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 연휴를 전후해 며칠 미국에 간 김에 눈동냥 귀동냥으로 확인한 사실이다. 한 마디로 선진국 미국도 부의 불평등은 우리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다.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 설립자 제프 베조스와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 빌 게이츠, 기업가이자 투자가인 워런 버핏 등 3명의 재산 합계가 3억 미국 인구 소득 하위 가구 절반의 재산을 다 합한 것보다 많다. 1위인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 전 재산은 2017년 말 기준 1051억 달러(약 112조 5000억원)이고, 2위인 빌 게이츠 전 재산은 933억 달러(101조 1558억 6000만원)이다. 본래 섬유회사로 출발한 버크셔 해서웨이 창업자 워런 버핏은 872억 달러(94조 5422억 4000만원)다.
이들 3명의 재산 합계는 2641억 달러로 미국 전체 국민 3억 명 중 소득 하위 1억 6000만 명(5300만 가구)의 재산 총합을 뛰어넘는다.

 

미국 가구당 의류 구입비 절반 줄었다.

한국 1위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재산은 220억 달러(약 24조 4000억원)로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 재벌 4위로 등극한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의 775억 달러에 비해서도 이 회장의 재산은 3분의 1도 안 된다.
또 미국의 부자 상위 400명의 재산 합계는 소득 하위가구 64%의 재산 합계와 같은 규모로 파악되고 있다. 가구로는 8000만 가구, 인구는, 2억 400만 명에 해당된다.
특기할 것은 자본주의 경제의 선진국인 미국은 이같이 부의 불평등이 심각한데도 국민들이 재벌을 헐뜯거나 증오하지 않고 고마워하며 존경한다는 사실이다. 세금 많이 내는 사람이 최대 애국자이고 그들 덕분에 일자리와 복지 혜택을 누리고 있다며 존경과 찬사를 보내고 있다.
반면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우리 국민들은 갈수록 반기업 정서가 심해지고 재벌 총수를 향한 증오에 가까운 적대감을 보이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한국의 재산가 1위이지만 세계 재벌들과 비교하면 중견기업 수준이다. 법을 위반하면 재벌보다 더한 곳도 예외가 없겠지만 법의 잣대가 유난히 기업인에게 더욱 엄격한 우리 사회가 안타깝다. LA에서 만난 어느 교포 실업인은 요즘 아침에 한국 뉴스를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고새면 재벌총수나 기업인 때려잡는 소식으로 아침 기분을 망치기 싫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가 좀 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차분해져야 한다.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지만 평창올림픽에 취한 우리 사회 내부는 지금도 엄혹하기 짝이 없다.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산업현장의 신음소리는 가히 초상집의 곡(哭)소리 수준이다. 대기업과 잘 나간 중견기업을 제외한 대다수 중소기업은 경쟁력을 잃고 생사기로에서 교도소 담장 위를 걷고 있다.
전 세계 돌아가는 통박을 봐도 시장 환경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세계 최대 섬유의류 수출시장인 미국도 전체 경기는 상승곡선이지만 근본적인 의류경기는 반비례 현상을 보이고 있다. 미 연방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1980년도에는 가구당 의복 구입비가 연간 4000달러가 넘었는데 2016년에는 2000달러 정도로 절반이 줄었다. 80년에 미국인 가계지출의 6.2%를 차지하던 의복 구입비가 3.2%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미국 소비자들의 주머니가 가벼워졌다는 얘기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중산층이 무너진 후 아직도 복귀가 안 되고 있다. 반면 부동산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으로 렌트비가 계속 상승해 가구 소득 중에서 30% 이상이 주거비로 지출되고 있다. 부부가 직장에서 번 돈 중 한 명분은 거의 집세도 나가고 한 명분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비 패턴도 많이 변화하고 있다. 의류 구매보다는 스마트폰 구매나 게임비 비중이 커지고 있다. 여행과 스포츠 활동비, 하이텍에 관한 지출이 늘어나고 있다. 2006년 섬유 쿼터가 폐지된 이후 의류수출단가가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떨어진 이유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더구나 이제는 온라인의 등장으로 유통 혁명이 일어났다. 점포를 가지고 운영하는 오프라인에 비해 창고만 갖고 장사하는 온라인과의 가격차는 엄청날 수밖에 없다. 온라인 공룡 아마존의 의류 매출이 2016년 220억 달러로 미국 의류 시장의 6.6%를 차지한 데 이어 2021년에는 16%까지 증가가 예상된다. 월마트 등 기존 유명 유통업체들도 아마존과 경쟁하기 위해 온라인 판매에 총력전을 전개하고 있다.
온라인 판매가 활성화되면 싼 맛에 수량은 더 팔릴 수 있다. 반대로 가격은 거꾸로 추락하는 것은 불문가지다. 그렇지 않아도 가격경쟁력이 없어 쇠락의 징검다리를 건넌 우리 섬유업계에 치명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 살아남을 처방은 원가를 낮추는 것이지만 이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우리 내부뿐 아니다. 해외에서 전량 소싱하는 의류벤더들도 가격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 바이어들이 원가계산을 유리알처럼 들여다보고 있다. 세아· 한세· 한솔처럼 ‘빅3’는 규모 경쟁으로 극복하지만 채산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잘나가면 중견 벤더들도 망할 수 있는 위기국면이 닥치고 있다.
중견 의류벤더인 광림통상이 파산 위기에 몰린 것도 벤더끼리 과당경쟁에서 오는 채산 악화가 누적됐기 때문이다. ‘포에버21’이란 특정 바이어 의존율이 전체매출의 3분의 1에 달한 편중 현상으로 인해 수출 대전 결제지연이 원인이다. 여기에 햇볕 쨍쨍할 때 우산 빌려주고 비 오면 무자비하게 회수해간 은행의 속성이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해 3400억원의 매출을 올린 광림통상이 무너지면서 금융권은 물론 수많은 원부자재 하청 협력업체들이 줄초상을 맞고 있다.
이번 미국 방문에서 LA와 뉴욕에 있는 섬유 패션 기업인과 직접 또는 전화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한결같이 한국산 섬유의 가격 경쟁력을 한탄했다. 품질과 딜리버리, 사후관리 등은 한국이 최고이지만 가격 때문에 도저히 경쟁이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품질에서 급속히 따라온 중국산과 웬만하면 20~30% 차가 나기 때문이다.

 

소총으로 대포와 싸우는 천수답 발상

거두절미하고 명제는 분명히 설정돼있다. 국내 섬유산업이 더 이상 고꾸라지지 않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차별화와 원가를 낮추는 특단의 대책이 급선무다. 가장 시급한 발등의 불은 자동화 설비투자다. 이미 봉제가 공동화되고 면방이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상황에서 남아있는 직물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도 설비투자가 급선무다.
화섬과 니트직물 자체의 제직· 편직과 염색· 날염의 혁명적인 설비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무엇보다 차별화를 위해 화섬산업부터 달라져야 한다. 아직도 4앤드 방사설비를 가동할 정도로 40년~50년 구닥다리 설비로 생산하는 것은 천수답 경영이다. 중국 등 경쟁국은 24앤드, 32앤드, 심지어 62앤드 첨단 자동화 설비다. 낚은 소총으로 대포와 대결하겠다는 잘못된 발상의 전환이 시급하다.
중언부언하지만 이대로 가면 옹기 짐 지고 가다 자갈밭에 넘어진 꼴이 된다. 기업과 단체· 정부가 정신 차리고 하루라도 빨리 고단위 처방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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