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은 천운(天運)을 타고났다는 평을 받고 있다. 전임 대통령이 옹기 짐 지고 가다 자갈밭에 구르는 바람에 손 안 대고 코 푸는 천재일우의 행운을 거머쥐었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정치적으로 심한 추달을 받기도 했지만 국민의 고공행진 지지율로 정면돌파했다. 제일 야당이 궤멸 되다시피 한 6.13 지방선거가 총선이었다면 248대 42로 압승할 뻔했다.
먹고 사는 경제문제도 글로벌 호황 덕에 집권 이후 태평성세를 누렸다. 세계 경제가 유례없이 10년 호황을 유지하면서 우리 경제가 순항한 것이다.
그러나 호시절도 잠시, 경기 순환 시계에서 한국 경제가 본격 후퇴기 초입에 들어섰다. 정권의 성패를 좌우할 경제가 위기징후를 나타내면서 여기저기서 질그릇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국정 운영의 1순위인 일자리는 최악이고 소비와 투자는 꽁꽁 얼어붙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수출 전선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섬유는 안중에도 없겠지만 휴대폰· 디스플레이· 자동차 등 주력 업종이 흔들리고 있다. 난공불락으로 여겼던 반도체도 호황의 정점을 지나고 있어 한국 경제에 위험 신호가 다가오고 있다.

 

미국 의류 수입 33% 중국산 날개 접나

‘민심이 천심’임을 모를 리 없는 문재인 대통령이 달라지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지나친 노치(勞治)를 의식한 듯 문 대통령이 인도에서 재판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난 통 큰 결단을 했다. 기업 방문 일정을 대폭 늘리겠다는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촛불 주도세력들은 벌레 씹는 심정이겠지만 경제와 고용이 악화되는 급박한 상황에서 대통령의 변신은 무죄다. 내친김에 최저임금, 근로시간 단축들의 경제 악재를 과감히 바로 잡아 기업 현장의 피 말리는 고통을 해소했으면 싶다.
말을 바꿔 전면전을 치닫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을 지켜보면서 이미 공동화(空洞化)된 국내 의류 봉제 산업의 현주소가 너무 아쉽고 안타깝다. 2006년 1월 섬유 쿼터가 폐지되기 전까지 의류 수출대국인 우리나라가 장강의 뒷물에 앞 물이 밀려나듯 너무 빨리 포기한 지난날의 오류를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우선 세계에서 가장 큰 의류 시장인 미국은 연간 800억 달러 이상을 수입하고 있다. 정확히 지난 한 해(97년)에만 802억 2700만 달러를 각국에서 수입했다. 이중 중국산 의류가 270억 2900만 달러로 33%를 점유했다. 다음이 베트남으로 115억 5900만 달러(14.6%)로 2위를 점유했다. 이어 방글라데시 50억 6700만 달러, 인도네시아 45억 6500만 달러 순이다.
인도산 의류는 36억 8000만 달러, 멕시코 35억 8000만 달러, 온두라스 24억 7000만 달러, 캄보디아 21억 4900만 달러다. 스리랑카산 19억 5300만 달러, 엘살바도르 19억 1500만 달러, 니카라과 14억 8200만 달러 순이다. 과거 미국 의류 수입 10대 수입국 중 중간에 끼어있던 한국은 지난해 대미 의류 수출실적 8억 1900만 달러에 머물러 28위에 그치는 초라한 순위다. 케냐, 포르투갈보다 미국 수출이 작은 나라도 추락했다.
물론 한국산 의류 수출은 이토록 보잘 것 없지만 한국 벤더들이 베트남.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과테말라, 아이티 등 해외에서 생산해 미국에 보낸 의류제품은 훨씬 많다. 줄잡아 해외 생산으로 200억 달러 규모가 미국 시장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생산 수출은 초라하지만 한국 기업이 세계 전역으로 생산 수출한 규모는 이처럼 중후장대한 것이다.
때마침 미· 중 간 무역 전쟁이 전면적으로 전선이 확대되면서 중국산 의류도 미국의 고율 보복 관세 대상에 포함됐다. 미국에서 팔리는 의류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산 의류가 고율관세를 부과받으면 중국산의 대미 수출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1차 500억 달러 25% 보복관세 부과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을 때부터 미국의 유통업체들은 소싱처를 발 빠르게 바꾸기 시작했다. 하물며 2000억 달러 대상 품목에 10% 관세 폭탄이 추가되면 중국산 의류의 대미수출은 사실상 조종(弔鐘)을 울린 것이다.
이렇게 될 때 표정 관리한 곳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등 대미 10대 의류수출국이다. 한국은 황금시장이 널려있는데도 보고도 못 먹는 떡이다. 반면 대미 의류 수출 전진기지인 오프쇼어용 원단공급은 다소 원활할 것으로 보여진다. 중국산 의류의 대미 수출이 약화되면 의류수출국의 어부지리에 원자재 수요가 증가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애석하고 안타까운 것은 국내 소재 산업마저 급속히 꺼져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구 직물 산지와 경기 북부 니트 산지 모두 갈수록 오더가 고갈돼 가동률이 말이 아니다. 직물 오더가 급감하자 지역 섬유 경기 지표의 바로미터인 대구 염색 산업 단지 가동률이 최악이다. 주 5일 가동이 어려워 주 4일 가동하는 염색 공장이 늘어나고 있을 정도다. 경기 북부 니트 산지도 예외가 아니다. 주 6일 가동기업은 가뭄에 콩 나기이고 주 5일 가동 물량도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결국 백기 들고 줄줄이 문 닫을 위기 상황에 몰려있다. 공동화된 봉제 산업 기반에 이어 직물· 염색 등 허리 부문까지 급속히 쇠락하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세계 어느 나라보다 순발력이 좋다는 우리 섬유산업이 몰락의 징검다리를 건넌 것은 고임금과 인력난 때문이다. 일본이 한국에 섬유산업을 넘겼고 우리 역시 중국과 베트남 등지로 넘길 수밖에 없는 이유가 고임금· 인력난이다. 그러나 세상은 분초를 다투며 변곡점의 꼭대기에 이르면서 생산 시스템도 급속히 변하고 있다. 로봇이 사람을 대신하는 시대가 빠르게 다가왔고 제직· 염색도 자동화· 성력화 시스템이 급진전되고 있다.

 

불황 없는 경기 없고 투자 없는 호황 없다

15억 인구의 중국도 로봇을 활용해 봉제 공정의 절반을 이미 로봇이 커버하는 곳이 급증하고 있다. 제· 편직· 염색 시스템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생산 시스템을 자동화하면 국내에서도 웬만큼 경쟁력이 가능하다. 싫건 좋건 이제 중국산 섬유의 대미 수출은 암초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미국 시장 소비량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산 의류의 공백을 일부라도 우리가 차지하는 전략이 시급하다. 더구나 오더가 늘어나고 있는 하이패션의 품질과 단납기 공급 능력은 한국이 세계 제일이다. 제· 편직· 염색도 사람을 줄이는 자동화· 성력화 투자를 강화하면 길은 얼마든지 있다.
지금도 자동화 설비로 베트남, 중국과 맞짱 떠 이기고 있는 사가공업체가 있다. 첨단설비 투자에 올인해 차별화로 연 매출 2000억원에 500억 이익을 내는 회사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불황 극복과 도전의 키워드는 투자다.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개성공단만 기다리지 말고 더 이상 붕괴되지 않도록 설비· 기술투자에 매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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