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왔다. 물은 엎질러졌고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주당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7월 1일부터 시행된다. 3교대 사업장도 주당 4시간이 초과된 데 이어 사실상 주 84시간을 근무하는 대다수 2교대 사업장은 기업을 영위할 길이 막막하다.

정부와 정치권은 말이 좋아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만시지탄의 감이 있다”고 자화자찬하지만 기업현장의 실정을 전혀 모르는 탁상행정의 발상이다.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사람이 더 필요해 일자리가 늘어날 것으로 보는 발상 자체가 어리석고 부박하기 짝이 없다. 섬유사업장은 지금 이 순간도 돈보다 더 급한 것이 사람이다. 떡 쪄놓고 빌어도 내국인들은 사람이 안 온다. 지금 이 순간도 생산현장의 내국인은 대부분 50~60%대 고령 근로자다. 궁여지책으로 불법체류건 합법이건 가리지 않고 외국인 근로자에 의존하고 있다.

생산현장 돈보다 더 급한 것이 인력

연간 12조 비용 폭탄을 예고한 근로시간 단축이 국회를 통과하자 섬유를 비롯한 대다수 중소 기업인은 망연자실하고 있다. 곧 해외로 나가거나 간판 내릴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백방으로 생각해도 주 52시간 근무로 현재의 생산성을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가 피땀 흘려 돈 벌어 월급 줘 본 일이 없는 정치인이나 행정 하는 사람들은 피 말리는 기업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올 7월을 시발로 2022년 사이에 주 52시간 근로시간이 시행되면 섬유사업장 중 3교대 업종인 면방과 화섬산업까지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다. 3교대 기업의 근로시간이 56시간이어서 4시간을 어떻게 축소하느냐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 24시간 연중 풀가동 시스템인 화섬과 면방현장은 사람을 더 뽑거나 자동화 투자가 대안이다. 2010년 이후 7년 불황에 신음하는 면방업계와 거의 같은 기간 구조적 불황에 시달리는 화섬산업의 적자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이들 사업장은 섬유 대기업이어서 맷집이 좋은 편이다. 대다수 섬유사업장은 1일 2교대로 주당 84시간 근무체제다. 공정상 전기를 끌 수 없어 24시간 돌리는 가연업종을 비롯한 염색가공업종은 오더를 제때에 수행하기 위해 현재보다 30% 이상 인원을 늘려야 한다. 돈 아니라 금을 줘도 내국인은 오지 않고 외국인 근로자는 쿼터에 묶여 조달 방법이 없다.

말이 쉬워 자동화 투자지 대규모 투자비도 문제이고 아직은 로봇이 대체할 수 있는 첨단기계도 없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토요일, 일요일은 공장 가동률 중단해야 한다. 24시간 돌아가는 공장을 주 2일씩 세워두면 생산성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도저히 기업할 수 없는 나라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기울어진 운동장 정책에서 비롯된 근로시간 단축을 근로자들이 찬성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제조업 근로자 40만 9000명의 임금을 분석한 결과 근로시간이 52시간으로 단축되면 이들의 월평균 급여는 297만 3000원에서 257만 5000원으로 38만 8000원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의 임금으로도 뛰는 물가에 자녀 교육비 부담으로 허리띠를 조이는 판국에 월급이 줄어드는데 좋아할 근로자가 없다. 사업주도 근로자도 모두 반대하는 근로시간 단축을 정치권이 무슨 역사적 과업인 듯 깃발 들고 강행한 이유를 당최 알 수 없다.

세계는 국가 간 울타리가 사라진 글로벌 시대다. 시장은 더 싸고 더 좋은 물건을 찾아 혈안이 된 지 오래다. 섬유산업을 비롯한 한국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몰락한 것은 고임금과 인력난 때문이다. 제조업에서 가장 큰 원가구조는 원자재에 이어 인건비다. 동일업종에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는 연봉 400만원이고 중국은 800만원이다. 한국은 4000만원이 넘었다. 경쟁력이 떨어져 시난고난 버티어 온 것도 한계가 있다.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어졌다.

직격탄은 최저임금 대폭 인상부터 더욱 심해졌다. 올해 16.4%를 올려 시급 7530원으로 인상됐지만 이것은 기본급을 기준한 것이다. 기본급이 오르면 수당과 상여금, 4대 보험비 모두 줄줄이 따라 오른다. 실제 26%가 인상된 것이다.

대구의 한 중소기업에서 하소연한 내용을 보면 억장이 무너진다. 인상된 최저 임금을 기준으로 1월분 외국인 근로자 임금으로 자그마치 380만원이 지급됐다고 한다. 주야 2교대 근무 조건이지만 밥값, 기숙사비를 빼고도 이같은 금액이 임금으로 지급됐다는 것이다. 2020년에 시급 1만원 시대가 되면 외국인 근로자 월 임금이 550만원으로 껑충 뛰게 된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의 대포를 맞고 근로시간 단축이란 미사일을 맞은 기업들은 녹초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기업할 수 없으면 외국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이마저 막차를 탄데 따른 위험부담이 크다. 6000개 가까운 섬유 기업이 해외로 탈출했지만 모두가 성공한 것이 아니다. 해외에서 돈 버는 기업보다 멍든 기업 수가 오히려 많다는 분석이다.

고통은 중소제조업뿐 아니다. 잘나가는 의류수출벤더들도 비상이 걸렸다. 해외에 수천· 수만 명의 소싱공장을 가동하면서 국내 본사 직원 수가 500~1000명 규모다. 이를 벤더직원들은 주 84시간이 아니라 100시간 가까이 근무하고 있다. 지구 반대편과 영업하고 오더 수취와 생산, 선적, 사후관리를 위해 별 보고 출근해 별 보고 퇴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벤더들은 생산현장보다 사람 구하기가 쉽지만 피 말리는 수출 전선에서 아무나 쉽게 업무를 처리하기 어렵다. 설사 사람을 많이 증원한다고 해도 그 비용을 혼자 뒤집어쓸 리 없다. 원부자재 가격을 더욱 후려치는 등 협력업체에게 가급적 전가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최저임금인상에서 나타나듯 근로시간 단축으로 비롯된 기업의 원가부담 가중은 득달같이 제품값 인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최저임금· 근로시간 단축 앞뒤 막막

정치권과 정부가 밀어붙이는 친노동정책의 끝은 결국 섬유를 비롯한 전통산업은 이 땅을 떠나라는 강한 메시지로 들린다. 저임금 산업은 떠나고 반도체 등 고부가가치 첨단산업만 이 땅에 남으라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하지만 섬유제조업은 아직도 전국적으로 4만 7000개에 달한다. 1인 이상 전체 제조업의 11.9%에 달하고 10인 이상도 8.7%에 달한다. 생산직 고용도 30만 명에 달한다. 전체 제조업의 7.7%다. 10인 이상 섬유 제조업의 생산액은 연 43조에 달한다. 국가 경제의 기간산업인 섬유산업이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극심한 경제공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은 반도체가 효자지만 세계제일이었던 노키아와 IBM도 고꾸라졌다. 산업뿐 아니다. 로마제국과 잉카제국도 망했다. 지금 잘나간다고 언제까지 장담할 수 없다. 섬유패션은 누가 뭐래도 고부가가치 미래 산업이다. 중언부언하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의 노동정책보다 흔들리는 배를 안정시킬 수 있는 평형수(平衡水) 역할의 기업정책이 아쉽다. 원로 코미디언 송해 씨 멘트처럼 “기업이 살아야 일자리가 늘고 경제가 살아나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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