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개벽이 따로 없다. 세계의 눈과 귀가 집중된 경천동지할 낭보다. 70년 주적 관계로 총 뿌리를 겨누던 한반도에 평화로 가는 서곡이 울려 퍼지고 있다. 남북 정상의 9.19 평화선언에 많은 국민이 찬사와 갈채를 보내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이제부터 한반도에 전쟁위험은 사라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자신감 넘치는 평양 선언에 긴가민가했지만 거짓 아닌 팩트로 보여진다. 동시에 “조선 반도를 핵무기도, 핵 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하기로 확약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추가 선언이 평화를 향한 절묘한 베이스였다.
언제 어떻게 변심할지 모르지만 땡깡을 부리는 깡패집단으로부터 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소름 끼치는 공포가 사라진다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전쟁보다 무서운 재앙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야 정치권은 우리 내부에서 찬사와 폄하를 놓고 연일 싸움박질 하는 꼬락서니가 볼썽사납다. 잘한 것은 잘한 대로 못한 것은 못한 대로 평가하지 않고 무조건 반대를 위한 반대행태가 천박하고 상스럽다.

 

앞뒤 캄캄한 대구· 경기 북부 산지

사실 섬유패션업계를 비롯한 대다수 중소기업계가 이번 제3차 남북정상회담 결과에 유달리 긴장감을 갖고 결과를 예의주시한 것은 국내 기업 환경이 너무 엄혹하기 때문이다. 경기 불황과 최저임금인상 등의 모진 고통에 신음하며 시난고난 삶은 개구리 신세가 된 절박한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다. 바로 개성공단 재개 여부가 생명줄이 달려 있는 것처럼 위기 상황이 목에 찼기 때문이다. 남북 정상의 평양 선언이 개성공단 재개의 기폭제가 되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솔직히 국내 섬유산업이 지금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이 없다.
우리 섬유산업을 버티고 있는 허리 부문으로 마지막 보루인 화섬 직물과 니트 직물까지 조종(弔鐘)이 울리는 상황이다. 대구 산지부터 줄초상 위기의 곡소리가 요란하다. 5월 이후 감소되던 수출 오더가 7월 들어 급랭 현상을 보이면서 신규 오더가 절벽이다.
그나마 아웃도어용 화섬 직물 오더가 밑바닥을 유지했으나 다른 품목은 사실상 끊긴 상태에서 9월까지 꼼짝 않고 있다.
천수답 경영방식인 7· 8월 비수기가 지나면 기지개를 켤 것으로 기대했으나 대명절 추석이 지나도 옴짝달싹 않고 있다. 직물업체마다 직기를 세운 것 보다 돌리는 것이 덜 밑진다는 설익은 경영방식에 따라 어거지로 돌리지만 가동률은 50% 내외다. 이마저 오더가 있어서가 아니라 비축용이 대부분이다.
가뜩이나 가격 경쟁력에 밀려 표류하고 있는 시장 상황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터키와 이란 시장에서도 돌발변수까지 불거졌다. 터키가 겁 없이 미국과 맞서다 환율이 추락하고 달러 기근이 극에 달해 생필품 구매까지 급제동이 걸렸다. 한국뿐 아니라 가격경쟁력으로 터키 시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인도네시아도 이 시장에서 오더가 말라 조업을 단축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인구 1억에 가까운 중동의 대형 포멀블랙시장 이란까지 동시에 주저앉았다. 미국의 경제제재가 재연되면서 달러가 부족해 두바이를 통한 원단 구매가 사정없이 줄었다. 가격 경쟁력 열세로 인해 하루가 다르게 축소지향을 강요받고 있는 국내 화섬 직물업계가 예기치 않은 돌발변수에 더욱 휘청거리고 있다. 대구 산지가 지금 악에 받쳐 최저임금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에서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도 그만큼 기업하기가 팍팍하기 때문이다.
막다른 길목에 몰린 것은 니트 산지 경기 북부 양· 포· 동(양주· 포천· 동두천)도 매한가지다. 여름 비수기는 물론 시즌이 시작된 9월이 지나도 오더가 꿈쩍 않고 있다. 환편 직물 PD 직물은 물론 프린팅 오더가 급감해 체념이 길게 밴 한숨 소리가 땅 꺼지게 들리고 있다. 경기 북부 니트직물 인사들 중 10명이면 3~4명은 “업을 접겠다”고 하소연 겸 푸념을 내뱉고 있다.
경북 대구· 경기 북부 산지 모두 살겠다는 사람보다 “못 하겠다”는 사람이 훨씬 많은 것이 요즘 우리 섬유업계가 서 있는 현주소다.
섬유산업 허리 부문인 화섬 직물과 니트 직물이 붕괴되면 화섬 메이커와 염색 산업까지 동시에 붕괴되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만큼 업계 현장마다 피 말리는 신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한 가지 특기할 것은 지난 9월 5일부터 7일까지 코엑스에서 열린 PIS(프리뷰 인 서울) 전시회에 일본 후쿠이 화섬 직물 기업인들이 참관했다. 한국에서 열리는 소재 전시회에서 패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단체로 몰려왔다. 그리고 대구 산지를 방문해 분위기를 파악했다. 극심한 오더 가뭄에 시달리는 대구 산지를 둘러보고 하는 말이 충격적이었다.
그들의 표현을 빌면 한마디로 “후쿠이 산지는 풀가동 중”이라고 밝혔다. 실제 테이진의 이른바 델타 시리즈 복합가공사와 코튼 라이크 ATY는 실 부족 사태가 심각할 정도라고 활황국면을 설명했다. 다 죽어가던 일본의 후쿠이 산지가 이처럼 한국과 달리 활황국면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강의 뒷물이 앞 물을 밀어내듯 선점하던 화섬 직물 시장을 한국에 넘겨준 뒤 이렇게 기사회생하고 있다는 데 대해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그것은 한국의 대구 산지와 같은 후쿠이 산지가 90년대 들어 후발국 한국에 밀려 혹독한 구조 조정을 강요당했다. 수많은 기업들이 일본 품질과 유사한 한국산 화섬 직물에 가격 경쟁력을 잃어 줄도산했다.
이같이 혹독한 구조 조정을 거쳐 살아남는 기업들이 지금 빛을 보고 있다. 줄초상의 돌림병에도 살아남는 기업은 설비 투자를 강화하고 고급 차별화 직물로 승부한 결과다.

 

스위스 시계산업 닮은 日 후쿠이 산지

지난 호 칼럼에서 스위스 시계업계가 일본산 전자시계에 밀려 초토화 위기에서 다시 재도약한 것처럼 일본 화섬 직물업계도 같은 전략이었다. 한국산보다 비싸고 차별화된 화섬 직물로 일본 내수시장뿐 아니라 유럽 고급시장을 공략한 것이다. 도레이와 테이진 등 일본 화섬업계의 차별화 기능성 소재를 활용해 후쿠이 산지가 각고의 노력을 경주해 성공한 결과다. 소재에서 부터 제· 편직, 염색가공 전반에 걸친 융· 복합 협업을 구사한 결과다.
중언부언하지만 분초를 다투는 변화의 시대에 우리 섬유산업계가 천수답 경영체제를 하루빨리 탈피해야 한다. “어렵다” “죽겠다” 하면서 좋은 차 타고 일주일에 몇 차례씩 골프장에 들락거리는 안일한 경영방식으로는 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수 없다. 지금은 산업위기의 절정이 와 있다. 사즉생 각오로 전력투구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 살아남는 자가 승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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