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인두로 이마 지지는 가마솥더위다. 살인적인 폭염 특보에 대지가 벌겋게 달아올라 숨이 막힌다. 더욱 고통스럽게 경련을 일으킨 것은 가라앉은 경제지표에 먹고 사는 문제가 팍팍해지고 있다. 말이 국민 소득 3만 불 시대이지 아직 그럴 처지가 아닌데 복지의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뜨리고 있다.
우리 토양에 맞지 않는 서구식 소득 주도 성장정책이 몰고 온 후유증은 예상보다 크고 거칠다. 정책 수행 1년의 성적표는 성장도, 고용도 헛발질이었다. 자본주의 꽃은 기업임을 경제를 ‘갱제’라고 하는 사람 빼놓고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허구한 날 기업을 비틀고 쥐어짜는 정책이니 기업에 실핏줄이 터졌고 급기야 모세혈관까지 터지고 있다.

 

섬유산업 모세혈관이 터졌다

더욱 열패감을 떨칠 수 없는 것은 성장과 고용에 적색경보가 발령되는 시점에 여당 원내대표가 사실상 대한민국을 먹여 살린 삼성을 가리켜 협력업체 착취론을 주장했다. 마치 거위의 배를 가르자는 식으로 세계 초일류 기업을 약탈자로 매도한 것이다. 치열한 국제 경쟁 시대에 반도체 왕국을 일으킨 기업에 기를 살리기는커녕 경을 칠 소리를 하니 기업인들이 정나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말은 깃털처럼 가벼워 주워 담기 힘들다. (탈무드 교훈) 정치인의 세치 혀는 더욱 무겁고 신중해야 한다.
때마침 가뜩이나 가격 경쟁력이 없어 실신 상태인 기업에 목을 조르는 최저임금이 또 대폭 올랐다. 지난해 16.4%에 이어 내년에도 10.9% 올려 시간당 8350원으로 확정됐다. 이를 기준으로 기업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지급된 임금이 어느 정도인지 산출해보면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다. 반월 소재 중견 염색가공업체를 예증으로 할 때 올해 16.4% 올린 기본급과 연장수장, 4대 보험, 퇴직금 포함해 현재 1인당 연간 4392만원(2교대 주 60시간 기준)을 지급하고 있다. 내년 10.9% 추가 인상으로 시급 8350원이 되면 다시 4860만원으로 껑충 뛰게 된다. 전국 섬유제조업체 중 1인 이상이 4만 개에 달하고, 전체의 98%가 50인 미만 기업이란 점에서 2교대 시행이 대부분이다.
하도 억장이 무너져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면방기업과 연결해 임금수준을 확인해봤다. 봉제 업종보다 다소 높다는 면방공장의 베트남 인건비는 기본급, 연장수당을 모두 합쳐 올 상반기 기준 월평균 41만원으로 나타났다. 그것도 작년의 39만원보다 올라서 이 수준이라는 것이다. 인구 9000만 명에 20~30대 근로자가 대부분인 베트남 인건비에 비해 우리가 딱 10배가 높다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더구나 50~60대 노령 인력이 대부분인 우리나라 산업현장은 그나마 사람이 오지 않아 외국인 근로자 의존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에게도 똑같이 최저임금을 줘야 되고 연장수당과 퇴직금 모두 줘야 한다. 그야말로 외국인 근로자의 천국이다. 그럼에도 외국인 근로자 도입 쿼터를 늘리지 않아 쟁탈전이 벌어지고 불법 체류자를 고용할 수밖에 없어 사용자들이 전과자 처지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 섬유산업은 80% 가까이가 수출 주도형이다. 쪼그라들대로 줄어든 내수시장마저 중국산과 베트남산 등 외국산이 대거 장악하고 있다. 동· 남대문 시장에서 팔리는 의류 제품의 70~80%가 중국 등 외국산이고 동대문 원단 시장에서 팔리는 우븐 직물도 80%가 중국산이다. 니트 직물은 50% 수준이다.
섬유와 봉제 산업은 어느 산업보다 인건비 비중이 큰 업종이다. 작으면 20%, 많게는 30% 내외에 달한다. 올해 1인당 임금이 4392만원이라면 망하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이다. 설상가상 내년에는 4860만원으로 껑충 뛸 때 줄초상은 불을 보듯 뻔하다. 시장을 이길 수 없는 것이다.
명제는 분명히 설정돼 있다. 기업의 지불 능력은 벗어난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할 경우 대안은 네 가지다. 사람을 줄이고 기업은 축소하거나 문을 닫거나 해외로 나가든지, 그것도 안 되면 가격을 올리는 방법이다.
이중 가장 현명한(?) 대안은 해외 탈출이다. 지금도 잇따라 나가고 있어 벌써 섬유 산업에서 6000개 가까이 나갔다. 사실 갈만한 기업은 거의 갔다고 볼 수 있다. 가장 많이 가는 베트남은 이제 땅값이 과거와 천양지차다. 투자비가 만만치 않다. 시장을 확보하지 않고 무조건 생산기지만 옮긴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리스크를 경계해야 한다.
가격을 올리는 방안이 있지만 울타리가 사라진 글로벌 경쟁체제에서 한국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가격 경쟁력을 잃고 표류한 지 오래다. 그나마 요즘은 환율 덕에 근근이 버티지만 중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산에 밀려 장기판의 차 앞에 졸 신세가 된지 오래다. 제조원가에서 20~40%에 달하는 전기료로 베트남보다 30%가 비싸졌고 미국보다 갑절이나 비싸다.
경쟁력의 원천인 생산성을 위한 규모 경쟁도 우리는 중국 등에 비해 명함도 꺼내기 어렵다. 중국의 면방설비 규모는 자그마치 4000만추에 달한다. 중국 제일의 웨이차워 1개사 설비가 700만추에 달한다. 대만의 타이완 스피닝은 대만에 20만추, 베트남에 70만추를 가동하고 있고 곧 100만추로 늘릴 계획이다. 한국 면방업체 전체 규모는 올해 60만추 미만으로 줄어든다. 80년대 370만추에서 줄이고 또 줄여서 이 꼴이 됐다.

