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그러나 또다시 꿈과 희망의 대화 없이 정유년(丁酉年)을 보내고 무술년(戊戌年) 새해를 맞았다. 돌이켜보면 질풍노도 속에 보낸 지난해는 전대미문의 격동의 세월이었다.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에서 혼돈과 갈등의 역사였다.
제왕적 대통령의 실정(失政)으로 나라가 마비 상태에 빠진 후 새 정부가 들어섰다. 문재인 정부는 5년간의 국정 과제와 구체적 실행 방안을 마련할 충분한 시간적 여유 없이 출범했다. 소통에 목마른 국민들의 지지도는 높지만 벌써부터 도처에서 기울어진 운동장 정책에 부작용이 불거지고 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친노동정책, 탈원정정책 등이 끝간 데 없이 삐그덕 거리고 있다.
자본주의 꽃인 기업들은 피가 마른 데 반도체와 스마트폰 수출 호조로 착시를 일으키고 있다. 나라 뒤주는 비어 가는데 분배와 복지는 선진국 수준으로 퍼주기를 주도하고 있다. 세계 최대 산유국 베네수엘라와 남미의 경제 대국 브라질 경제가 꼬꾸라진 이유가 바로 퍼주기 복지 때문이다. 근로시간 단축을 비롯해 조급하고 급격한 복지 확대는 국가 부도 사태인 그리스· 베네수엘라로 가는 지름길이다.

 

10종 허들에 온갖 해저드가 덮친다.

