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의 축제 평창올림픽이 즐겁다.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된 거창하고 화려한 천재일우 축제를 안방에서 못 보고 미국 출장길에 나서는 필자의 발걸음이 아쉽다. 하지만 믿고 또 안심한다. 저력과 강단 있는 태극전사들의 선전으로 세계 5위 스포츠 강국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것으로 낙관한다.
그런 한편 평창올림픽을 전후해 돌아가는 통박이 어지럽고 종잡을 수 없어 헷갈린다. 김정은의 이방카 김여정 일행이 방남해 문재인 대통령과 오찬 회동까지 했다. 이른바 ‘백두혈통’의 일원이 처음으로 남한 땅을 밟고 대한민국 대통령과 식사한 것은 천지개벽처럼 충격적이다.
대규모 예술단과 응원단이 입고 온 유니폼도 방모 원단과 아크릴 파일을 곁들여 ‘레드 앤 블랙’으로 치장해 화려함을 연출했다. 겉으로 보아서는 누렇게 부황 든 인민들의 등골을 짜 선택된 사람들 같지 않다. 강릉과 서울에서 전개된 예술단 공연도 남한 사회를 흔들어 놓겠다는 전략이다. 남남갈등을 부추기기 위한 고도의 선전· 선동이다. 올림픽 이후 무슨 청구서를 내놓을지 그 또한 걱정이다.

 

섬유산업 뿌리째 흔들린다

본질 문제로 돌아가 대명절 설을 맞은 섬유· 패션 기업인의 가슴은 소태 씹는 기분이다. 시장 경기는 엄동설한이고 경영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악화일로다. 울고 싶을 때 뺨 맞은 격이지만 사실은 최저임금 급상승과 근로시간 단축 예고 이전에 거덜이 나기 시작했다. 인상된 최저임금 시행 전에 경쟁력을 잃고 쇠락의 징검다리를 건넌지 오래다. 핑계 없는 무덤 없듯이 최저임금 인상이 변명의 구실은 될지언정 절대 요인은 아니었다. 분초를 다투며 변하는 변곡점의 꼭대기에서 만들면 팔리던 천수답 경영에서 탈피하지 못한 업보다. 냉엄한 시장 경제에서 살아남는 길은 각자도생이다. 이를 위해 첨단설비와 차별화 신기술 개발,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이 수반돼야 한다.
80~90년대까지는 정부가 특혜도 주고 온갖 지원도 했지만 세상이 바뀐 지 오래다. 지금의 위기국면에서 정부가 가라앉고 있는 난파선 신세인 섬유산업을 살릴 의지와 실력을 갖췄는지도 의문이다. 엄살이 아니라 섬유산업이 허망하게 무너지고 있다. 그야말로 뿌리째 흔들리는 형국이다.
90년대 중반부터 무너진 국내 봉제 산업의 뼈 아픈 공동화(空洞化)가 타스트림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우리 섬유산업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면방산업이 지금 그 길을 가고 있다.  
설마 했지만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다. 80년대 후반 370만 추에 달하던 국내 면방설비가 지난해에 100만 추 남짓 가동됐다. 그러나 이마저 난파선에 쥐 빠져나가듯 국내공장의 해외이전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아예 국내 공장을 폐쇄하는 기업도 여럿이다. 결국 올 하반기엔 국내 면방설비 전체를 합쳐봐야 61만 추 규모에 불과할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반면 국내 면방회사의 베트남 공장설비는 50만 추에 달해 국내 설비와 근접하게 된다. 한국 전체 면방설비 60만 추 규모는 세계 1위인 중국 웨이차오그룹 1개사 800만 추의 10분의 1도 안 된다. 베트남에 진출한 중국과 대만 단위 공장의 20만~50만 추 규모와도 비교가 안 된다. 그나마 국내 설비가 100만 추 이상 가동될 때는 코마사 수급이 큰 어려움이 없었으나 이제는 사실상 공동화를 향하고 있어 국내 수급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작년 상반기까지 재고가 쌓이던 코마사가 지난 11월부터 바닥났다.
이제는 심각한 수급 불균형을 초래해 남아돌던 코마사마저 상당부문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작년 초 고리당 540~560달러이던 코마 30수가 지금 660달러로 뛰었고 딜리버리도 늦어지고 있다. 코마사뿐 아니라 공급과잉이던 장갑사도 비상이 걸렸다. 가뜩이나 고임금 인력난으로 시난고난한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이 현실화되자 아예 문 닫거나 생산을 절반으로 줄였기 때문이다.
새해 벽두부터 장갑사 파동이 일어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수입하느라 안간힘을 쏟고 있다. 봉제산업 공동화에 이은 면방산업 공동화가 현실화된 것이다. 낙조가 드리워진 것은 봉제 면방뿐 아니다. 섬유산업 대들보인 화섬산업도 간당간당 버티고 있다. 중국과 베트남산 화섬사가 가격과 품질의 양 날개를 바탕으로 국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실수요자인 니트 직물과 화섬 직물업체들이 값싸고 품질 좋은 수입사로 대거 전환한 지 오래다. 대기업인 화섬 메이커들이 미래의 싹수가 노랗다고 보고 투자를 기피하고 있다. 40년 50년 된 설비를 가동하다 보니 생산성을 떨어지고 가격 경쟁력이 추락할 수밖에 없다.
국내 면방과 화섬 등 업스트림 소재 산업이 붕괴되면 부작용과 후유증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중국과 인도, 베트남, 대만 등이 대규모 투자로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한국에 가격 폭탄을 터뜨릴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서 생산이 부족하면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기회다 싶으면 부르는 게 값이 된다. 시장 가격은 수요공급 상황에 따라 춤추게 돼 있다.
중증은 이뿐 아니다. 국내 섬유산업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직물산업도 삶은 개구리 처지에서 점점 목 졸림을 호소하고 있다. 대구 화섬직물산지는 거듭되는 냉골 경기에 자포자기 분위기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경기 북부의 니트직물산지도 심각한 오더 가뭄으로 축소지향이 줄을 잇고 있다. 바늘과 실 관계인 염색업계도 가동률 60% 수준에서 숨을 헐떡거리고 있다.