 

섬유사업장 1인당 임금 4860만원 시대

화섬설비도 비교가 안 된다. 우리나라 화섬 대기업 8개사를 전부 합쳐 폴리에스테르사 생산량이 연산 60만 톤 규모다. 중국의 행리나 생홍은 1개사 생산량이 연산 350만 톤 규모다. 규모뿐 아니라 설비도 우리보다 훨씬 현대화 돼 있다. 생산성은 물론 품질에서 상당부문 한국산을 압도하고 있다. 30년 40년 된 우리 화섬업계 노후설비로는 게임이 안 된다.
요즘 공황 상태에 접어든 경기 북부 니트 직물과 대구 경북 화섬교직물업계도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연사 공장들이 줄줄이 세우고 연사기 매물이 급증하고 있다. 대당 1500만원을 호가하던 중고 편직기 가격이 750만원으로 추락했는데도 원매자가 없다. 섬유 산업 현장이 한마디로 패닉상태에 빠졌다.
춥고 배고프거나 살기가 팍팍하면 민심은 득달같이 변한다. 최근 고공행진 하던 문 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61.7%로 떨어졌다고 하지만 종착 지점이 아니다.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 민심은 급속히 이반된다. 350만 자영업자의 탄식 못지않게 “기업 못 하겠다”고 절규하는 50만 중소상공인의 임계점을 넘어선 분노지수를 헤아려야 한다. 
반도체· 휴대폰 산업이 전부는 아니다. 아직도 근로자 30만 명이 종사하는 섬유산업이야말로 노송(老松)이 무덤을 지키듯 우리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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