솔직히 무술년 새해 원단을 맞은 기업들은 어떻게 살아남을지를 놓고 심한 가슴앓이를 겪고 있다. 글로벌 경기 동향이나 국내 환경 모두 돌아가는 통박이 10종 허들도 모자라 온갖 해저드가 널려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고래 심줄보다 강한 생명력의 섬유산업은 양반이다. 타 중소제조업은 벌써부터 추위 타는 기업, 얼어 죽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섬유· 패션 산업에 위기의 경고음이 켜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가뜩이나 글로벌 경쟁력이 추락한 산업이 기업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닌 기업할수 없는 나라로 내몰리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폭이 17년째 최고치인 16.4%에 달했지만 이미 인상되기 전부터 제조업 경쟁력은 빨간불이 켜졌다. 베트남의 월평균 임금 40만원, 중국의 80만원과 비교해 경쟁이 불가능했다. 섬유 기업 6000개 가까운 기업이 최저임금 대폭 인상 전에 해외로 탈출했다.
여기에 새해부터 시급 7530원으로 인상되면 외국인 근로자에게도 월평균 430만원을 지급해야 돼 기업 포기 목 졸림을 강요당한 셈이다. 설상가상으로 근로시간 단축과 제조원가 중 인건비 다음가는 산업용 전기료도 들썩거리고 있다. 상식적으로나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중소 제조업이 살아갈 길이 막혔다. 물은 엎질러졌고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우리 내부의 대응책은 과연 현명했느냐 하는 자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어차피 국민 소득 3만 달러 시대에 기존과 같은 천수답경영으로 섬유산업이 살아나갈 길은 요원했다.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 환경과 악화되는 제조업 환경에 대비해 종합적이고 입체적이고 다원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아직도 기업은 기업대로 안이한 구태를 맴돌고, 무기력한 관련 단체는 변화에 무감각하거나 거부하고 있다.
무엇보다 삽질하지 않고 물이 고이기를 바라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했다. 고임금과 인력난, 근로시간 단축, 전기료 인상에 살아남는 길은 우선 첨단설비 투자가 대안이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인 중국과 경쟁에서 살아남는 길은 생산성과 차별화· 특화 전략이 최상책이다. 그럼에도 대구 산지에 투자가 멈춘 것은 자업자득이다. 물론 일부 투자하는 기업은 지금도 불황을 모른다. 차별화 신기술 업체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다만 그 숫자가 극소수일 뿐이다.
직물산업은 공동화된 지 오래인 봉제 산업과 달리 섬유산업의 유일한 버팀목이다. 허리 부문인 직물이 죽으면 화섬 메이커와 염색 관련 산업이 몰사하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우리 직물산업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는 화섬 메이커에도 책임이 크다. 최첨단 설비로 차별화 소재를 공급해야 할 화섬이 아직도 40년~50년 된 노후 설비를 돌리는 것 자체가 소가 웃을 일이다.
대구나 경기 북부 제· 편직업체와 전국 염색공장의 끝간 데 없는 축소지향뿐 아니다. 섬유산업의 뿌리인 면방산업도 급속히 쇠락하고 있다. 최저임금인상에 반발한 면방업체의 국내 공장 해외이전은 올해도 속도감 있는 진행형이다. 문 닫고 해외로 이전하고 나면 결국 80년대 370만추에 달했던 국내 면방 추수가 전성기 때 20%에 불과한 80만추만 남게 된다.
더욱 아쉽고 안타까운 것은 이 어려운 글로벌 경쟁 시대에 우리 업계 내부의 단결과 협력이 진척되기는커녕 갈수록 따로국밥이라는 것이다. 공룡 중국기업은 베트남에서도 고리당 20~30달러 비싸도 자국 진출기업 면사를 사용하는 게 불문율이다. 그러나 한국의 벤더는 고리당 5~10달러만 싸도 중국 제품을 사는 야박한 장사꾼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분통이 터진 것은 우리 업계가 단합하고 협력하면 중국· 대만산과 가격과 품질경영을 돌파할 수 있음에도 아무도 나서지 않고 송두리째 뺏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예증으로 올겨울 내수 패션업계에 돌풍을 일으킨 롱패딩 소재에 수천만 야드 원단이 겉감과 안감용으로 소요됐는데도 국산 원단은 없었다.   
필자가 지적한 대로 롯데백화점이 신성통상에 의뢰해 생산 판매한 평창 롱패딩 30만장이 순식간에 완판됐지만 소요 원단은 전부 중국산이고 봉제는 미얀마에서 이루어졌다.
이 원단은 30~72 DTY를 경사로, 30데니어 고신축사를 위사로 사용해 제직한 다음 염색· 코팅한 원단이다. 소재와 제직· 염색· 코팅이 국내에서도 누워서 떡 먹는 원단이다. 그럼에도 국산 원단은 거들떠보지 않고 중국산을 채택했다. 국산이 비쌀 것으로 보고 처음부터 상담 자체를 피한 것이다.
같은 원단을 1만 야드와 10만 야드, 100만 야드, 1000만 야드 규모를 생산할 때의 원가는 천양지차다. 작년 경기 북부 모 업체가 미국 룰라로 바이어가 채택한 니트 자카드 원단을 수백만 야드 그야말로 헐값으로 중국과 경쟁해 수주했다. 관련 편직업체 회의를 통해 바늘 길이까지 통일해 똑같은 스펙으로 생산하다 보니 생산성으로 큰돈을 벌었다. 롱패딩 원단도 원사 메이커와 제직· 염색· 코팅업체가 긴밀히 협력하면 중국 가격과 얼마든지 맞출 수 있었다.

 

무능한 기업 무기력한 단체 반성해야

대구 산지 대표 기업이나 단체들이 나서 창구 기능을 맡아 이같은 전략으로 접근하면 중국· 대만과 가격 경쟁이 가능하다. 평창 롱패딩뿐 아니라 유명 브랜드가 내놓은 롱패딩 원단 규모가 수천만 야드에 달해 이것만 수주하면 대구 산지는 배 터질 수 있는 규모다. 기업뿐 아니라 무능하고 무기력한 단체들부터 반성해야 한다. 이런 전략을 철저하게 강구해 후회 없길 바란다.
새해는 미국 경기가 나 홀로 호황을 예고하지만 글로벌 시장이 결코 녹록한 상황은 아니다. 차별화· 특화 전략에 총력을 경주해야 한다.
더불어 섬유· 패션업계가 동 업계는 물론 스트림간 협업체제가 제대로 구축돼야 한다.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는 동업으로 꿈을 이뤘다. 스티브 잡스는 “내 사업 모델은 비틀스”라고 했다. 비틀스의 4명은 상대방의 부정적 성향을 통제했다. 이들은 균형을 이뤘고 총합은 부문의 합계보다 컸다. 분초를 다투는 변곡점의 꼭대기인 무술년 새해를 맞아 도전과 극복의 화두를 제시하며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의 경영전략을 벤치마킹했으면 싶다.

저작권자 © 국제섬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