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위협으로 화약고 처지가 된 한반도에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대장정이 시작됐다. 긴장과 공포의 한반도에 진정 봄이 올 것인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된다. 25일 후면 남북 정상이 분단 이후 처음 남한 땅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전쟁과 평화를 놓고 담판을 짓게 된다. 5월엔 무대포 기질의 북· 미 정상이 북한 비핵화를 놓고 이판사판 사생결단이 예고돼있다.
지금 한반도는 새로운 6국지(六國誌)를 쓰고 있다. 남북 당사자는 물론 미· 중· 일· 러까지 가세해 주도권 다툼이 시작됐다. 김정은은 중국에 달려가 “형님 나 좀 살려 주십시오” 애걸했고, 시진핑 왈 “동생 걱정 마라. 형이 지켜주겠다”고 든든한 후견인을 자처했다.
유리그릇처럼 위험천만한 북한 비핵화를 위해 운전석에 앉은 문재인 대통령의 절묘한 지혜와 수완이 주목된다. 우리야 어르고 달래겠지만 독불장군 럭비볼 트럼프와 동양의 히틀러 김정은이 맞짱 뜰 경우 판을 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 대만은 날으고 한국은 기어간다.

본질문제로 돌아가 중소기업 대부분이 삶은 개구리 신세지만 우리가 속한 섬유패션 산업이 갈수록 백척간두 벼랑길에 몰리고 있다. 시장은 불황의 깊은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경쟁력을 잃은 기업은 활로 모색을 위한 투자가 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한쪽 스트림이 고전하면 다른 스트림이 벌충해줬지만 지금은 총체적으로 공멸 위기에 직면해있다. 설비투자· 기술투자· 시장개척에 올인해도 살길이 막막한데 국내에선 이 모든 분야가 자포자기 잠자고 있는 상황이다.
중언부언하지만 우리 섬유산업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복기(復碁)해 볼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실패의 씨앗은 성공의 장점에서 뿌려진다는 상식마저 외면한 채 잘 나갈 때 국내 산업을 준비하지 못한 원죄다. 대표적인 실수가 대기업이 운영하는 업 스트림 분야에서 비롯됐다. 장강의 뒷물이 앞 물을 밀어내듯 고임금과 인력난이 몰고 온 봉제 산업의 공동화(空洞化)를 빤히 지켜보면서 훗날의 재앙을 예견하지 못했다. 배급 주던 시절의 향수에 젖어 새로운 설비투자를 기피하고 무사안일로 일관하던 화섬 산업부터 병색이 뚜렷했다.
후발국 중국이 첨단설비로 초대형화를 추구하는 것을 빤히 알면서 설비투자에 철저하게 외면했다. 중국의 급부상을 예견하고 첨단설비투자와 기술개발에 올인한 대만과는 천양지차였다. 실수요업계가 지금 이 순간도 분통을 터트린 것은 소재 빈곤과 가격 경쟁력 취약이다. 40년 50년된 구닥다리 설비로 첨단설비로 무장한 대만· 중국과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화섬 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면서 필연적으로 안방 시장까지 내주고 말았다.
국내 화섬 산업 자체가 벼랑 끝에 몰린 것은 여기에 의존한 니트· 우븐직물 업체의 경쟁력도 함께 무너졌다. 차별화가 안 된 레귤러사로 제직· 편직기술을 접목해본들 중국· 대만제품과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결국 최후의 보루로 남은 국내 직물산업이 조종(弔鐘)으로 이어진 것이다.
우리나라 섬유산업 뿌리인 면방도 천수답경영으로 일관하다 모진 고통을 겪고 있다. 인도산 면사가 가격경쟁력을 배경으로 세계시장을 휩쓸고 끊임없는 축소지향으로 연명하고 있지만 결국 국내 설비가 올 연말이면 60만 추대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80년대 370만 추에 달하던 전성기와 비교하면 쇠락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최고 품질로 승승장구하는 일본 곤도방 같은 차별화는 뒷전이고 일반 코마사에 목을 맨 업보다. 결국 너도나도 베트남으로 갔으나 중국· 대만의 규모 경쟁에 눌려 눈을 중미지역으로 돌리고 있다.
돌이켜보면 국내 섬유산업의 몰락을 향한 날개짓은 90년대 말 봉제 산업의 엑소더스 때부터였다. 발 빠른 의류수출업체들이 중국· 베트남· 카리브· 방글라데시로 탈출할 때 대수롭지 않게 강 건너 불구경한 것이 씻을 수 없는 실수였다. 봉제가 가도 사직물 소재가 국내에 남아 공급하면 별문제 없을 것으로 안주했다. 봉제가 가면 필연적으로 사· 직물 소재도 현지화가 된다는 엄연한 사실을 외면했다.
대구와 경기북부 니트직물 산업이 급속히 붕괴되면서 지금 이 순간 산지는 성수기에 아비규환이다. 경기 냉각이 아무리 심해도 꽃피고 새우는 S/S 시즌이면 기지개를 편 것이 지난날의 관례였다. 그러나 올해는 2월에 조금 기색이 보이다 3월 성수기를 허송했다. 4월이 되도록 중동 라마단 대목이 꿈쩍 않고 주 시장이 싸늘하게 식었다. 니트직물도 한국의 독점품목인 ITY가 부활가를 부르는가 싶더니 이마저 가격이 안 맞아 말짱 도루묵이 됐다. 대부분 경기탓으로 돌리지만 실상은 우리 업계의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중국산 사직물은 한국 뺨치게 좋아진 반면 싸게 만드는 능력은 우리가 발 벗고 뛰어도 중국을 못 따라간다. 싸고 좋은 제품만이 살아남는 냉엄한 시장원리에서 품질 차이 없고 가격 비싼 한국산 직물을 사줄 이유가 없다. 더구나 최저임금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이란 제조업 잡는 제도로 염색공장이 4일 쉬는 곳이 늘어나면서 이로 인한 후폭풍이 예사롭지 않다. 지난 3월 열린 상하이 춘계 인터텍스타일 전시회에서 중국 바이어들이 “한국산 직물의 품질 불량이 늘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지적했다. 한국산 직물이 가격 비싸고 품질까지 나쁘다면 종착역인 빙하기로 가는 지름길이다.
레코드판처럼 반복하지만 섬유산업이 살길은 투자밖에 없다. 인력을 줄이고 품질과 생산성으로 승부하기 위한 첨단자동화 투자가 급선무다. 그 바탕에서 신기술· 차별화와 마케팅을 강화하는 것이 생존의 처방이다. 더욱 발등의 불은 남은 섬유산업이라도 살기 위해서는 업계 고질병인 들쥐떼 근성을 척결해야 한다. 하나의 예증으로 ITY 니트직물은 한국의 독점물이다. 가성비에서 아직까지 ITY 니트직물만큼 강한 경쟁력을 가진 원단이 없다. 우리 업계가 제 살 깎기 과당 경쟁만 피하면 바이어에 큰소리치며 배급 줄 수 있는 한국형 아이템이다. 제값 받으며 얼마든지 엔조이할 수 있다.

