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은 천심이었다. 변화를 외면하는 군내 나는 보수 야당이 국민들로부터 철퇴를 맞았다. 나비의 날갯짓은 박근혜 탄핵과 이명박 구속에서 이미 시작됐다. 그럼에도 대선 패배 이후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분열과 내홍의 악순환이다.
“평화의 비용이 아무리 비싸도 전쟁보다는 싸다”는 기본 원칙마저 외면했다. 안보를 포기하고 남북화해를 하자는 것이 아닌데도 ‘위장 평화’· ‘김정은 대통령’ 같은 추악하고 섬뜩한 발언으로 왜곡비하했다. 국민을 섬기기보다 졸로 보고 어거지 선동을 부추긴 것이다.
결국 6.13 지방선거의 심판을 받아 스스로 궤멸의 길로 추락했다. 변화를 거부하거나 둔감하면 한순간에 무너진다는 사실을 웅변으로 말해줬다. 보수 야당이 다시 살기 위해 자기 털과 발톱을 스스로 뽑고 거듭나는 늙은 솔개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기둥과 대들보가 무너지고 지반마저 붕괴된 건물을 문패와 서까래 몇 개 바꿔서 땜질할 상황은 아니다. 완전히 부수고 다시 지어야 한다. 건전한 진보와 건강한 보수의 양 날개가 제대로 작동해야 민주주의가 정상 항해할 수 있다.

 

비핵화 이후 생산기지 각축장 될 듯

반면 정부· 여당도 승리에 도취돼 오만과 독선에 빠지면 민심은 조변석개(朝變夕改)임을 알아야 한다. 때마침 문재인 대통령이 ‘자만하지 않고 국민 눈높이에 맞추겠다’는 국정 운영 방침은 국민 가슴에 와 닿는다. 차제에 선거 과정에서 야당의 집중포화를 받은 경제 정책과 기울어진 노동 정책 등을 재검토하길 기대한다. 시장은 숫자로 말한다.
본질 문제로 돌아가 분초를 다투는 변화 속에 세상은 변곡점의 꼭대기에 와 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고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가 되는 냉엄한 국제 조류 속에 한반도가 그 중심에 서 있다. 경천동지할 천지개벽처럼 70년 주적 관계인 남북이 며칠 사이에 그것도 두 차례나 포옹하며 정상회담을 가졌다. 세계 최강국 부자 나라 트럼프 대통령이 지구촌의 변방이며 아시아의 히틀러로 불리는 거지 나라 지도자 김정은을 맞상대해줬다.
예상은커녕 상상도 할 수 없던 공상이자 미몽이 현실이 됐다. 2년 반으로 예상되는 완전한 북한 비핵화를 전제로 대북 경제제재가 풀릴 날도 멀지 않았음을 예고하고 있다. 김정은 집단이 뒤늦게 ‘핵이 밥 먹여준 것’이 아니라는 엄연한 사실을 깨달은 것 같다. 핵이 경제지원을 받기 위한 수단은 될 수 있어도 핵 자체가 부황 든 인민에게 이팝과 고깃국을 먹일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아차린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아쉬운 점도 있지만 비교적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후 득달같이 제기되는 것이 개성공단 재개 문제다. 성급한 일부 기업인들은 연내 재가동에 무게를 두고 있고 일부 패션 기업인들은 6.12 북미 정상회담이 끝나기 무섭게 향후 오더 수행 1번 타깃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개성공단이 재개되면 자기 회사 제품 생산을 가장 먼저 수행해달라는 취지다. 개성공단에 대해 목마르게 기대하는 사람이 개성공단 기업인 못지않게 거래 기업들도 많다는 증거다.
남북 정상회담 합의 정신에 따라 개성공단관리위원회가 들어있던 건물에 남북 연락 사무소가 빠르면 이달 또는 다음 달 중 정식 개설될 것으로 보여진다. 개성공단 시범단지 내에 들어있는 개성공단관리위원회 바로 그 건물에 남북 연락 사무소가 개설된다는 것은 개성공단 재가동과 직결될 수 있는 개연성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개성공단을 재개하는 것이 남북당국 의지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금강산 관광 중단은 우리 정부의 5.24조치로 인한 것이어서 우리 정부가 해제하면 가능할 수도 있다. 반면 개성공단은 미국 국내법과 유엔 제재가 묶여있어 이것이 해제되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다. 재개된다고 해도 기껏 내수용에 국한될 뿐이다.
시장이 없으면 개성공단도 무용지물이다. 적어도 북한 비핵화가 미국과 국제기구의 검증 아래 완전히 해결되는 2년 반 동안은 긴가민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변수는 있다. 북한이 경제 제재를 해제하기 위해 비핵화 약속을 성실히 앞당겨 수행하면 훨씬 빠른 기간에 미국과 유엔제재가 풀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개성공단 재가동은 물론 별도의 섬유 전용 공단 조성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있다. 우선 고임금과 인력난에 이어 가파른 최저임금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어디든 나갈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을 맞고 있다. 제조업을 유지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사람과 적정 임금은 물론 전력 요금의 3대 요소인데도 이 중 하나도 국내에서 유리한 것이 없다.
유엔 제재가 풀리면 어느 나라에 진출한 것보다 개성공단이 유리한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대전제는 개성공단 제품의 역외가공 인정이다. 자본과 원부자재가 남쪽 것이면 당연히 ‘메이드 인 코리아’로 인정을 받도록 해야 한다. 이것만 해결되면 개성공단은 지구촌에서 가장 유리한 경쟁력을 자신할 수 있다. 이 문제는 북미 비핵화 협상 대가로 당연히 미국을 설득해 관철해야 한다. 이것이 해결 안 되면 개성공단은 공장만 있되 시장이 없는 반신불수 신세를 모면할 수 없다.
우리 정부 주도 아래 개성공단을 서둘러야 할 이유가 또 있다. 북한의 양질의 노동력과 저임금을 이용하여 생산기지로 활용하겠다는 각국의 눈독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은 북한의 노동력과 자국보다 싸 임금을 활용해 생산 기지화 전략을 세우고 무려 80조에 달한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 단둥 인근은 물론 신의주와 평양 일대에 대규모 섬유 봉제공장 등의 건립을 추진한다는 소문이다.

 

성패는 ‘역외가공 인정’에 달려 있다

일본도 아베 총리의 평양 방문설과 함께 비핵화 이후 북한에 대규모 투자를 준비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섬유뿐 아니라 타 업종도 집중 투자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다른 국가들도 비핵화 이후 북한 진출이 봇물을 이룰 가능성이 크다.
필연적으로 인력이 달리고 임금이 오르는 것은 불문가지다. 2016년 2월 10일 이전의 개성공단 임금수준과 다시 재개됐을 때의 임금수준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폐쇄 전에도 야간 연장근무와 초코파이, 라면, 연장근무 등을 합쳐 만만찮은 부담을 호소한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고민이 쌓일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선점 전략과 함께 임금 억제 방안에 대한 협상력을 강화해줄 것을 당부한다.
이같은 모든 문제만 제대로 해결되고 가동되면 개성공단이야말로 섬유 패션산업의 새로운 르네상스 시대를 보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북한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 기업이 살기 위해서 개성공단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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