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무당 사람 잡고 반풍수 집안 망친다”고 했다. 애시당초 소득주도 성장은 경제학 이론에 없었다. 조순 전 경제부총리 주장처럼 “부는 기업이 생산하는 것이지 근로자가 하는 게 아니다”는 지적이 새삼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기업이 잘돼야 고용이 창출되고 종업원이 잘되는 것이지 종업원이 잘돼야 기업이 잘 되는 게 아니다”는 것은 백번 옳은 말이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며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까지 달았지만 지난 8개월의 성적표는 F 학점이다. 일자리가 늘기는커녕 오히려 대폭 감소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최저임금이 올해 16.4%나 급등하면서 서민 일자리 16만 개가 달아났다고 한다. 청년 실업률이 9.9%(102만 명)를 기록해 최악의 취업 빙하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몸에 좋은 산삼 녹용도 체질에 맞아야 보약으로서 기능을 한다. 암 환자에게 보약을 먹이면 수명만 재촉할 뿐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현실과 조화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일자리는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시장이 호응해야 한다. 기업이 신바람 나게 뛰어야 일자리가 창출된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노동자 위주의 노치(勞治)로는 이미 적색경보가 뜬 일자리 상황판이 청색 신호로 바뀌지 않는다.

 

섬유산업 덮치는 최저임금 후폭풍 자충수

사실 소득의 양극화로 빚어진 국민갈등을 언제까지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영세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최저임금을 한꺼번에 대폭 올리는 것은 무리수이자 악수였다. 솔직히 영세 제조업체들은 최저임금인상 전에 사실상 조종(弔鐘)이 울린 상태였다. 돈보다 더 급한 생산현장의 피 말리는 인력난과 고임금은 이미 고립무원의 한계 상황이었다.
가뜩이나 시난고난 어거지로 연명하는 상황에서 최저임금 급등은 영세자영업자나 중소 제조업을 불구덩이 속으로 쑤셔 넣은 꼴이다. 중소 제조업체들은 이판사판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매한가지” 심정으로 기업 포기 아니면 해외 탈출을 택했다. 아직 인상된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는데도 도처에서 반발과 곡소리가 요란하다. 막상 인상된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2월이 되면 중소기업 현장은 악소리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장을 모르는 탁상 위의 공론이 얼마나 무섭고 심각한지 정부도 비로써 알아차린 것 같다. 언필칭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최저임금도 못 주는 한계 기업은 스스로 문을 닫아야 한다”는 주장은 싸가지 없는 말이다. 우리나라 1360만 임금 근로자의 88%가 250인 미만 사업장에 고용돼있다. 이 중 100명 이내 중소기업 수가 가장 많이 포진돼 있다. 600만 자영업자 상당수가 가족노동에 기대 근근이 살아가는 있는 실상을 모르는 무책임한 발상이다.
섬유산업의 실상을 예증으로 보자. 방직업체 근로자의 지난해 평균 임금은 연간 3646만원이었다. 6470원이던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오른 올해는 4104만원으로 늘어난다. 최저임금이 16.4% 오르면 퇴직금, 4대 보험 등도 덩달아 따라 오른다. 최저임금 적용대상자가 37% 이상인 면방업체들은 7년째 장기불황에 눈덩이 적자를 기록한 절박한 상황에서 생존이 어려운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최저임금적용자에게만 임금이 오른 것이 아니다. 차상급을 비롯 중간· 단위 직원들이 따라 오를 수밖에 없고 격차가 줄어든 이상 간부들 임금까지 덩달아 오를 수밖에 없다. 연봉 400만원 수준의 베트남 등과 도저히 경쟁이 안된다. 오죽하면 83년 전통의 전방이 지난 연말 6만 추 규모의 광주 임동 공장 문을 닫았겠는가. 시흥에 있는 염색공장도 같은 시기에 문을 닫았다. 종업원 220명도 결국 일자리를 잃었다. 문 닫은 전방뿐 아니라 면방업체들 대부분이 해외로 탈출한 데 이어 올해 추가 탈출 방침을 굳혔다. 면방뿐 아니라 대구 산지와 경기 북부 산지의 힘 있는 기업은 해외로 나갔거나 막차를 타고 떠날 생각이다. 아니면 문을 닫거나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며 양단간에 결정을 내릴 태세다.
설상가상 근로시간 단축까지 받아놓은 밥상이 되면서 생산현장의 반란이 불거지고 있다. 산업의 특성상 24시간 가동하던 공장들이 야간작업, 연장 근무, 휴일 근무를 포기하면서 인력 운영에 대란이 왔다. 지금 이 순간도 대구염색공단은 최저임금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으로 가동에 막대한 차질을 빚는 등 도처에서 아우성이다. 한마디로 맥도 모르고 침통부터 빼든 얼치기 의생처럼 기업 죽이는 설익은 정책이 몰고 온 산업현장의 참상이다.
이대로 가면 섬유를 비롯한 대다수 중소기업들은 국내에서 기업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게 된다. 극심한 인력난과 고임금으로 외국인 근로자에 상당부문 의존하고 있는 산업현장은 최저임금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이 기업의 살아있는 맥을 물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같이 산업현장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한 가지 희미하지만, 가물가물 가능성이 보이는 것은 개성공단 재개다. 2년 동안 폐쇄된 개성공단이 최근 북측의 평창올림픽 참가가 확정된 남북 고위급 당국자 협상을 계기로 꿈틀거리고 있다. 아직 예단은 금물이지만 개성공단 기업의 재가동 염원을 정치권이 앞장서 화답하고 있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를 위한 국제 공조 속에 우리 정부가 북한 제재를 독자적으로 해제할 수 없다고 했지만 1% 가능성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성급한 기대일지 몰라도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올가을 아니면 연말 안에 재가동을 기대하며 다각적이고 적극적인 행보를 수면 아래서 뿐 아니라 공개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북한 측이 응할지 모르지만 임금을 현금이 아닌 쌀을 현물 지급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유엔 제재에 저축되지 않는 또 다른 방안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물론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남북교류협력이 쉽지는 않지만 춥고 배고픈 부황 든 북한 인민을 위한 인도적인 차원의 현물 지급 방법까지 막지는 않을 가능성이 있다. 개성공단은 북한에 퍼주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인 것이다.

 

공멸 위기 섬유산업 개성공단이 답이다.

흔히 국외자나 훈수꾼들은 개성공단이 마치 북측 도와주는 퍼주는 것으로 오도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 외환위기보다 더한 산업위기에 몰린 우리 기업이 살기 위해 그곳에 갔거나 가고자 한다. 개성공단 기업인들이 자신의 고모부를 처형하고 이복형인 김정남 암살을 사주할 정도로 잔인무도한 김정은이 좋아서 갈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곳에 가면 돈이 보이기 때문이다.
개성공단 폐쇄 이후 많은 기업이 베트남으로 달려갔지만 개성공단과는 천양지차를 실감했다. 투자 규모 부담은 물론 생산성, 물류 이동 모든 게 개성공단보다 불리하다고 실토하고 있다. 아직은 꿈이지만 개성공단에 재개돼 봉제, 편직, 염색이 함께한 대규모 섬유· 신발단지가 조성되면 붕괴되는 국내 관련 산업이 다시 한번 르네상스를 기대할 수 있다. 북을 도와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산업 기업이 살기 위한 마지막 희망이기 때문이다. 성급한 개성공단 재개나 불가능 속단 모두 예단은 금물이다. 분초를 다투는 변곡점에서 변수는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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