 

들쥐떼 근성 못 버리면 희망 없다.

그럼에도 최소 야드당 1.60달러가 본전인 품목을 1.20달러 내외에 막장 투매를 한다. 너 죽고 나 죽고 공멸하자는 심보다. 죽 쒀서 식힐 시간이 없는 자금력 약한 생산업자의 투매가 원인이다. 이를 헐값에 사서 헐값에 팔아넘긴 서투른 트레이딩들이 시장을 망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시장은 망가지고 가격은 추락하고 업체는 도산하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지금이라도 업계의 자정 노력을 통해 시장을 살리고 돈을 버는 지혜와 인내가 급선무다.
한마디만 거듭 강조한다. 실패는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는 것이다. 모두가 힘들다고 벌레 씹는 모습이지만 지금 이 순간도 일취월장 고도성장하는 기업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하나의 예증으로 부산에서 신발용 섬유를 생산하는 어느 기업은 연간 매출 2000억원에 영업이익 500억원을 올리는 기적 같은 성공신화를 쓰고 있다. 40년 한 우물을 파면서 첨단 기계를 가장 먼저 도입하고 남이 하지 않는 특수차별화에 올인한 결과다. 우리 업계 모두 이를 귀감삼아 들쥐떼 근성에서 벗어나 남이 못한 제품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사즉생(死卽즉生) 각오로 분골쇄신 전력투구하면 길은 얼마든지 열릴 수 있다. 강한 신념이 위기를 극복하고 스타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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