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不關焉>

중국인의 싸움 구경을 하다 자칫 해가 저무는 경우가 많다. 고성과 삿대질을 퍼부으며 금방 주먹이 올라갈 듯 조마조마하지만 그 상태로 계속 시간을 끌기 때문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도 일촉즉발의 긴장감을 보이지만 여전히 삿대질과 고성으로 일관할 가능성이 크다. 선제공격을 한 미국도, 반격에 나선 중국도 손익계산이 복잡한 상황이다.
어찌 됐건 고래 싸움에 등 터진 격이다. 용호상박 미· 중 G2 공룡이 벌인 무역 전쟁이 발발하면 세계 경제에 빨간 불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에 대한 사드 보복 때 알아봤지만 안하무인 격인 중국이 많이 컸다. 미국과 맞짱 뜨는 것이 호랑이 앞에서 웃통 벗는 격인 줄 알았더니 트럼프와 시진핑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맞서고 있다.

 

섬유 수출 불황보다 무서운 환율 쇼크

 

기둥을 치면 대들보가 울리듯 미국이 중국을 때리자 득달같이 한국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이 500억 달러(약 54조 원) 규모의 중국 수입품에 25%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 메가톤급 유탄이 한국경제를 강타하기 때문이다. 미국 수출의 중간재를 중국에 수출하고 있는 한국산 수출 손실이 자그마치 3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같이 천문학적인 피해가 현실화되면 가뜩이나 시장 생태계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한국경제에 치명상을 예고하고 있다.
목장지폐(木長之弊)라고 큰 나무 밑에 작은 나무가 깔려주는 것도 유분수지 우리 처지로서는 재수 옴 붙은 격이다. 북한 핵을 해결하기 위해 남· 북 정상이 건곤일척의 승부수를 걸고 있는 중차 대한 시점에 도움을 주기보다 고춧가루 뿌리는 꼴이다.
더욱 우리 경제에 고통스런 경련을 예고한 것은 미국의 환율 압박이다. 지난번 한· 미 통상협상에서 미국이 “철강, 한·미 FTA, 환율을 패키지로 협상했다”고 주장하면서 한국을 환율 조작극으로 몰고 가는 양상이다. 물론 우리 정부가 펄쩍 뛰며 환율 주권을 강조하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은 것 같다. 환율이 달러당 1000원 수준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불길한 예단에 수출기업들이 사시나무 떨 듯 하고 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환율이 떨어지면 가뜩이나 흔들리는 우리 경제에 직격탄을 맞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지난해 초 원달러당 1160원을 웃돌던 환율이 1년 사이 달러당 100원이나 떨어지면서 수출 기업들의 채산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1000만 달러 수출 기업은 작년 초보다 10억 원이 날아갔고 1억 달러 수출기업은 100억 원이 증발했다.
물론 해외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기업은 달러로 원자재를 사고 현지 환율로 임금을 지급해 정도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다. 반면 국내에서 생산 공장을 갖고 수출하는 섬유 기업들은 채산이 급속히 악화되는 날벼락을 맞고 있다.
본지가 12월 말 결산 섬유패션기업 상장사의 지난해 경영실적을 분석한 결과 극소수 기업을 제외한 수출기업은 영업이익이 반 토막 났다. 세계적인 초일류 의류생산 수출기업인 천하의 영원무역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1% 미만 성장에 그쳤다. 반면 빅3 의류벤더인 한세실업은 매출은 전년보다 11% 증가한 반면 영업이익은 31%나 급감했다. 탄탄한 의류벤더인 윌비스도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30%나 급감하는 등 잘 나가던 의류벤더들의 채산이 훨씬 나빠졌다.
