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시계가 숨 가쁘게 돌아간다. 4.27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에 이어 6.12 북미 정상회담 결과가 한반도의 경천동지를 예고하고 있다. 남북은 물론 전 세계의 눈과 귀가 한반도에 집중하는 이 중차대한 시점에 유난히 우리 정치권은 오불관언 태도다. 두 달째 국회가 공전하며 1만 건에 가까운 법안처리를 내팽개치고 있다.

민생이 파탄 나건 말건 진영논리에 매몰돼 여야가 으르렁거린다. 저마다 말로는 국민을 위한다지만 상대의 치적은 꼴을 못 본다. 잘한 것은 “잘한다”고 칭찬하고 못한 건 “못한다”고 질타하는 것이 사람 사는 사회의 보편적 가치다. 문재인 정부의 1년 동안 공과는 있지만 몸서리치는 핵과 전쟁 위협은 거의 사라졌다. 얼씬하면 깡패집단 북한이 “서울 불바다” 하며 땡강을 부려 국민들의 가슴은 사색이 됐다. 국민의 억장이 무너졌던 전쟁공포가 사라지게 한 남북문제는 역대 정권에서 가장 잘한 치적임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해외 탈출 속도 더 빨라졌다.

반면 문 정부의 경제정책은 낙제점이란 평가가 대세다. 속도를 위반한 최저임금인상과 조급한 근로시간 단축은 가뜩이나 어려운 산업현장을 아비규환으로 몰고 갔다. 경제학 이론에서도 생소한 소득주도 성장론은 결국 소득도 없고 성장도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먹고 사는 경제가 잘못되면 콘크리트 지지율도 한순간에 사라진다. 여야 정치권이 오만하거나 발목 잡지 말고 잘한 것은 치켜 주고 못한 것은 회초리를 들어 타협과 견제의 저울추가 돼야한다.

본질문제로 돌아가 타 산업도 대동소이하지만 우리가 속해있는 섬유패션산업의 현주소가 단순 침체를 넘어 하루가 다르게 참담한 상황으로 추락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경쟁력이 떨어져 시난고난하던 산업현장에 최저임금인상으로 불거진 후폭풍이 예상보다 크고 거칠다. ‘핑계 없는 죽음 없다’고 울고 싶을 때 뺨 맞은 요소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지만 기업인들마다 좌절과 무력감이 팽배해 있다.

지구촌에 울타리가 사라진 글로벌 시대에 모든 산업이 싸고 좋아야 살아남은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후발국과 비슷한 품질에 가격이 비싼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을 선호할 이유가 없다. 생산현장에 사람이 오지 않아 최저임금을 적용하며 외국인 근로자에 의존하는 제조업 현장을 돈보다 더 급한 것이 사람이었다.

반면 최저임금인상 5개월을 맞으면서 산업현장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사람 줄이는 데 혈안이 돼 있다. 현장을 모르고 탁상공론을 일삼는 정치권이나 정부의 백년서생들이 기업 능력은 아랑곳않고 이상론에 치우친 경도된 정책의 산물이다. 중언부언이지만 최저임금 인상률 16.4%는 상승률도 크지만 이것은 단순 기본급 기준이다. 4대 보험, 수당, 퇴직금 등을 합치면 실제 26% 이상 인상률이다.

단순히 최저임금 적용자만 해당된 것이 아니라 차상급부터 간부급 모두에게 연쇄반응이 불가피하다.
최저임금 인상 전에도 국내 산업이 경쟁력을 잃고 표류하면서 능력이 되는대로 해외 탈출이 러시를 이뤘다. 삼성전자 같은 세계 초일류기업도 베트남으로 대거 이전하는 상황에서 섬유산업에서 6000여개 가까운 기업이 나가는 것은 불가피했다.

그럼에도 국내에 남은 섬유 기업들은 이를 악물고 버티어왔다. 결국 최저임금 인상 반년이 채 안돼 나타난 실상은 남은 기업들의 탈출이 가속화된 것이다. 대형 면방업체들이 이미 진출한 베트남으로 국내 설비를 대거 내보내고 그것도 모자라 중남미 진출까지 모색하고 있다. 기라성 같은 간판급 편직업체들이 짐을 싸고 있고, 단순 제직으로는 실익이 없다는 대구 직물업계까지 인도네시아 등지로 나가고 있다.

사실 몆 년 전부터 국내 섬유산업은 고임금보다 더 무서운 인력난을 못 이겨 5~6년 내에 조종을 울릴 것으로 예고돼왔다. 그동안 50대 60대 근로자에 의존하던 생산현장에 후속 인력이 오지 않아 “간판 내리고 문 닫는 날이 멀지않았다”고 체념해왔다. 이 때문에 대구 산지 섬유기업인들이 신규투자를 외면하고 임대공장으로 돌리고 있다. 그나마 차별화 전략으로 설비투자를 벌이는 기업만 건제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최저임금인상이 기름을 끼어 얹어 대구 산지와 경기 수도권의 섬유단지에 거미줄과 곰팡이가 가득 차고 저잣거리 마실 나온 사람까지 “못 하겠다”는 탄식이 나오고 있다.

생산공장 가동으로 인한 무거운 부담이 없는 국내 패션산업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암울하기는 매한가지다. 패션기업이 브랜드를 키우고 신규 매장을 확대하고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연간 100억원 이상의 이익을 내야 한다. 하지만 수백 개 패션기업 중 100억 이상 이익을 내는 회사는 열 손가락 미만이다. 패션기업 이익률이 갈수록 줄어들어 힘들고 어렵다는 푸념이 대세다. 전체 매출이익의 60%를 차지하는 백화점 이익률이 반 토막 난 것이 이를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거두절미하고 기업의 생명력은 기업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당연한 원리이다. 각자도생은 필연적인 논리이다.

그럼에도 지금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것은 위기에 몰린 산업을 중흥시키기 위한 정부의 산업정책이다. 효율적인 정책은 소멸의 속도를 감속시킬 뿐 아니라 재도약으로 반전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섬유산업이 재도약시키기 위한 획기적인 정책이 안 보인다. 죽건 살건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죽어가는 산업을 벌떡 일으킬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없다. 그래도 적극적이고 입체적인 다양한 육성정책이 나온다면 업계가 희망을 갖고 투자할 의욕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의 섬유패션산업정책은 목표도 방향도 안보인다. 십수 년 동안 들어온 레코드판을 다시 돌리는 수준에 불과하다.

그 많은 지도자 다 어디 갔나

정부 탓만 할 일이 아니다. 과거의 대구 산지 섬유업계 지도자들은 이러지 않았다. 산업정책이 잘못되지도 않았지만 달리는 말에 채직하듯 더 잘하라고 채근했다. 심지어 과거 상공부직제개편으로 섬유 관련 주무과가 축소되면 대구 지도자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항의하고 개선시켰다. 김대중 정부 때 6500억원의 국비와 지방비를 투자한 밀라노 프로젝트도 그런 연장 선상에서 이루어졌다.

정권의 본 산지였지만 업계가 나서 스스로 쟁취했었다. 그런 대구가 지금은 말이 없다. 서울도 매한가지다. 섬유산업을 방치하고 있는 정부를 향해 쓴 소리하는 사람이 없다. 울지 않으면 젖줄 리 없다. 외면하고 방치한다고 뒤에서 원망 말고 설득하고 채근해서 제대로 된 육성책을 얻어내야 한다. 절체절명의 위중한 섬유산업현장에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 다물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대로 자포자기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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