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脣亡齒寒>

그야말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며칠 전 봄의 전령 우수· 경칩이 한참 지난 춘분에 때 아닌 폭설이 내렸다. 경천동지할 사건의 적색 신호로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샐러리맨의 신화이자 우상인 이명박 전 대통령이 철창에 갇혔다. 어린 시절 모진 고생을 다 해 돈에 걸신이 들었겠지만 대통령 권한을 돈벌이에 악용한 적폐로 몰렸다. 그동안 자식들에게 “이명박처럼 되라”고 가르쳐온 이 땅의 부모들의 가슴은 착잡하다 못해 화석으로 변했다.
무엇보다 경제지표인 시장이 녹록지 않다. 지표경기보다 체감경기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성장동력인 산업현장에 거미줄과 곰팡이가 가득 찰 조짐이다. 경쟁력이 급격히 추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괴이쩍은 것은 국가 세수가 목표를 훨씬 초과하고 있다. 작년에 목표 대비 14조원을 더 걷더니 올 1월에도 2조 7000억원이 더 걷혔다. 섬유를 비롯한 대다수 경공업과 중화학품목 상당수가 뒷걸음치는데도 반도체를 비롯한 극소수업종이 우등생 경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공멸 위기 섬유산업 협업으로 극복하자

삼성전자 1개 회사만 연간 7조원의 법인세를 내는 글로벌 초우량기업 덕분이다. 그럼에도 삼성을 못 때려잡아 정권과 일부 언론이 안달이다. 기업이건 사람이건 잘 나갈 때나 어려울 때 당기고 밀어주는 그런 미덕이 안 보여 아쉽고 안타깝다.
본질문제로 돌아가 중언부언하지만,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이 몰고 온 충격과 후유증이 너무 깊고 넓다. 이미 쇠락의 징검다리를 건너버린 섬유산업 같은 전통 산업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자기가 피땀 흘려 돈 벌어 월급 줘 본 일 없는 정치인들의 형이상학적 사고가 몰고 온 동심원에 전통산업은 생사기로에 몰리고 있다.
따지고 보면 중소기업 입장에서 악의 근원인 최저임금 인상 날갯짓이 문재인 정부 들어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2년전 20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시간당 6000원대 최저임금을 20대 국회 임기 내에 9000원으로 올리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지난해 대선 때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했다. 정치권이 포퓰리즘 경쟁을 벌이면서 자본주의 꽃인 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줄초상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실제 최저임금인상 첫 달인 올 1월 한 달 봉급을 계산해 본 결과 종업원 50명을 고용한 기업의 월 추가 부담은 단순 최저임금 기준으로 1200만원 수준으로 나타났다. 50명이 아닌 100명이면 2400만원, 연간 3억원 규모가 추가 부담된다. 설상가상 근로시간 단축이 몰고 온 파고는 최저임금보다 더 무섭다. 주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되면 사람을 30% 더 써야 한다. 감당할 수 없는 돈도 돈이지만 떡쪄 놓고 빌어도 오지 않는 사람은 구할 길이 없다. 남의 돈도 제 돈처럼 생각하는 정치인이나 정부의 백년서생들이 휘두른 탁상행정의 산물이다.
“나가야산다”는 유행어가 제조업현장에 나 돈 지 오래지만 이제는 갈 수도 안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이다. 섬유산업에서만 6000개 가까운 기업이 이미 해외로 탈출했고 지난 한해 국내 중소기업의 해외투자가 74억 5038만 달러(7조 9780억원)였다. 물론 올해도 내년에도 여력이 있는 한 엑소더스는 이어질 수밖에 없다. 능력이 있어서 나갈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곳간이 빈 기업은 가고 싶어도 갈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또 하나 간다고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봉제, 제·편직, 염색을 포함한 버티칼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해외로 나가는 것이 대안이다. 그러나 단순히 제·편직을 겨냥한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이전은 심사숙고와 정밀고찰이 필요하다.
필자가 지난 13일부터 16일까지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2018 춘계 인터텍스타일 상하이’를 참관하면서 나름대로 조사한 결과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국과 중국, 베트남은 임금구조에서 천양지차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은 중국보다 4배, 베트남보다 ‘10배 가까이 임금이 높다.’ 반면 한국 종업원은 1인당 직기 20대 이상을 감당한다. 반면 중국은 근로자 1명이 직기 5대를 커버한다. 베트남도 비슷하다. 중국의 직물공장 근로자가 한국처럼 직기 20대를 커버하기 위해서는 4명이 필요하다. 월 임금 80만원을 기준해 320만원이 소요된다. 한국 근로자의 연장· 휴일수당을 포함해도 중국과 대동소이하거나 한국이 오히려 싼 편이다. 물론 종업원 숫자가 많으면 상황은 달라진다.
또 하나 복병은 한국기업이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생산된 제품은 ‘메이드 인 코리아’제품보다 헐값으로 거래된다. 바이어들마다 베트남에서 만들면 중국 가격에 맞춰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도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는 기업은 나가야 한다. 다만 나갈 수 없는 대다수 국내 섬유산업을 어떻게 유지발전 시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정부나 단체가 지원대책을 마련할 수도 없어 어디까지나 각자도생이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이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정신이다.
바로 섬유패션 각 스트림간의 협력과 공조다. 국내산업이 이 정도라도 버티고 있으니까 품질과 가격, 딜리버리가 유지되지 붕괴된 다음에는 기대할 수 없다. 중국과 베트남 등 경쟁국에 사·직물까지 의존하면 칼자루가 넘어가 가격은 천정부지로 뛸 수밖에 없다.
잘 나가는 의류벤더나 패션 브랜드들이 이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하나의 예증으로 의류 한 벌에서 원단 가격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다지 높지 않다. 국산이 다소 비싸더라도 국산을 써야할진대 동일가격에도 국산을 외면한 기업은 애국심이 없는 수전노들이다. 중언부언하지만 중국 기업들은 자국 내에서는 물론 베트남 진출기업끼리도 다소 값이 비싸도 자국계 공장에서 소재를 우선 구매한다.

 

노스페이스 · 삼덕통상서 배우자

국내에서도 세계적인 아웃도어 브랜드인 노스페이스의 영원아웃도어가 전량은 아니지만 국산 원단 비중확대에 앞장서기로 방침을 정했다. 섬유패션업계 수장인 성기학 회장의 결단으로 국산 소재 점차 확대 방침을 정했다. 실제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 중 노스페이스가 가장 많은 차별화 국산 원단을 이미 사용하고 있는데도 이의 후속 조치다. 또 한국신발협회장인 문창섭 삼덕통상 회장은 신발에 들어간 수많은 부품을 아직도 국산으로 전량 사용하고 있다. 개성공단이 문을 닫자 부산 본 공장 외에 베트남에 공장을 진출한 삼덕은 수많은 현지화 유혹에도 국산을 고집해 고통 분담을 앞장서 실행하고 있다.
때마침 최근 대구 직물업계와 염색업계, 가연업계 사이징업계 및 화섬 원사 메이커가 협업체제를 구축해 중국과 대만산 화섬직물과 품질· 가격경쟁을 벌이기로 결의했다. 이같은 국내 화섬직물 관련 업계의 결의에 찬 수용태세를 의류벤더와 스포츠, 아웃도어브랜드들이 적극 호응해 같은 가격이면 우수한 품질의 국산 원단 사용을 확대해줄 것을 거듭 촉구한다. 아울러 산업통상자원부와 섬유산업연합회 등도 이 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다각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책을 강화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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