승승장구하던 의류벤더뿐 아니다. 면방기업들이 하나같이 영업이익이 감소한 이유 역시 환율 영향이 컸다. 그만큼 환율이 수출기업을 살리고 죽이는 결정적인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뒤로 하고 대졸자 91%가 취업에 성공하면서 기업마다 구인난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것도 아베의 환율정책에 힘입은 호황 덕분이다. 불공정한 통상압력에 환율 조작국 덤터기를 씌우는 미국에도 할 말을 제대로 해야 한다. ‘환율 주권’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중언부언 환율의 심각성을 강조한 것은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 섬유산업의 엄혹한 현주소가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업종이 대동소이하지만 고임금과 인력난에 최저임금인상 등 겹치는 악재 속에 환율마저 추락해 살길이 막막하다. 산업현장에선 “죽겠다”는 신음 소리가 요란하지만 뭐하나 시원한 해결책이 없다. 자포자기가 만연해 산업의 소멸 속도만 가파르게 빨라지고 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언제라고 섬유산업 경영 환경이 좋은 때가 없었다. 우리 섬유 역사가 걸어온 지난날의 궤적을 봐도 좋을 때보다 힘들고 어려울 때가 훨씬 많았다. 그럼에도 위기를 기회로 삼아 사즉생(死卽生) 각오로 극복한 내공이 쌓였다. 비록 지금의 위기가 과거보다 강도는 강해졌지만 고래 심줄보다 강한 우리 섬유산업이 극복할 수 있는 저력은 있다고 본다.
기업은 더욱 비장한 각오로 각자도생의 냉혹한 시장 환경에서 살아남는 길을 찾아 매진해야 한다. 반면에 많은 섬유 패션단체와 연구소가 유명무실의 안주에서 과감히 털고 일어나 제구실을 해야 한다. 산업을 관장하는 주무 부처도 지휘봉을 잡은 백년서생들이 산업의 특성과 이면을 읽어내는 훈련을 쌓아야 한다. 죽어가는 산업에 제대로 처방을 내려면 고도의 분석과 판단이 필요하다.
세계 섬유 시장은 공급과잉의 포화상태에 빠진 지 오래다. 자본과 설비에서 우리보다 훨씬 과감하고 대규모로 투자한 중국과 베트남 등 후발국을 극복하기 위한 처방은 차별화밖에 없다. 경쟁국이 따라올 수 없는 고가화 전략이 아니면 싸고 좋은 제품만이 살아남는 것이 시장 원리다. 이를 위해 소재부터 혁명이 발등의 불이다.
기존 나일론· 폴리에스테르· 아크릴 등 화섬 3대 섬유와 전혀 다른 소재를 우리가 개발해야 한다. 기존 소재와 새로운 신 섬유 소재의 융합기술이 개발돼야한다.
아직 공개할 단계는 아니지만 다행스럽게 국내 모 증진 섬유 기업이 일본의 간판 화섬 메이커와 공동으로 혁신 신소재 개발을 거의 성공시켜 상품화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기대를 모으고 있다. 레이온과 정면 승부하는 신소재가 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단체· 연구소· 정부 강 건너 불구경 하나

 

답답하고 안타까운 것은 섬유산업이 쇠락의 낭떠러지로 추락 직전인데도 기업의 각자도생 몸부림을 강 건너 불구경한 관련 단체나 연구소· 주무 부처의 안일하고 한심한 태도다. 산업 현장이 토사곽란에 생사기로를 헤메는데도 오불관언(吾不關焉)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관련 단체나 연구소들이 위기의 섬유산업을 살리기 위해 국내외 사례를 조사하고 귀동냥· 눈동냥을 통해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보다 먼저 혹독한 사련을 극복한 일본의 사례나 이태리의 사례를 깊이 연구 분석하여 벤치마킹토록 해야 한다.
어차피 우리 독자 능력으로 어려우면 다른 나라 사례를 보고 융합 접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을 처음 개발한 것이 아니라 응용기술을 접목해 1등 기업이 된 것이다. 더 이상 머무르고 망설일 여유가 없다. 기업은 기업대로 단체와 정부가 중증의 섬유산업을 살리기 위해 팔소매뿐 아니라 온 몸을 던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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