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무당 사람 잡고 반풍수 집안 망친다.’는 옛말이 절절히 와 닿는다. 아직도 신성불가침으로 여기는 소득 주도 성장론자들의 옹고집에 부아가 치민다. 경제는 현실이다. 시장은 숫자로 말한다.
소득도 성장도 거꾸로 가고 사용자· 근로자 모두가 반대하는 이상론에 국가 경제가 거덜 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럼에도 “연말까지 기다리면 효과가 날 것”이라는 논리는 시장과 먼 얘기다. 아무리 내시경으로 들여다봐도 ‘절묘한 신의 한 수’는 기대할 수 없다. “경제문제에 있어 의지가 현실을 극복할 수 없다”고 말한 마르크스 주장을 백면서생들이 모를 리 없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의 성장 동력은 기술과 임금이다. 지구촌에 울타리가 사라진 글로벌 시대에 임금은 경쟁력의 기본이다. 임금이 오르면 소득이 늘고 소비로 연결돼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은 미국과 일본처럼 내수시장이 큰 나라 얘기다. 최저임금을 과도하게 올리면 해외시장을 잃게 되고 결국 일자리가 없어져 꿩도 매도 다 놓칠 수밖에 없다.
 
 

섬유패션 100명 이상 기업 몽땅 240개

본질 문제로 돌아가 우리가 속해 있는 섬유산업 현주소를 들여다보면 참담함을 떨칠 수 없다. 이미 공동화된 봉제와 사실상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면방산업의 뒤를 이어 섬유산업 전반이 줄초상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1인 이상 기업이 아직도 4만 8000개 달한다고 하지만 50인 이상 섬유패션기업은 고작 640개에 불과한 취약한 구조다. 여기에 100인 이상 기업체는 불과 240개에 지나지 않는 약체구조다.
그래도 지금껏 국내 섬유산업이 지탱해 온 원동력은 허리 부문인 직물산업이 건재했기 때문이다. 대구 화섬직물 산업과 경기 북부 니트 산업이란 양대 축을 바탕으로 화섬· 염색· 사가공· 연사 등 연관 사업이 공존한 것이다. 이같이 촘촘히 박혀있는 연관 산업에 실핏줄이 터지고 모세혈관까지 파열되기 시작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강한 순발력과 광범위한 시장 망을 바탕으로 고래 심줄보다 강한 생명력을 자랑했지만 장강의 앞 물이 뒷물에 밀리는 현실을 피할 수가 없다.
핑계 없는 주검 없고 안되면 조상 탓 하듯 최저임금에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 같지만 시난고난 버티던 환자에 카운터펀치를 먹인 것은 사실이다. 아무리 통사정을 해도 내국인 근로자가 오지 않아 2교대가 대부분인 섬유산업현장 임금이 삼성전자 대졸 초봉 수준이라서 어안이 벙벙하다. 작년보다 16.4%나 껑충 뛴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연장수당, 4대 보험, 퇴직금 포함하면 외국인 근로자 실질임금이 월 420만원이다.
구닥다리 한국공장 설비보다 훨씬 현대화돼 있고 20~30대 젊은 근로자가 대부분인 베트남의 월 41만원 임금과 도저히 경쟁이 불가능하다. 이같이 고임금 국가에서 생산성은 떨어지고 품질마저 차이가 없는 제품으로 중국· 베트남과 경쟁한다는 것은 네모난 삼각형 논리와 다를 바 없다. 중언부언하지만 이미 오래전에 시름시름 앓아오던 중병환자인 국내 섬유산업이 최저임금, 근로시간 단축이란 홍두깨를 맞고 걷잡을 수 없이 휘청거리고 있다.
결국 대구 산지와 경기 북부 산지 모두 떡쌀 담그는 숫자가 급증할 수밖에 없다. 7· 8월 비수기뿐 아니다. 연중 성수기는 사라지고 비수기만 거듭될 수밖에 없다. 대구 화섬 직물이 흉년이 되면 지역 염색· 사가공· 연사는 물론 화섬 산업으로 전이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경기 북부 니트 산업이 거덜 나면 이 역시 연관 산업이 공멸하는 것은 불문가지다.
그러나 이같이 갈수록 망망대해의 편주 신세가 된 직물산업과 연관 산업이 속절없이 앉아서 죽을 수는 없다. 벌써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자구노력을 위해 사투(死鬪)를 벌이고 있다. 대구 산지의 오너들부터 독하게 변신하고 있다. 양심 있는 기업인들은 갖고 있던 쌈짓돈을 다 털어 회사에 넣기 시작했다.
적자탈출을 위해 회장· 사장 월급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일부 기업인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봉급 30% 내외를 삭감하는 솔선수범을 보이고 있다. 기업인들이 사방에 인화 물질이 널려있는 시장 환경을 정면 돌파하고 있다. 눈물겹지만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다.
우리 섬유 산업의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는 직물산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 화섬 직물이건 니트 직물이건 어느 나라보다 강한 노우하우와 시장 망을 갖추고 있다. 그 대전제는 투자다. 생산성으로 승부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을 줄여 고임금 부담을 줄이고 자동화로 품질과 생산성으로 승부하는 것은 경영전략의 기본이다. 대량생산으로 경쟁하는 중후장대 시대가 지나고 경박단소가 시대적 추세다. 대량생산의 몸체 큰 중국보다 순발력 강한 한국의 직물산업이 훨씬 가볍게 대응할 수 있다. 틈새시장은 무궁무진하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제는 세계적인 첨단자동화설비가 아니면 살아남기 어렵다. 비록 인건비가 비싼 약점은 있지만 이것을 극복하는 길은 자동화 설비투자다. 지금 이 순간도 과감한 설비투자로 중국 베트남과 당당히 경쟁해 재미 보는 기업이 얼마든지 있다. 그것도 차별화가 아닌 레귤러사로 직수출시장에서 중국· 베트남을 이기는 사례다.

 

불황 때 투자해야 호황 때 빛 본다

지금 우리 섬유 기업인들의 선결과제는 눈 딱 감고 과감한 자동화 투자다. 가격대비 품질 좋으면 바이어가 몰려들고 지갑이 열리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사즉생(死卽生) 각오로 전력투구하면서 2년만 버티면 호황을 기대해도 된다. 중국이 주름잡던 세계교역환경도 많은 변수가 있고 개성공단도 열릴 수 있다.
살아생전 일본 경영계의 신(神)이었던 마쓰시타 전기의 창업주 마쓰시타 회장은 늘 입버릇처럼 강조했다. “호황은 좋다. 불황은 더욱 좋다.” 호황 때는 소홀하던 설비· 기술투자를 불황 때 집중하면 다음 호황 때 몇십 배 보상받기 때문이다. 시장이 냉각되고 기업 환경이 팍팍해진 엄혹한 시기에 투자만큼 확실한 경영전략은 없다. 태풍에 억수처럼 쏟아져도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 허리 부문 직물산업까지 거덜 나면 진짜 게도 구럭도 다 놓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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