 

기업· 정부 함께 비상구 찾자

섬유 패션 스트림 중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다. 국내 전체 섬유 기업 중 10% 남짓만 흑자를 내고 있을 뿐이다. 처방은 기업의 각자도생을 위한 비상구 마련이다. 사람을 줄이면서 생산성과 품질을 높이기 위한 자동화 투자가 대안이다. 차별화 신기술 개발과 마케팅전략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섬유산업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은 남 탓할 일이 아니다. 기업 스스로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구태의연한 천수답 경영이 원인이다. 여기에 산업현장의 실상을 오래 들여다보고 내공을 쌓은 전문관료가 없기 때문이다. 섬유 패션산업을 제대로 알고 분석하고 판단하기보다 산업을 모르는 탁상행정의 백면서생(白面書生)들이 정책의 지휘봉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달라져야 한다. 고부가가치 생활문화산업인 섬유패션산업을 포기할 수도, 해서도 안 된다. 산업정책 당국부터 산업의 특성과 이면을 읽어 내려가는 훈련을 쌓아야 한다. 오래 들여다보고 깊이 고민한 경험과 내공을 통해 과감한 육성정책의 처방을 제시해야 한다. 
중국과 대만, 베트남이 어떤 전략으로 나가는지, 죽었던 일본 후쿠이 산지가 어떻게 부활가를 부르는지 조사하고 벤치마킹해야 한다. 그 많은 단체와 연구소도 얼은 발에 오줌 누기 전략이 아닌 중장기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중언부언하지만 ‘죽은 나무는 물을 줘도 못 산다.’ 제발 토사곽란에 소독약 처방하는 그런 식으로는 게도 구럭도 다 놓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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