화섬, 면방이 이만큼 살아있어서 의류패션업계가 싼값에 적기공급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섬유 메카 대구경북 산지가 갈수록 경쟁력을 잃고 시난고난하는 사이 직기 대수가 많이 줄었다. 줄어든 직기마저 제대로 가동을 못 해 세워놓은 설비가 적지 않다. 한국 직물산업의 경쟁력을 받쳐주고 있는 비산염색공단도 극소수를 제외하고 겨우 주 5일 가동에도 물량이 없다. 일본 설비의 5분의 1에 불과한 사가공업체도 얼씬하면 간판 내리고 있다.

허리 부문의 직물산업이 더 이상 망가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나마 남은 섬유산업을 지키는 처방이다.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확대해야겠지만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국내 의류 패션업계가 가급적 국산 소재를 사용해야 한다.

하나의 예증으로 미흡하지만 대구 침장업계가 국산 원단 사용에 적극 노력하고 있는 점을 크게 평가할만하다. 대구시 주선으로 대구침장조합과 대구 직물조합이 작년 11월 MOU을 맺고 침장용 화섬직물 원단 500만 야드 공급계약을 맺었다.

계약한 지 1년이 다 된 이 시점에서 약속한 규모는 대부분 공급한 것 같다. 시어서커로 불리는 이불용 폴리에스테르원단은 그동안 거의 90% 이상 중국산으로 사용했다. 침장업계가 지역의 유휴설비를 가동하기 위해 대승적 결단을 내린 결과다. 계약기간은 끝났어도 같은 규모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대구 직물업계 가동률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물론 거래 과정에서 양측 모두 불만이 없는 것이 아니다. 여름용 침장원단 수요만 연간 3000만 야드 규모에 달하지만 겨우500만 야드만 대구에서 6개 업체가 참여해 생산 공급하고 있다.

생산업체는 “돈이 안 남는다”고 투덜 된다. 침장업체들은 국산원단이 가격이 비싸다고 불만이다. 이 때문에 중저가 원단은 중국에서 대부분 생지를 들여와 대구에서 염색해 사용하고 있다.

 

수천만 야드 롱패딩 원단 국산 대체를

그럼에도 영세한 침장업체들이 품질과 납기, 사후관리에서 유리한 국산 원단이 설사 10% 남짓 중국산보다 비싸도 고급용은 국산을 사용한다. 생산업체도 가동에 도움이 돼 박리다매로

공급하고 있다. 이것이 국내 섬유·패션 스트림이 취해야 할 상생 정신이다. 만약 대구가 전부 문 닫고 직물 공급이 불가능할 경우 중국·인도산의 폭리와 횡포는 불을 보듯 뻔하다.

때마침 가을초반부터 날씨가 도와줘서 롱패딩 열기가 내수패션 시장을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스포츠·아웃도어 브랜드들이 작으면 10만 피스에서 60만 피스 이상 대량 물량을 확보하고 판촉전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필자가 지난호 신문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애석하게도 수천만 야드 롱패딩용 원단 중에서 국산은 겨우 10~15% 수준이다. 알맹이는 중국·대만이

차지하고 국내 직물업계는 이삭만 줍는 꼴이다. 의류벤더 패션기업들이 이번 미국 노스페이스와 신한의 쾌거를 계기로 국산 원단 사용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반면 국내 원단 소재 업체들도 싸고 좋은 물건을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야 한다. 경쟁국보다 비싼 물건을 사줄 얼간이는 없다. 그런 요구는 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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