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업계의 진정한 지도자이신 양문현회장이시여! 창졸간에 이렇게 홀연히 세상을 버리시다니 이 무슨 황당한 이별입니까. 회자정리라고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우리인생의 섭리라지만 그토록 다정다감하고 당당하셨던 모습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게 됐다니 비감한 마음 그지없습니다.그동안 우리는 회장님의 身命을 걱정하기는 했으나 타고난 건강과 불굴의 의지로 회복의 날이 올 것으로 은연중 기대해왔는데 임종이라는 청천벽력의 비보를 접하고보니 너무도 황망스럽고 억장이 무너져 무어라고 슬픔과 허망한 마음을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돌이켜보면 양회장께서는 그 일생이 우리나라 섬유산업 성장사와 궤를 같이 했습니다.명실공히 우리나라 스웨터 수출의 창시자로서 업계 代父이신 양회장님은 섬유제품 업계의 산증인이십니다. 평양에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명문 평양고를 졸업하고 김책공과대학에서 3년간 섬유공학을 전공하시다 동족상잔의 6.25사변을 만나 1.4후퇴때 서울로 내려오셨습니다.타고난 강인한 정신과 학구열을 바탕으로 다시 명문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섬유공학과에 입학하여 4년만에 정상 졸업하신 모범생이셨습니다. 우리나라 섬유업계에서 명문 대학 7년 동안 섬유공학을 전공한 분은 양회장님이 최초이자 마지막일정도로 뛰어난 섬유공학 대가이자 탁월한 기업인이셨습니다.대학을 졸업한 후 당시 우리나라 스웨터 업계의 선두주자이자 부친 양재흥 회장이 동업하시던 동광통산에 입사하여 전무를 끝으로 독자경영을 하실 때까지 회장님의 활약은 국내외에서 정평이 나있었습니다. 70년대초 혜양섬유(주)를 직접 설립하여 세계적인 스웨터 전문 기업으로 키우신 회장님의 명성은 동업계는 물론 해외바이어 사이에서 화제의 대상이셨습니다.철저한 원칙주의자인 회장님은 독창적인 기술로 남이 모방할 수 없는 차별화 제품으로 그 성가를 세계에 과시하셨습니다. 여기에 양보다는 질 경영을 가장 먼저 선도해 한 번 제시한 가격은 절대 깎아주지 않는 뚝심 또한 우리업계의 귀감이셨습니다.저와는 스웨터 수출업계의 대표로 만났지만 공적·사적으로 저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셨고 업계 발전을 위해 올곧은 성품으로 일관하시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스웨터수출조합 당시부터 고락을 같이하며 항상 개인보다는 업계를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주신 훌륭한 업계지도자 이셨습니다. 양회장님의 일생은 우리나라 스웨터산업의 역사이자 상징이었습니다. 6.25 전란으로 조국 산하가 황폐해진 50년대 후반 이땅에 빈곤퇴치를 위해 섬유산업에 뛰어들어 반세기를 스웨터 인생으로 보내셨습니다.중언부언하지만 한국 제일의 섬유공학 大家답게 신기술 개발의 선구자였고, 기업에서 번 돈을 전부 재투자한 모범 기업인이셨습니다.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첨단 컴퓨터 횡편기를 대량 도입해 철원에 세계 제일의 스웨터 공장을 만드신 탁월한 기업인이셨습니다.글로벌시대에 대비해 중국 천진에 진출해 단순 제품은 중국에서, 고급품은 한국에서 만드는 국제 분업화를 앞장서 추진하신 혜안의 소유자였습니다. 회사 직원들을 가족처럼 아끼고 그들과 고락을 같이해온 숭상받는 기업인이셨습니다.양회장께서는 또한 "섬유는 결코 사양산업이 아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섬유산업은 영원하다"는 신념으로 외길 섬유인생을 살아오셨습니다. 그래서 다른 기업들처럼 타업종에 한눈 팔거나 부동산 투자하지 않고 오직 섬유에만 전념해온 진정한 섬유인이셨습니다.수출만이 국가 이익이며 애국이라는 철저한 경영이념으로 전량 수출하여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으셨습니다. 그것도 대량시장인 미국보다 까다롭고 어려운 일본시장에 치중해 한국산 스웨터의 성가를 깊이 인식시킨 쾌거였습니다.세계의 공장 중국의 저가 공세를 극복하고 안정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소재개발과 첨단자동화 설비가 선결과제라며 이를 솔선수범하면서 업계를 채근하는 훌륭한 지도자이셨습니다. 회장님의 이같은 소신과 열정은 업계와 정부를 감동시켜 관련 수출단체에서 선진국의 신제품을 입수해 분석하는 새로운 사업을 정례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사실 양문현 회장님은 3년전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암 선고를 받고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투병생활을 성공적으로 지속하신 의지의 한국인이셨습니다. 여느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장시간의 항암 치료에 파김치가 되고서도 끄떡없이 견뎌내신 철인이 아니었습니까.투병중에도 아침에 출근해 오후까지 회사에 나와 집무실을 지켰고, 불과 몇개월전까지도 집무실에 침대를 갖다 놓고 섬유 신소재 개발과 디자인 개발을 진두지휘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영업·관리 경영 전분야도 평소와 다름없이 결제를 하실 정도로 완쾌에 가까운 일상을 보내시어 저희는 천만 다행으로 안심했습니다. 평소 땀흘려 번 돈이기 때문에 근검절약이 몸에 밴 성품이었지만 자신에게는 한없이 인색하고 엄격한 대신 불우한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모습이셨습니다. 그늘진 곳을 위해 뭉칫돈을 쾌척하신 그 용기를 볼 때마다 탁월한 기업인이자 훌륭한 사회사업가라고 칭송이 자자했습니다.양문현 회장님이시어! 회장님은 아직도 이루지 못한 꿈이 많지 않습니까. 눈앞에 닥친 섬유교역자유화로 국내외 섬유수출환경이 악화되자 누구보다도 업계 걱정을 많이 하시지 않았습니까. 개인적으로도 장성한 자녀의 혼사도 다 끝내지 못하셨습니다. 그리고 1.4후퇴때 동행하지 못한 북에 계신 모친의 성묘도 못했고, 오매불망 북에서 고생하고 있는 동생들을 상면하지도 못하시지 않았습니까.참으로 애석하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러나 이미 유명을 달리하여 영원한 안식처로 떠나신 양회장님을 목놓아 불러보고 탄식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제 우리 후진들은 섬유업계의 큰 별을 떠나보내는 슬픔을 딛고 양회장님의 그 높은 뜻을 계승하여 21세기 초일류 섬유입국의 꿈을 기필코 달성하겠습니다.끝으로 양회장님께서는 자질이 출중하고 훌륭한 자제들이 유업을 더욱 번창하게 할것이오니 후사를 걱정 마시고 무거운 짐을 벗으시며 평안히 잠드소서. 양회장님의 명복을 다시한번 하늘 우러러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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